세상은 스토리 텔러 (포토 에세이 블로그)
강의 본문
대학원 다니며 시간강의 다닐 때나 정식교수 신분으로 대학에 자리를 잡고 처음 몇 년 간은, 강의시간마다 그저 머릿속으로 외운 것을 애써 되새겨 입으로 내뱉기에 급급했다. 그러니 자연히 강의실에서의 내 눈은 학생들 눈과 접속하기보다는 창문 쪽이나 강의실 천정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강의는 많이 했는데 그 강의란 것이 외운 것의 억지 내뱉음이요, 송신자와 수신자 간의 교신이 어려운 난청지대였다.
그래도 몇 년 세월이 지나니, 이젠 직설법 보다는 간접화법, 생경한 직역보다는 은유와 의역, 딱딱한 지식보다는 풍부한 비유와 예시로써, 억지로 외어 내뱉던 식의 지난날 강의방식을 조금은 치유할 수 있게 되었다. 학생들 웃길 땐 조금 웃길 줄도 알면서, 송-수신자 간의 최소한의 교신은 확보되도록 나만의 송신탑을 내가 원하는 곳에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연구년을 맞아 그 송신탑을 잠시 비운 채 이렇게 1년 강의실을 떠나 멀리 있으니, 다시 강의실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1년간 그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니, 학생들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과 보여주고 싶은 것, 전해주고 싶은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단 과거와 다름없는 스테레오 타입은 금물이다. 간접화법, 은유와 의역, 비유와 예시를 뛰어넘는 새로운 교수법이 요구된다. 그것은 무엇일까?
일단은 강단에 선 자의 자신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말하려는 내용에 대해 분명한 자기 관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젠 남의 생각에 대해서도 비교론적 시각에서 폭넓게 전해주는 아량도 더욱 곁들여야 한다. 내 의견만 고집하지 말고 세상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잘 정리해 학생들에게 소상히 전해야 한다.
강의 내용만 진일보해선 곤란하다. 말하고자 하는 방법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니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더 요구될 수도 있다. 일단은 어렵고 추상적인 강의주제의 예를 들 때, 내 블로그를 적극 활용하자. 내가 재미있게 즐기며 만들고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 사진과 글이 블로그 안에 많이 있으니, 그것을 보여주고 예로 드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나의 재미와 나의 가치가 자연히 그곳에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더 많이 하고 말을 더 많이 시키자. 그러기 위해 숙제를 많이 내주자. 반드시 무엇을 조사하고 오게 해, 수업시간에 학생 모두가 한마디씩 꼭 하게 하자. 남 앞에서 정연한 얘기를 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시간과, 자신이 아는 것을 남 앞에서 정확히 예의를 갖춰 얘기하는 훈련이 진짜 공부이다.
나의 경우 강단에서의 초반부 인생이 억지춘향 격이었다면, 강단의 중반부 인생은 세련된 방법을 겨우 터득한 절반의 반의 성공이었다. 이제 연구년 동안의 1년 공백을 메울 시간이 다가 온다. 좀더 폭넓은 내용을 세련된 방법으로 전하되, 학생들이 자기들의 사유(思惟)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관점을 든든히 만들 줄 아는 창조적 시간이 되도록 강의시간의 쇄신이 요구된다.
항상 강의시간을 다 쓰는 꽉 찬 강의가 되게 하자. 학생들이 무엇을 알고 수업에 임해, 그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도록 강의의 질을 높이자. 최소한 내 강의에서만큼은 정확히 옳게 아는 자가 한껏 존중받는 사람이 되도록 강의의 격(格)을 유지하자.
무엇보다 내가 강의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금방 매너리즘에 빠져 옛날의 익숙한 방식에 함몰되어선 안 된다. 지금까지의 강의내용을 단단히 점검하고 새로운 내용을 대폭 보강하되 그것이 신선한 대안(代案)적 관점이 될 수 있도록 체계화하자. 그것을 프레임으로 만들자. 강의방법도 좀더 유연하고 유머러스하게 가져가되, 학생이 수업의 주역이 되도록 참여하는 수업이 되게 하자. 그러면 자연히 강의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강의시간이 훌쩍 넘어 끝나도, 많은 학생이 진지한 얼굴로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란 말을 하며 의자에서 일어나는 끝맺음이 되도록 열과 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제 강단에 설 날도 십수년 밖에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