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스토리 텔러 (포토 에세이 블로그)
인질경제화된 의료시장, 그 대안으로서 의료생협의 활성화를 생각하며 본문
아버지가 근 1달 이상 병원에 누워 계셨다. 80대 중반의 노인이시다 보니 몸의 이곳저곳이 편치 않으셔서 피부과, 정형외과 등 여러 진료과에서의 치료가 필요했다. 그래서 큰 수술을 2번이나 주도한 정형외과를 콘트롤 타워로 해 관련된 여러 진료과들이 서로 연락하고 크로스 체크하며 환자를 치료하는 협진 시스템이 필요했다.
아버지가 입원해 계셨던 1달 동안 병원을 드나들며 개인적으로 안타깝고 아쉬웠던 점은 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수십 개의 수술방, 전망 좋고 깨끗한 입원실, 여러 진료과들로 구성된 협진 시스템 등 하드웨어의 외양적 화려함에 못 미치는 병원 관계자들의 소프트웨어적 측면이었다.
먼저 들 수 있는 문제점은 의사들의 검사만능주의이다. 입원해계신 1달 동안 환자와 보호자들이 자발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 각종 검사들을 해댔다. 옛날의 명의들은 오랜 임상경험과 꾸준한 의학공부로 환자의 얼굴과 목소리만으로도 환자의 병색을 알았다고 한다. 굳이 전문적 의학공부를 하지 않은 우리 일반인들도 건강에 대한 평소의 관심과 개인적 체험, 그리고 주위에서 들은 얘기만으로도 어느 정도 특정 병세의 증상을 웬만치 알고 있고, 병을 치유하기 위한 기초검사의 필요성 여부는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의학의 전문성을 자랑하는 대형종합병원들은 종합적 문진과 순차적 검사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무조건 고가의 검사부터 해댄다. 어느 경우엔 일반인의 상식으론 불필요한 검사인데도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보험적용도 안 되는 수십만 원짜리 검사를 슬쩍 하고는 일언반구 추후설명도 없었다. 물론 그것이 불가피한 검사라면 환자와 보호자들은 그 검사비용을 감수한다. 사랑하는 가족의 병을 고치기 위해 불가피하다니까! 그러나 쉽게 납득이 안가며 보험적용도 안 되는 고가의 검사를 정확한 동의절차를 밟지도 않고 해 버린 뒤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병원계산서를 들이미니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의 도덕적 해이를 하나 더 지적해보면, 장기 입원환자의 경우 1주일에 한 번씩 내야되는 중간 입원비의 계산서 내역이다. 이것도 일반상식에 잘 안 맞는 것이 입원시점부터 발생한 누적 금액들이 항목마다 적혀 있고 제일 끝부분에 금주 내야할 금액만 덜렁 표기되어 있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중간계산비가 청구되다 보니, 지난 1주일 동안 병원에서 어떤 검사와 치료를 추가로 했고 그래서 1주일 동안 발생한 금액이 정확하게 어떻게 산출되었는지를 일반인이 알기가 참 어렵다. 이쯤 되면 종합병원이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환자를 인질로 해 벌어지는 또 하나의 인질경제 영역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협진시스템도 속빈 수수강정같았다. 수술을 한 진료과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조금 하긴 했지만, 협진시스템 속 의사들은 아직 공부하는 단계의 전공의들인지 내과 의사 1명을 빼곤 신뢰성 있는 전문소견을 치료과정에서 제시해 주지 못하거나 보호자의 상담요청에 속시원하게 응해주지도 않았다.
몇몇 간호사나 원무과 직원들의 매너리즘과 관료주의화도 심했다. 협진시스템 속의 여러 의사를 다 만나기가 쉽지 않아 이전의 각종 진료내역이나 추후의 치료과정들을 알고 싶어도, 그리고 의문시되는 입원비 내역을 확인하고 싶어도, 서로 다른 쪽으로 책임을 떠넘기며 어느 누구도 환자나 보호자들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해소해 주지 못했다. 게다가 입원진료비를 대행 수납하는 병원 내 은행직원의 불친절까지 겹치니, 입원비 내러 간 보호자들마저 스트레스를 받아 큰 병을 얻을 뻔했다.
화려한 병원건물 외양과 첨단의료장비, 남보다 공부를 잘해 좋은 의대를 나온 의사들 뒤엔, 검사만능주의, 매너리즘, 관료주의적 책임회피 등 많은 소프트웨어적 문제점이 겹겹이 도사리고 있었다.
몸이 아파 병원에 몸을 의탁한 환자와 보호자들을 인질로 삼아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게다가 보험도 안 되는 불필요한 검사를 한 뒤 엄청난 병원비를 청구하는 종합병원을 보면서, 가장 공공성이 강한 영역이어야 할 의료분야가 급속하게 시장화되고 있음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몸이 아파 치료를 전제로 시행된 적지 않은 검사들이 보험으로 완벽하게 커버되지 않는 제도상의 모순을 보면서, 우리가 제도적 신뢰를 보내고 몸이 아플 때 가장 먼저 기대어야 할 의료보험제도마저 중병에 걸려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민영화를 전제로 한 병원들의 서비스 경쟁, 그런 차원에서의 의료시장 개방을 잠시 생각해본다. 그런데 이런 방법을 통해선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병원문턱 통과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생각에 얼른 고개를 흔들게 된다. 고물가 사회를 살면서 이미 우리들 중 대다수는 헬스 푸어(health poor)가 되고 말았다. 병원의 민영화, 의료시장의 개방은 고달프게 살다보니 몸이 고장 난 많은 사람들의 병원출입 문턱을 더 높게 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부모님이나 자식들을 집에서 통증 속에 갇혀 있게 할 순 없다.
이럴수록 의료생협의 활성화, 적정 규모화를 생각해 본다. 우리가 의료를 시장의 영역으로만 보고 있으니 돈 없는 사람들의 병원문턱 넘기가 자꾸 난망해진다. 막대한 병원비를 카드로 결제한 뒤 늘어난 카드비 만큼 줄어든 다음달 월급을 아껴 쓰며 겨우 병원비를 감내하는 직장인들도 현 의료시장 체계 하에선 인질경제의 포로에서 쉽게 못 벗어난다.
치료보다 예방, 돈보다 사람의 병 고침을 우선하는 의료생협의 정신 아래, 돈은 좀 없어도 많이 아픈 사람들을 병원 밖으로 내치지 않는 그런 ‘인간의 얼굴’을 한 병원들을 우리가 사는 가까운 곳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경험상 동네병원은 큰 종합병원보다 훨씬 친절하다. 문제는 의료생협 체계로 운영되는 동네병원들에서도 우리가 장기간 입원하고 수술도 성공적으로 받을 수 있으려면 의료생협이 더 체계화되고 그 규모도 더 커져야 하며, 그것을 위해선 우리 모두가 의료생협 조합비를 더 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숨가쁘게 세금을 내고 있는데, 무슨 조합비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내는 세금엔 상당액의 의료보험료도 이미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국가의 정부들은 친자본주의적 정책이해에서 자유롭지 못해 의료의 시장화, 병원의 민영화를 계속 도모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몸의 치료를 안이한 생각에 갇힌 정부 의료보험 영역이나 인질경제영역으로 치닫는 시장영역에만 맡길 수는 없다. 그러면 인질경제의 포로가 되고 점점 병원문턱만 높아진다.
어렵지만 십시일반의 고통을 통해 의료생협의 체계화, 적정규모화를 통해 집 가까운 곳에서 좀더 따뜻한 얼굴과 마음으로부터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들 필요가 있다. 十匙一飯의 손길이 계속될 때 동네병원에도 첨단의료장비가 적정규모로 점차 비치될 수 있고, 돈만 밝히지 않고 인술을 베푸는 의사 선생님들도 우리 앞에 등장할 수 있다. 우리가 눈 한번 질끔 갖고 조합비를 당분간 좀더 내다보면, 대형종합병원이란 공룡의 관료제가 부과하는 천정부지의 치료비를 덜 걱정해도 되고, 매너리즘에 빠진 병원관계자들에 의해 멸시 당하지 않는 길이 조금씩 조금씩 더 열릴 것이다. 인질경제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의료생협의 활성화 방안을 열심히 모색하는 愚公移山의 우직함이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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