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 속의 글 (233)
세상은 스토리 텔러 (포토 에세이 블로그)
며칠 전 대학원 수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주의 강의주제를 다 다루고 “마지막으로 강의 내용에 대한 질문이 없냐”고 물으니, 나이 지긋한 한 원생이 “교수님은 오랫동안 행정학을 연구하고 교육하셨는데, 행정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어떻게 정의하실지 궁금하다”고 질문을 했습니다. 해당 강의주제에서 다소 벗어난 예상 외의 질문이 훅 들어오니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학술개념 정의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고 보는 관점이 다르니, 뭐라 한 마디로 딱 부러지게 답변하기가 참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아마도 강의를 맡은 제가 오랫동안 행정학 교수로서 행정학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 그 분야의 책도 적지 않게 썼으니, 대학원 공부를 하는 원생답게 뭔가 공부의 화두 같은 것을 얻..
동네 길에서 아기들을 만나면 참 반갑습니다. 내 피붙이가 아닌 남의 집 아기이지만, 아기들의 웃는 얼굴이 참 귀엽고 천진난만한 모습이 대견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기쁨과 희망으로 다가오는 아기들 모습이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 한해에 태어나는 신생아수가 20만명에 불과합니다. 합계출산율이 0.7로 떨어지면서 저출산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저출산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지방소멸 등 많은 문제가 이미 우리의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압축성장, 압축민주화까진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아었는데, 압축인구, 즉 저출산 초고령 속도가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빠르다는 사실은 자랑보다는 큰 걱정거리로 다가옵니다. 급속도로 전개되는 인구절벽 현상이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국가소멸을 떠올리게 ..
지난 여름은 유난히 덥고 습했다. 글로벌 보일링이란 말이 실감 났다. 무더위에 지치자 기후문제에 대한 우리의 얄팍한 이성은 쉽게 굴복했다. 에어컨 앞을 떠나기 어려웠다. 지구생태계를 고의나 악의로 파괴하는 사람은 없다. 머리론 생태계 보전을 중시하고 입으론 기후정의를 부르짖는다. 그러나 에어컨 등 과도한 전력소비를 일삼고 코로나 이후 보복 해외여행이 폭증해 항적운 문제 등 기후파괴를 자행한다. 하지만 숱한 변명(이 책의 25가지 변명)만 난무한다. 우리는 자신이 기후친화적 삶을 산다고 착각한다(나는 대체로 환경친화적으로 산다, 좋은 의도에서 한 행동이다, 내 잘못이 아니야, 다른 수많은 이유가 있다). 기후문제 해결에 있어 과학기술 낙관론에 의지한다(신기술이 우릴 구해줄거야). 지금은 즐기고 다음부터..
조직학, 경영학 관련 책을 보면, 인간관계학파가 주장하는 직장 내 비공식집단의 순기능 논의 부분이 나옵니다. 직장내 동호인회 등 비공식집단 활동이 직원들의 관계적 욕구를 증진시키고 나아가 노동생산성에도 플러스로 작용한다는 이론적 주장입니다. 이 책의 직장인들도 코로나 19가 낳은 사회적 격리, 재택근무를 겪으며 관계욕구의 충족을 갈망했는지 모릅니다. 때마침 '골때녀' 방송을 통해 여성풋살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직장 내 동호인 모임 형태로 축구팀을 결성하게 됩니다. 이 책에는 고된 하루근무를 끝낸 ‘거북목의 하얀 거북이’들이 처음엔 ‘노랑 병아리 떼’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동네축구 수준를 면치 못하다가, 각자의 개인훈련을 통해 전술 이해도를 높이면서 팀의 기술적 완성도와 더불어 개인적으로 성숙해..
아파트 베란다 창문 밖 풍경이 오늘따라 참 정겹습니다. 2층 베란다 창문을 거의 다 가릴 정도로 훌쩍 키가 커지고 몸피가 늘어난 느티나무, 단풍나무, 화살나무, 배롱나무들 덕분에, 창문을 내다보는 제 눈앞은 녹색으로 가득합니다. 아파트 단지 안의 다른 배롱나무들에 비해 좀 늦게 개화해서인지, 우리집 2층 베란다 바로 앞에 심어진 배롱나무의 꽃은 9월 중순인 지금도 여전히 붉고 싱싱합니다. 울창한 푸른 나뭇잎들 속에서 붉은 꽃잎이 더욱 도드라져 보입니다. 눈앞의 나무와 꽃을 보면서, 나무의 생애를 일상의 루틴을 밟아가는 저의 하루하루에 대비해 보며 잠시 상념에 잠겨봅니다. 일상을 지켜가는 제 마음속 나무가 늘 푸르면, 그 일상을 지탱하는 루틴의 열매가 언젠가 저 붉디 붉은 배롱나무 꽃처럼 짙붉게 피어날 것..
기후변화 탓인지 연이은 열대야로 잠을 설치는 요즘입니다. 평소엔 새벽에 기상하는데 열대야로 잠을 설쳐서인지 머리가 무거워 잠시만 더 누웠다가 일어나려 한 것이, 오늘은 그만 늦잠으로 연결되고 말았습니다. 간만의 늦잠으로 인해 오전의 가처분 시간은 엄청 줄었습니다. 아내가 몸이 안 좋아 아침부터 엄빠 노릇으로 부산도 좀 떨었습니다. 과일을 씻어서 출근길 애들 아침식사를 돕고, "독한 약을 먹어야 하니 밥을 든든히 먹고 싶다"는 아내를 위해 난생 처음 혼자 미역국도 끓이고 잡곡밥도 많이 했습니다. 아침, 점심 차리느라 비오 듯 땀을 흘렸지만, 식후 잠시라도 걷지 않으면 소화에 문제가 있어 점심을 먹은 뒤 산책을 나갔습니다. 불볕더위로 인해 한낮의 뙤약볕 아래를 걷기가 힘겨워, 자연히 발걸음은 큰 건물 옆이나..
나이가 좀 들고 책 쓰는 작업을 오래 해오다 보니, 요즘 허리가 아파서 오래 앉아 있기가 좀 불편합니다. 오히려 서 있으면 허리 통증이 덜합니다. 의자에 오래 앉으면 내려앉은 허리마디가 신경을 눌러 통증을 유발하는데, 서 있으면 통증이 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흔히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라는 우스개 얘기가 있습니다. 허나 요즘 저의 경우는 반대로 앉아 있으면 서있고 싶습니다. 불편한 허리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서 작업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스탠딩 테이블을 인터넷에서 알아보고 구매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저녁 산책을 나간 길에 아파트 단지 안의 폐기물 장소에서 사용한 지 얼마 안돼 보이는 멀쩡한 스탠딩 테이블을 우연치 않게 발견했습니다. 저는 좀 망설였지만 “버린 물..
며칠 전 외출하고 돌아온 아내 얼굴에 핏기가 없었습니다. 연유를 물으니 방금 지인의 죽음을 전해 들어 좀 당황스럽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지인의 죽음에 심한 충격을 받은 채 망자에게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3년 전 영문도 모른 채 살이 빠지며 온몸을 앓았던 아내로선 지인의 죽음에 꽤나 충격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자신에게도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닥치면 어쩌나 두려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문상을 간다고 해 “고인의 죽음은 슬프고 애도할 일이지만 그녀의 사망원인이 당신과는 상황이 다르니 너무 심려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질병이나 죽음 같은 것이 생각보다 우리 곁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변만 봐도 그렇습니다. 구순이 넘으신 어머니는 연로하신 탓에 매일 편찮으십니다..
아직은 현직에 있는지라, 재미나 소일거리로만 책을 읽지는 못합니다. 직업상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체계적 지식을 얻기 위해 사회과학 책을 읽습니다. 꽉 막힌 인생골목을 헤쳐나가기 위한 세상살이 지혜를 한수 배우기 위해 인문학 책도 읽게 됩니다. 소설가 김탁환의 말처럼 “직접적 관계는 없지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같은 공동체 소속인 타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헤아리기 위해서” 인문학 독서는 현대인에게 필수입니다. 때론 이것저것 다 떠나서 멍 때리듯 편안한 마음으로 남의 글을 재미로 읽기도 합니다. 뭐 하나라도 더 배우고 더 느끼려 하기 보단, 책 읽는 재미 자체를 즐기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 때의 독서가 사실은 제일 흥미롭습니다. 독서로 남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식을 얻기위한 공부용 독서가 다 ..
조금씩이라도 매일 써보자고 마음먹습니다. 최소한 일기는 빼먹지 말고 쓰고, 하루에 30분, 1시간이라도 아무거나 써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일단 글쓰기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흩어져 있던 생각은 모이고 끊어졌던 생각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처음엔 어설픈 생각에 글이 횡성수설의 넋두리뿐일 것입니다. 허나 그 순간을 넘어 조금 더 전진하면 뭔가 지향점 있는 짧은 단문 하나가 손에 쥐어집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어떤 주제에 대해 거칠게나마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습니다. 그 뒤엔 잠시 쉼표를 가져봅니다. 다음 날 다시 들여다보고 생각의 뼈대를 곧추세우며 살을 붙이고 웃음기를 글에 담아봅니다. 그러면 내용도 조금 있고 읽는 재미도 살짝 느껴지는 글 한편이 완성됩니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초고는 다 쓰레기”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