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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스토리 텔러 (포토 에세이 블로그)

나무는 대단한 재주꾼입니다. 풍성한 잎들과 멋진 수형(樹形)으로 자연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때론 넉넉한 그늘로 도시의 열기를 식혀줍니다. 나무는 자신의 그림자로 멋진 그림도 그려내는 훌륭한 화가이기도 합니다. 개울물이라는 고급 도화지 위에, 담벽이라는 아크릴 판 위에 아름다운 그림자 세밀화를 그립니다. 자신의 초상화를 남깁니다.

길 폭은 넓지만 사람들이 즐겨 걷는 곳은 길가의 나무 바로 아래입니다. 사람들은 나무그늘에서 천연 선풍기 바람도 얻고 나무의 힘찬 에너지도 받으려고 나무 곁으로 바짝 다가옵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이 처할 만한 곳으로 자연만한 게 없습니다. 휴식의 휴(休)자는 사람이 나무에 등을 기댄 모습이죠. 길 폭은 아주 넓지만 진짜 길은 길가 나무 바로 아래 두 줄입니다.

나무로 집을 지어 오래된 목조건물이 태어나고 그 나무 집을 또 다른 후손 나무들이 병풍 되어 감싸 안으니 이곳은 나무들이 세대를 이으며 역사를 만들고 전통을 세우는 역사교과서의 한 페이지 같은 곳입니다.

힘차게 뿌리 내리며 각자 터전 다지다가 사무치듯 외로움 밀려오면 서로 어깨동무할 수 있는 곳. 홀로 서다가 필요할 땐 함께 설 수도 있는 나무들의 세상살이 방식이 자신만 알고 돋보이려다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고집불통의 욕심쟁이 인간들에게 조용히 삶의 비법을 전합니다.

오늘도 하루의 일과가 끝나갑니다. 나무들도 진종일의 수고로움에서 벗어나 조금은 이완된 마음으로 저녁을 맞습니다. 하루를 잘 이겨내며 여기까지 흘러 왔기에 나무들의 저녁 식탁엔 휴식 같은 물 한잔과 자유란 이름의 빵 한 덩이 놓이면 좋겠습니다.

건물벽에 밀착해 서식하는 키다리 나무들이 거대한 압화(押花)처럼 보입니다. 외로워서인 듯, 추워서인 듯 벽에 착 들러붙은 채 벽에 고마움의 무늬 새깁니다.

보기만 해도 풍성한 나무 보기만 해도 시원한 나무 보기만 해도 듬직한 나무 그래서 오늘도 소중히 지켜야 할 자연.

'높이 더 높이 오르는 나무일수록 깊게 더 깊게 뿌리 내리는' 법입니다. 그 깊은 뿌리 덕에 나무는 든든한 허리춤 두르고 하늘의 기운 받으러 높게 치솟을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학교동창을 만난 나무들이 반가운 얼굴로 길 위에서 오래도록 대화를 나눕니다. 그간의 근황을 묻고 서로의 소식을 전하며 옛날 같이했던 어깨동무적 시간을 추억합니다. 그들 곁으로 지나온 세월에 대한 회한의 바람 한 자락 지나가고, 그들 입에선 서로의 살아냄을 격려하는 응원의 목소리 잔잔히 울려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