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 속의 글/두 글자의 사유 (197)
세상은 스토리 텔러 (포토 에세이 블로그)
지금 가수 정태춘의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의 노래엔 자연의 서정과 삶의 서사를 읊조리는 음유의 노래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강렬한 노래도 적지 않습니다. 경쾌한 타령조의 신나는 노래들도 있는가 하면, 애절한 사랑의 곡조도 그의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부터 정태춘의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신인가수 시절의 서정성에서 중년 나이의 사회의식, 또 장년의 인생철학이 담긴 그의 노래들이 다 좋았습니다. 기타를 맛깔나게 치고, 그가 ‘동방명주’를 부를 땐 ‘얼후’ 반주소리도 참 듣기 좋습니다. 한때 그가 부른 운동권가요도 자꾸 들으니, 처음엔 조금 생경하게 들리던 가사들이 사회의식을 전하려는 그의 진정성으로 이해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낸 노..
지역소멸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도시재생종합정보체계의 [쇠퇴지역지도]를 보면, 2023년 현재 도시쇠퇴가 진행 중인 곳은 116곳, 도시쇠퇴 징후가 시작된 곳은 84곳으로, 대부분의 기초자치단체가 쇠퇴 지역에 속합니다. 저출산으로 지방인구가 줄어들고 먹고살기가 어려워 주민들이 대도시로 떠나가니, 현재 면(面) 단위 지역에선 빈집과 폐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면 단위의 빈집 비율은 6.48%로서 읍 지역보다 2배나 됩니다. 빈집이 늘어나니 학생 수도 줄어들어 폐교도 늘고 있습니다. 2024년 3월 현재 전국에 걸쳐 폐교는 3,955곳이나 됩니다. 지방인구가 급속히 줄어들면 지역이 활력을 잃고 정주(定住)공간로서의 기능도 상실합니다. 이미 농촌은 저출산 초고령의 굴레에 갇혀 생활사막이 되..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상가마다 꽃집이 하나씩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꽃집 주인들은 철마다 제철 꽃을 가게 앞에 진열하며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길을 화사하게 수놓는 꽃들에 눈길을 주며 화분에 적힌 조그만 글씨의 꽃이름을 들여다보려고 잔뜩 허리를 굽힙니다. 그렇게 이름을 알게 된 꽃은 우리에게 '다가와 비로소 꽃이 됩’니다. 꽃가게에만 꽃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집 인근의 천변이나 숲에도 꽃은 있습니다. 산을 오르면 등산길 길섶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꽃도 적지 않습니다. 들꽃, 산꽃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놈들은 꽃집에서 파는 관상용 꽃보다는 색깔이 덜 화려합니다. 꽃봉오리도 작습니다. 들꽃, 산꽃이기에 굳이 이름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영영 이름 모를 꽃이 되기 쉽습..
며칠 전 대학원 수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주의 강의주제를 다 다루고 “마지막으로 강의 내용에 대한 질문이 없냐”고 물으니, 나이 지긋한 한 원생이 “교수님은 오랫동안 행정학을 연구하고 교육하셨는데, 행정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어떻게 정의하실지 궁금하다”고 질문을 했습니다. 해당 강의주제에서 다소 벗어난 예상 외의 질문이 훅 들어오니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학술개념 정의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고 보는 관점이 다르니, 뭐라 한 마디로 딱 부러지게 답변하기가 참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아마도 강의를 맡은 제가 오랫동안 행정학 교수로서 행정학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 그 분야의 책도 적지 않게 썼으니, 대학원 공부를 하는 원생답게 뭔가 공부의 화두 같은 것을 얻..
아파트 베란다 창문 밖 풍경이 오늘따라 참 정겹습니다. 2층 베란다 창문을 거의 다 가릴 정도로 훌쩍 키가 커지고 몸피가 늘어난 느티나무, 단풍나무, 화살나무, 배롱나무들 덕분에, 창문을 내다보는 제 눈앞은 녹색으로 가득합니다. 아파트 단지 안의 다른 배롱나무들에 비해 좀 늦게 개화해서인지, 우리집 2층 베란다 바로 앞에 심어진 배롱나무의 꽃은 9월 중순인 지금도 여전히 붉고 싱싱합니다. 울창한 푸른 나뭇잎들 속에서 붉은 꽃잎이 더욱 도드라져 보입니다. 눈앞의 나무와 꽃을 보면서, 나무의 생애를 일상의 루틴을 밟아가는 저의 하루하루에 대비해 보며 잠시 상념에 잠겨봅니다. 일상을 지켜가는 제 마음속 나무가 늘 푸르면, 그 일상을 지탱하는 루틴의 열매가 언젠가 저 붉디 붉은 배롱나무 꽃처럼 짙붉게 피어날 것..
기후변화 탓인지 연이은 열대야로 잠을 설치는 요즘입니다. 평소엔 새벽에 기상하는데 열대야로 잠을 설쳐서인지 머리가 무거워 잠시만 더 누웠다가 일어나려 한 것이, 오늘은 그만 늦잠으로 연결되고 말았습니다. 간만의 늦잠으로 인해 오전의 가처분 시간은 엄청 줄었습니다. 아내가 몸이 안 좋아 아침부터 엄빠 노릇으로 부산도 좀 떨었습니다. 과일을 씻어서 출근길 애들 아침식사를 돕고, "독한 약을 먹어야 하니 밥을 든든히 먹고 싶다"는 아내를 위해 난생 처음 혼자 미역국도 끓이고 잡곡밥도 많이 했습니다. 아침, 점심 차리느라 비오 듯 땀을 흘렸지만, 식후 잠시라도 걷지 않으면 소화에 문제가 있어 점심을 먹은 뒤 산책을 나갔습니다. 불볕더위로 인해 한낮의 뙤약볕 아래를 걷기가 힘겨워, 자연히 발걸음은 큰 건물 옆이나..
나이가 좀 들고 책 쓰는 작업을 오래 해오다 보니, 요즘 허리가 아파서 오래 앉아 있기가 좀 불편합니다. 오히려 서 있으면 허리 통증이 덜합니다. 의자에 오래 앉으면 내려앉은 허리마디가 신경을 눌러 통증을 유발하는데, 서 있으면 통증이 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흔히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라는 우스개 얘기가 있습니다. 허나 요즘 저의 경우는 반대로 앉아 있으면 서있고 싶습니다. 불편한 허리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서 작업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스탠딩 테이블을 인터넷에서 알아보고 구매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저녁 산책을 나간 길에 아파트 단지 안의 폐기물 장소에서 사용한 지 얼마 안돼 보이는 멀쩡한 스탠딩 테이블을 우연치 않게 발견했습니다. 저는 좀 망설였지만 “버린 물..
며칠 전 외출하고 돌아온 아내 얼굴에 핏기가 없었습니다. 연유를 물으니 방금 지인의 죽음을 전해 들어 좀 당황스럽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지인의 죽음에 심한 충격을 받은 채 망자에게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3년 전 영문도 모른 채 살이 빠지며 온몸을 앓았던 아내로선 지인의 죽음에 꽤나 충격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자신에게도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닥치면 어쩌나 두려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문상을 간다고 해 “고인의 죽음은 슬프고 애도할 일이지만 그녀의 사망원인이 당신과는 상황이 다르니 너무 심려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질병이나 죽음 같은 것이 생각보다 우리 곁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변만 봐도 그렇습니다. 구순이 넘으신 어머니는 연로하신 탓에 매일 편찮으십니다..
아직은 현직에 있는지라, 재미나 소일거리로만 책을 읽지는 못합니다. 직업상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체계적 지식을 얻기 위해 사회과학 책을 읽습니다. 꽉 막힌 인생골목을 헤쳐나가기 위한 세상살이 지혜를 한수 배우기 위해 인문학 책도 읽게 됩니다. 소설가 김탁환의 말처럼 “직접적 관계는 없지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같은 공동체 소속인 타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헤아리기 위해서” 인문학 독서는 현대인에게 필수입니다. 때론 이것저것 다 떠나서 멍 때리듯 편안한 마음으로 남의 글을 재미로 읽기도 합니다. 뭐 하나라도 더 배우고 더 느끼려 하기 보단, 책 읽는 재미 자체를 즐기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 때의 독서가 사실은 제일 흥미롭습니다. 독서로 남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식을 얻기위한 공부용 독서가 다 ..
조금씩이라도 매일 써보자고 마음먹습니다. 최소한 일기는 빼먹지 말고 쓰고, 하루에 30분, 1시간이라도 아무거나 써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일단 글쓰기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흩어져 있던 생각은 모이고 끊어졌던 생각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처음엔 어설픈 생각에 글이 횡성수설의 넋두리뿐일 것입니다. 허나 그 순간을 넘어 조금 더 전진하면 뭔가 지향점 있는 짧은 단문 하나가 손에 쥐어집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어떤 주제에 대해 거칠게나마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습니다. 그 뒤엔 잠시 쉼표를 가져봅니다. 다음 날 다시 들여다보고 생각의 뼈대를 곧추세우며 살을 붙이고 웃음기를 글에 담아봅니다. 그러면 내용도 조금 있고 읽는 재미도 살짝 느껴지는 글 한편이 완성됩니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초고는 다 쓰레기”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