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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스토리 텔러 (포토 에세이 블로그)

같은 땅에 뿌리 내리고 거처를 공유해도꽃봉오리들이 얼굴 내미는 시간은 제각각. 꽃들은 동시에 피지 않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순차적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밉니다. 그들의 세계엔 한번에 다 피었다 져야 한다는 일사불란함이나 강요된 획일성 따윈 없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속도로 피어나고 각자 주어진 일생의 로드맵을 묵묵히 밟아갑니다. 일거의 개화 만발에 담긴 화려한 스펙터클은 천변(川邊)에 없습니다. 순차적으로 얼굴 내밀며 장시간 진을 치는 꽃부대를 천변에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천변에서 오래도록 꽃을 볼 수 있습니다.꽃들은 우리 마음속에 오랫동안 간직됩니다.

땅 위 도로는 익숙한데 물속에 도로라니? --------------------!! 다 쓸모가 있어 물속에 길을 냈거니 생각하니 그 용도가 자못 궁금해지며 처음의 낯선 느낌은 많이 줄어듭니다. 다리 위에 한참 서서 물 속 도로를 응시하니 무미건조한 도시경관에 조그만 파격을 주는 설치미술 작품으로 승화됩니다.

가을 단풍을 보면 자연만한 수채화가가 없는 것 같습니다. 푸른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을 보면 자연만한 설치미술가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여기 호수얼음 무늬를 보니 자연만한 조각가도 찾기 어렵습니다. 호수얼음의 정교한 등고선 무늬를 보면 자연만한 지도제작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자연은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자연은 미술공부의 영원한 스승입니다.

지난여름엔 지구가 들끓는 global boiling에 비지땀 흘렸는데 한파가 연일 계속되는 요즘은 global cooling에 몸만 잔뜩 움츠립니다. 그야말로 요란한 기후변화의 한복판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도 잠깐 기온이 오르니 설 얼었던 호수얼음이 녹으며 오리 떼들이 호수에 찾아와 유영을 즐깁니다. 잔뜩 움츠렸던 우리도 어깨를 펴고 잠시나마 마음의 기지개를 켜야겠습니다

금계국이 사람들 옆으로 바짝 다가서며 초여름의 수변경관을 화려하게 수놓습니다. 노랑색 원피스를 입은 금계국 자매들이 무색 무미(無味)의 도시에 발랄하고 멋진 색채경관을 선사합니다.

따사로운 가을 오후햇살이 대지를 덥히고 호수 물은 보석처럼 반짝입니다. 천변의 풀들은 미풍에 춤을 춥니다. 가을의 정중앙으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리며 세상 모든 것들은 조금씩 익어갑니다.

우기 같은 긴 장마철 간간이 파란 하늘 고개 내밀면, 빗줄기에 잔뜩 움츠렸던 어깨 펴고 맑은 하늘 깊게 응시하며, 마음 속 습한 기운 다 빼내고 청량한 공기로 가득 채웁니다.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꽤 내린 겨울다운 겨울이었습니다. 동장군이 몰고 온 한파의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다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저 멀리서부터 슬며시 봄이 다가오는가 봅니다. 꽁꽁 얼었던 호수가 조금씩 녹으며 봄처녀의 노래소리 들려옵니다.

백색의 얼음호반 위를 나는 백로의 비행은 백설탕 가루처럼 부드럽고 백설공주처럼 어여쁘며, 백색 얼음호반에 내려앉은 백로의 자태는 흰 도포를 거친 선비의 마음처럼 고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