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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스토리 텔러 (포토 에세이 블로그)

큰 병이 왔는지 나무가 꽤 아파 보입니다. 살이 빠져나가 몸은 쇠꼬챙이같이 가냘프고 근육이 다 빠져나간 팔다리는 힘겨워 축 처져 있습니다. 하지만 병들어 메말라가는 와중에도 나무는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소중한 열매 하나 맺습니다. 마지막까지 생의 목표에 이르려는 그 처연한 과정이 과즙 가득한 하나의 결실을 잉태합니다

때론 자신조차 잘 모르고 자신을 용서하기도 어려운데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더욱이 두팔 벌려 남을 품에 안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허나 내가 남을 무시하고 거리를 두면 남들도 나를 경원시하고 경계합니다. 일부러라도 포옹의 몸짓을 배우고 자꾸 시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포옹하려고 애쓰다 보면 진짜 포용의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포용의 마음이 조금씩 쌓이면 포옹의 몸짓은 한결 수월해질 것같습니다.

기차가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하면 과속에 탈선의 위험만 커집니다. 인생 궤도를 달리는 사람이라는 기차에게도 중간 중간 정거장은 필요합니다. 잠시 정차해 숨도 고르고 지친 다리도 쉬어가야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가는 것이 결국엔 목적지에 이르는 길입니다. 급하게 가다가 겪기 마련인 시행착오가 적기에, 어쩌면 가장 빠른 시각에 원하는 곳에 당도할 수도 있습니다.

뒤에서 병풍이 되어주는 불암산말고는 지형상 막힌 곳이 없고 주변에 높은 것도 없어서, 이곳은 항상 하늘이 넓게 열리는 곳. 좁은 도시에서 늘 사람들과 겹치고 부딪히며 살아야 하는 처지를 면치 못하기에 이런 탁 트인 곳에서 잠시라도 넓은 하늘 보고 메타쉐콰이아 길도 걸어보며, 푸르게 익어가는 밭작물을 눈으로 따먹고 구름들의 다채로운 향연을 즐겨보는 것도 한여름 폭서를 나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가지를 쳐낸 배나무 등걸 위로 흙 몇올, 바람에 날려 쌓이니 그 작은 땅에서도 생명은 피어납니다 가을이 되자 이 작은 땅에도 단풍의 물결은 여지없이 찾아옵니다. 붉게 물들어가는 뱀딸기 잎이 계절의 변화를 재촉합니다.

새빨간 단풍잎, 샛노란 단풍잎만 가을색은 아닙니다. 소멸의 계절이기에 변색, 탈색은 불가피하지만 이처럼 연한 갈색으로 은은하게 물들어가는 메타쉐콰이어 잎도 있어 소멸의 시간을 보내는 마음은 덜 서글픕니다.

저 멀리서 빠져나와 한참 길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 숨 돌리고 뒤 돌아보니 시선은 저 길끝을 응시하지만, 마음은 저 길끝에서 완전히 떠나와 여기에 머물려 합니다. 저 길끝은 타워크레인이 지배하는 세상! 허튼 욕망이 수직에 수직을 더하는 건설 만능의 도시를 떠나, 나무와 땅이 만나는 이곳에서 오래도록 머물고 싶습니다.
대지에 온기가 돌고 따스한 햇볕 수혈되니 나뭇가지마다 배꽃이 풍성하게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순백색. 희디흰 배꽃 앞에서 우리는 검은 속마음 숨길 곳 찾기 바쁩니다. 이윽고 배꽃 지면 푸르스름한 작은 열매 달리겠지요. 과수원 주인의 손이 백번 닿아야 비로소 탐스런 꿀..
사람이 지치면 등 기대고 쉴 수 있도록 넉넉한 품을 내주는 나무들처럼, 우리가 병들고 삶에 지치면 보듬어 주시고 일깨워 주시는 성인(聖人)들도 늘 우리 곁에 계시지요. 그런데 나무는 성인들 곁도 항상 지켜 주네요. 더우실까봐 그늘도 되어주고, 외로우실까봐 말벗도 되어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