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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스토리 텔러 (포토 에세이 블로그)

지금 물때는 대조금기. 바닷물이 가장 적게 빠지고 조류의 흐름도 아주 약해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합니다. 이에 화답하듯 석양도 퇴근길 서두르지 않고 다리를 쭉 뻗어 바닷물에 탁족하며 퇴근길의 여유를 한껏 부려봅니다. 나그네도 일몰의 귀가길을 재촉하지 않고 잔잔한 바다 앞에서 모처럼 평온을 맛 봅니다.

썰물이 되면 바다는 텅 빈 얼굴로 자신의 맨살을 드러냅니다. 마침 일몰 때면 개펄의 여러 식구들이 오수(午睡)에서 깨어나 일거에 얼굴을 내밉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물길은 낙조 덕에 아스라이 빛나며 제 몸집을 키우고 초저녁 하늘엔 크게 노을이 번지며 색색의 구름으로 가득합니다. 지는 해도 아쉬워 퇴근길 자꾸 늦추고 낙조를 즐기던 사람들도 귀가를 미룬 채 노을 빛으로 물들어가는 해변에 오래오래 서 있습니다.

섬과 석양, 풍력터빈 간의 적당한 거리감을 살리려고 수평의 가로 사진을 자주 찍어 왔는데, 이번엔 섬과 석양, 터빈을 한껏 모아 수직으로 정렬하니, 탄도항 앞바다 3총사의 우정과 응집력이 세로사진 안에서 한껏 빛을 발합니다.

하루의 거센 노동을 마친 배들이 항구에서 쉬고 있습니다. 조용히 하루의 노동을 되새김하고 내일의 노동을 위해 차분히 숨 고르고 있습니다. 파도가 조용히 밀려와 배들의 들숨 날숨을 다 받아내며 ‘휴식 같은 친구’가 되어줍니다

지는 석양을 오래 지켜보면, 왠지 마음이 허전하고 조금 서글퍼집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석양을 안내하고 배와 배 사이에 석양을 들어 앉히면, 하루 노고를 다한 뒤 안온한 마음으로 퇴근하는 웃는 얼굴의 석양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낮의 무더위가 끝나면 용광로 같던 대지의 열기도 식고 먼 곳으로부터 시원한 바람 한줄기 불어옵니다. 저녁 하늘은 긴장 풀린 구름떼가 춤추며 그려놓은 한 폭의 수채화로 변신하고, 화룡점정의 석양 한 모금이 조용히 저녁 풍경화를 완성합니다

오늘도 하루의 일과가 끝나갑니다. 나무들도 진종일의 수고로움에서 벗어나 조금은 이완된 마음으로 저녁을 맞습니다. 하루를 잘 이겨내며 여기까지 흘러 왔기에 나무들의 저녁 식탁엔 휴식 같은 물 한잔과 자유란 이름의 빵 한 덩이 놓이면 좋겠습니다.

좁아지는 길, 멀어져가는 나무, 작아지는 집들 도로 위의 모든 것이 멀어질수록 작아지는 원근법의 지배를 받지만 저 타들어가는 석양만은 원근법의 영향을 안 받습니다 저기 저곳에서 조금씩 땅으로 꺼질 뿐 멀고 가까움의 세속적 잣대를 벗어나 있고 근거리 원거리 경쟁엔 절대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허공에 뜬 채 자신의 등으로 진종일 무거운 차들 실어나르던 다리가 석양 아래서 휴식을 구합니다 하루의 소임을 다한 다리를 해님이 포근한 석양빛으로 감싸 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