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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이 답이다, 단 사이비 녹색은 경계하자 본문
올여름에도 사람들은 폭염을 피하려고 바다로 향했습니다. 푸른 바다는 잠깐 보기만 해도, 아니 마음속으로 상상만 해도 시원함과 청량감으로 덥고 습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식혀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휴가철만 되면 교통지옥을 불문하고 바다를 향해 달려갑니다.
하지만 교통지옥을 감수하면서까지 동해로, 서해로, 남해로 굳이 차를 몰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푸른 바다가 집 주변 곳곳에 마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숲과 근린자연공원이 그것입니다.
숲은 분명 녹색인데 왜 여기서 푸른색의 바다와 녹색의 숲을 굳이 연관 지으려 하는지 살짝 의문이 들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그 의문의 실마리를 우리 선조들이 녹색을 푸른색으로 불러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 영향을 받아 녹색을 푸른색으로 부릅니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공익광고 멘트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도시의 푸른(녹색) 숲은 자연이라는 천연 영양제를 한 움큼 우리 손에 쥐어 줍니다. 우린 그 녹색 영양제 복용 덕분에 한여름 더위를 식히고, 늘 푸른 마음으로 일상의 사막을 힘차게 건널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주변엔 가짜(사이비) 녹색도 많다는 점입니다. 정말 있어선 안될 일이지만 우리는 정부의 정책과 기업의 경영에서 녹색으로 덧칠된, ‘무늬만 녹색’인 것들을 종종 목도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무늬만 녹색’인 첫번째 사례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었습니다. CEO 출신이 경제 살리기 차원에서 대통령이 되자 대표공약의 하나로 단기적 녹색성장 정책을 내세운 것입니다.
생태적 차원의 녹색 가치보다는 자연환경을 신성장 동력으로, 즉 자연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과도하게 본 점이 이명박 정부의 패착이었습니다. 경제 살리기에 급급하다 보니 갖가지 성장정책에 이름표만 녹색을 붙인 채 졸속으로 추진하려 했던 것입니다.
정책 추진세력의 몸속은 여전히 시커먼데 피부만 녹색으로 분칠한 느낌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피부에 녹색 문신을 살짝 했지만 그 녹색 물이 몸속으로 흘러들어가 몸을 완전히 녹색으로 바꾸기엔 너무나 결함이 많았습니다.
박근혜 국정농단을 잠재운 시민 촛불혁명 이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그린 뉴딜조차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게 안겨주었습니다.
애초에 경제활력 촉진 및 성장전략으로 한국판 뉴딜이 이미 마련됐다가 세계적인 탄소중립 추세 눈치를 보며 뒤늦게 ‘그린’ 뉴딜이 급조되다 보니, 말로는 경제위기와 기후위기를 다 잡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그린 뉴딜의 적지 않은 부분은 아래와 같이 성장전략에 불과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린 뉴딜의 8대과제로 선정된 ‘녹색선도기업 육성,’ ‘녹색혁신기반 조성,’ ‘그린모빌리티 보급(예: 수소차 생산)’ 등이 그 실례입니다. 당시 정부는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과 함께 65만 9천 개의 고용창출을 내세우는 등 그린 뉴딜이 애초에 성장전략, 고용전략이었음을 스스로 부정하지 않았습니다(장영욱 외, 2020. “유럽 그린딜이 한국 그린 뉴딜에 주는 정책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그린 뉴딜의 8대과제인 ‘신재생에너지 확산’은 산야를 대규모로 훼손하면서까지 태양광 패널을 깔아 생산한 전기를 대도시로 보내는 등 중앙과 인간의 이익을 위해 지방과 자연을 도구화해 파괴하는 도구적 자연관의 한계를 노정했습니다.
역시 그린 뉴딜의 8대과제인 ‘깨끗하고 안전한 물 관리’를 위해 4대강 재자연화는 긴요했지만, 집권 초의 약속과 달리 취(양)수 등 수자원 이용을 구실로 재자연화는 흐지부지되었습니다.
8대과제인 ‘국토해양도시 녹색생태계 복원’과는 달리, 제주제2공항 건설, 지리산 ‘하동알프스프로젝트’ 등 자연파괴형 SOC사업도 개발이익을 노리고 지속되었습니다.
위의 논의들은 진보정권이기에 가장 친환경적일 거라 기대가 컸던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개발이익과 성장전략을 위해 여전히 자연을 자원화, 상품화하는 도구적 자연관이 그린(green)이란 미명 하에 정부정책에 은폐돼 있음을 잘 말해줍니다(더 자세한 내용은 졸고, “기후-생태위기의 원인과 대응,” [정부학연구], 29:1 참고 바람).
무늬만 녹색인 정책사례는 이외에도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한국정부의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은 복원목표 면에서 국제기준에 한참 미달한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린피스와 '산과 자연의 친구 우이령 사람들'이 2024년에 발간한 [돌아오지 못한 보호지역: 보호지역 관리실태 보고서]에 의하면, 정부는 2027년까지 훼손지역을 식별하고 2030년까지 복원 우선지역의 30%에 대한 생태계 복원에 착수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동 보고서는 훼손된 지역이 100이라면 복원 우선지역은 30%만 있을 수 있고, 그러면 훼손지역의 30%의 30%만 복원하는 것이 한국의 실제 전략내용이라며, 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한 복원정책에 여전히 소극적인 정부태도를 비판합니다.
그린피스와 '우이령 사람들'은 국내에 이름만 보호지역일 뿐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페이퍼 보호지역’도 적지 않다고 지적하며, 그 대표사례로 가리왕산을 듭니다. 가리왕산은 2008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 건설을 위해 2013년 산의 일부가 보호구역에서 해제됐습니다. 당시 강원도는 올림픽 이후 산의 복원을 약속했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원이 이뤄지지 않고, 국가정원의 추가건설까지 검토되고 있습니다(최소영, “생물다양성 ‘국제기준 미달’하고, ‘보호구역’은 지정되나 마나,” [소리의 숲], 2024.11.04자).
사이비 녹색사례는 기업경영에서 더 두드러집니다. 최근 기업들은 너도나도 ESG 경영을 강조하지만 그린 워싱(위장<僞裝>환경주의)의 문제점이 자주 지적됩니다. 기업들은 탄소배출 저감 등 환경오염(E) 문제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합니다(이 글은 생태 에세이의 성격상 ESG 중 E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S,G 논의는 생략함을 양해 바랍니다).
그런데 2025년 4월 ‘워스트 리스크 기업 리스트’가 공개된 것을 보면, ESG 경영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환경무시 등 각종 위험요인을 방치한 기업이 적지 않습니다. 리스트에 포함된 기업들은 ESG를 광고도구로 소비했을 뿐 실제로는 지속가능성과 거리가 먼 경영을 해왔던 것입니다(신현승, “ESG의 탈을 쓴 기업들, 위선의 민낯 드러나다,” [일간 투데이], 2025.04.23자).
일부 기업은 그린 워싱을 통해 자신의 친환경 이미지만 홍보할 뿐, 단기적 이윤추구를 위해 환경책임은 뒤로 미뤄 왔습니다. 기껏 사내에 법률팀을 두고 자사의 법적 책임만 회피하려 하지, ESG 모토에 걸맞은 실제적 책임이나 윤리경영엔 소홀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기업들은 이윤추구를 위해선 파렴치한 행위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중 생태계 파괴와 관련해 필히 언급해야 할 부분이 ‘의도적 진부화’ 문제입니다. 예컨대 형광등이나 배터리 제품의 수명을 일부러 단축해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더 사용가능한 데도 소비자가 제품을 새로 구매하도록 강매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지적할 문제가 ‘과다수리’ 문제입니다. AS과정에서 부품 하나만 교체하면 멀쩡히 쓸 수 있는 물건인데도 제품전체 교체 식으로 유도하는 것입니다.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부품 하나만 교체해도 되는데 제품 전체를 바꾸지 않으면 아예 수리가 어렵게 만들어버립니다.
최근 저희 집 냉장고 문이 삐긋 소리를 낸 후 꽉 닫히지 않아 AS를 불렀습니다. 기사가 와서 하는 말이 냉장고 문 아래쪽 경첩의 부품 하나가 고장났는데 요즘은 고장난 부품의 부분교체가 안되고 아예 전체를 교체하도록 경첩이 설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장난 아래 쪽 경첩만 바꾸면 균형이 안 맞아 조만간 멀쩡한 위 경첩까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아예 경첩 두개를 다 바꿀 것을 추천합니다. 위쪽도 안 바꾸면 조만간 문제를 일으키게 되니 출장비 들였을 때 한꺼번에 경첩 두 개를 다 바꿔야 한다고 거의 엄포조로 말해 아연실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의도적 진부화나 과다수리가 팽배하면 제품생산을 위해 더 많은 원재료와 더 많은 에너지가 요구되고, 멀쩡한 물건의 폐기에도 더 많은 돈과 시간 낭비를 부추기는 꼴이 됩니다.
세계 굴지의 국내 가전회사조차 이런 의도적 진부화, 과다수리를 강요하면서 그러고도 무슨 ESG 경영이라고 자사 홍보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기업들은 ESG 경영을 선포하기 전에도 녹색상업주의를 표방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어처구니 없고 그래서 뒷맛이 개운치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례로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우며 제품홍보에 열중할 뿐 실제론 ‘고가의 소비’를 조장했습니다. 예컨대 값비싼 생수산업과 유기농 식품 홍보로 인한 물가상승 등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분리수거의 의무화를 통해 소비자에게 환경문제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등 녹색세탁도 필히 경계할 지점입니다.
녹색상업주의, 녹색세탁은 녹색색깔을 덧입혀 마치 친환경 기업인 것처럼 호도하지만, 결국은 기존의 산업성장에 녹색 덧칠만 한 사이비 녹색에 불과합니다.
최근 이재명 정부에서는 그나마 녹색 정책이 완전실종된 것 같아 더 큰 우려를 자아냅니다. 주식호황과 반도체사업에 사활을 걸며 주식과 AI만 언급합니다.
실제로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에서도 정책쏠림 현상이 너무 심각합니다. 기후솔루션 권오성 팀장의 분석에 의하면, 인공지능은 시정연설에서 28번이나 언급됐는데 기후대응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AI로 산업구조 개편을 선점하는 것도 의미는 있겠습니다만, 이런 정책 불균형과 기후분야에서의 정책부재는 향후 우리 삶의 구조에서 많은 갈등을 야기할 것입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현 정부의 대응 부재는 향후 ‘사람 대 자연의 갈등’을 더욱 조장할 것입니다. 전쟁이라도 하듯 전격전 차원에서 환경영향평가마저 축소하며 졸속추진 중인 서남권 반도체산단 및 AI데이터센터 건립과 송전선로 구축 계획이 그 단적인 사례입니다.
기후 선진국들은 이미 발 빠르게 적극적으로 그 해법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개발의 시대를 청산하고 보전,복원의 시대로 넘어갑니다. 역(逆)간척 등 재(再)자연화를 도모하고, 녹색공정, 녹색에너지, 녹색소비 등 생태적 전환을 체계적으로 시도합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black color(화석연료경제)에서 green color로 근본적 전환을 도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진정한 녹색전환의 방향은 무엇인가요?
진정한 녹색전환은 장기적 시간관 아래 경제뿐 아니라 사회구조, 가치체계의 생태친화적 변화 등 거시적, 질적, 장기적 생태전환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너무나 익숙한 옷이 되어버린 성장과 개발의 검은 옷을 일거에 벗어던지고 곧바로 보전과 복원의 녹색 옷으로 단번에 갈아입는 체질변화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완충지대로서 지구에 나쁜 것은 덜 첨가하고 오래 지속돼야 할 것은 덜 철회하는 등 환경에 미치는 과부하를 최소화하면서 녹색전환의 사전토대를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긴요합니다.
녹색생산공정과 녹색에너지전환, 녹색소비에 대해선 이 블로그 생태에세이 코너의 다른 글("생태적 전환을 향한 생태여행 티켓은 어디서 살 수 있을까?")에서 이미 언급했으니, 다음 글에선 녹색기술, 녹색고용, 녹색금융에 대한 얘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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