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스토리 텔러
별 헤는 밤하늘 아래 저녁이 있는 삶 본문
칠흑같이 깜깜한 밤엔 행동의 제약이 많습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긴 겨울이 찾아오면 초저녁 일찍 밥 해먹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백열등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잠을 덜 자게 되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을 쫓아내는 백열등 불빛 아래서, 사람들은 들뜬 마음으로 잠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한밤에도 대낮같이 불 밝히고 땅을 팠습니다. 강바닥도 긁어내 모래를 모았습니다. 그 모래로 공단을 조성하고 빌딩도 높게 올리고 아파트도 지었습니다. 고속도로와 전철 길도 냈습니다. 산을 허물어 길을 닦고 터널도 뚫었습니다. 그렇게 불철주야 일하느라 덥고 힘겨우니 하루종일, 밤에도 내내 에어컨을 켭니다.
이런 광풍개발과 에너지 과소비로 인한 도시열섬 현상 때문인지, 지난 110년간 서울의 온도는 약 2.5도나 상승했다고 합니다. 특히 최근 10년간의 기온상승은 0.9도로 매우 심각한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불을 많이 켜대고 이곳저곳 분주하게 움직이니 도시는 날로 더워지고, 잠을 덜 자는 대신 더 만들고 더 소비하니, 땅에 대한 과(過) 첨가와 지나친 철회로 인해, 서식처인 자연이 붕괴되면서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문명의 이기와 개발이익의 달콤함은 이젠 우리들 생(生)의 리듬조차 무너뜨립니다. 돈을 더 벌고 소비를 더 많이 해도 쉽게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럴수록 자꾸 뭔가를 더 생산하려 들고, 그러기 위해 밤의 사냥꾼 올빼미처럼 밤을 지새웁니다.
그 와중에 한때 생태계 교란의 주범이었던 사람들이 이젠 생태계 교란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탐욕이 낳은 위험의 부메랑이 전방위에 걸쳐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간 참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자원 하나 없는 빈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잠을 줄이고 더 많이 일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몸 동아리 하나 믿고 밤낮 없이 뛰어다니며 맨손으로 뭔가를 이뤄내야 했습니다.
제가 32년간 근무한 대학도 직장인을 상대로 한 야간수업(산업체 위탁교육 포함)을 꽤 오랫동안 진행해 왔습니다. 직장인인 학생들은 진종일 근무한 탓에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강의실에 앉아 졸음을 쫓으며 야간수업에 열중했습니다.
졸음과 싸우는 학생들을 보며, 저는 “우린 더 나은 삶,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렇게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며 공부한다”고, 그러니 “불야성을 이루는 지금 이 강의실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값진 곳”이라고, 그렇기에 “졸린 눈 부릅뜨며 이 공간을 더 빛내보자”며, 지친 학생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곤 했습니다.
불야성은 우리가 살아내기 위해 감내했던 지난날의 불가피한 시대상황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야간 강의실에서, 또 납기를 맞추기 위한 철야근무 현장에서, 또 거래처를 위한 밤늦은 술접대 자리에서, 때론 밤 시간대를 이용해 이동 중인 해외 출장길에서, 야밤까지 긴장을 풀지 못하고 마음도 쉬 내려놓지 못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늦은 밤까지 긴장해야 했던 얼굴들이 우리 주변엔 참 많았습니다. 그 얼굴에선 밥벌이의 비장함이 물씬 풍기고, 밥벌이에 대한 고단함 또한 켜켜이 쌓여 있었지요.
그 덕에 우리는 배고픔을 일찌감치 떨쳐내고 어느덧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장시간 노동과 그로 인한 과로에 허덕이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
이젠 누구나 다 워라밸,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합니다. 일과 삶의 균형은 우리 모두의 영원한 꿈입니다.
저녁이 되면 하루일과를 마무리한 뒤 동네를 산책하거나 공원 벤치에 편히 앉아, 이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마음과 몸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맘껏 누렸으면 합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살려면 “미쳐야 미친다”라며 성장 고속도로를 맹목적으로 달리던 그간의 불광불급(不狂不及)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합니다. 월화수목금금금----! 불야성을 내세우며 밤을 훤한 대낮처럼 불 밝히고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그간의 노동관행에서 조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잃어버린 밤을 되찾아야 합니다. 잊어버렸던 밤하늘의 가치도 다시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밤엔 운동과 산책, 휴식으로 지친 몸을 달래며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조용한 어둠 속에서 하루를 성찰하며 내일의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시간적 여유를 누렸으면 합니다.
밤이 주는 평안과 안식을 듬뿍 맛보며, 현실의 질곡을 벗어던지기 위한 낭만적, 창의적 생각들을 자신의 노래나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문화 프로슈머(prosumer)로서의 풍성한 삶도 지향해보면 좋겠습니다.
사람에게만 밤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나무들도 어두워야 더 잘 큽니다. 가로등의 강한 불빛과 크리스마스 트리용으로 연말연시 내내 혹사 당하는 가로수들을 보면 마음이 다 아픕니다. 나무가 쉬지 못하니 건강한 나무 그늘을 우리에게 듬뿍 선사할 수 없습니다.
밤새 깊은 잠을 잔 새들의 새벽녘 활기찬 지저귐은 인간사회의 하루 시작을 알리는 경쾌한 자명종 시계소리입니다. 그러면 일부러 비싼 돈 주고 알람시계를 살 필요도 없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밤을 지키려는 노력과 행동을 구체화합니다. 일례로 미국 국립공원관리청(The National Park Service)에선 밤하늘 멸종에 대비해 밤하늘 보호구역을 지정했습니다(https://www.nps.gov/subjects/nightskies/index.htm). 밤하늘 보호구역은 공원이나 천문대 주변에서 인공 광(光)공해를 제한하는 지역입니다.
별하늘 찾기 운동(dark-sky movement)도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는 빛 공해를 줄이기 원하는 사람들에 의한 사회운동으로, 사람들이 더 많이 별을 볼 수 있게 하고, 환경에의 부자연적 영향을 줄이며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합니다(위키백과 참고).
리와일딩(re-wilding)을 추진하는 생명다양성재단은, 관청에서 야간안전을 이유로 산길에 가로등을 설치하곤 하는데 그렇게 되면 산속 야행성 동물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없기에, 시민들이 나서서 “산에 가로등은 필요 없다. 나는 밤다운 밤을 원한다” 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밤하늘을 보호하면 밤마다 숱한 별들이 찾아오니 도시의 밤은 덜 외롭습니다. 깊은 밤 산속 소쩍새 울음소리도 멀리 아파트단지까지 들려옵니다. 어두운 숲속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내음이 폐부 깊숙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가로등 불빛 아래 마냥 꼬이는 불나방의 맹목적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탐욕의 손길을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잊어버린 밤을 되찾고, 잃어버린 밤하늘의 가치를 되새겨야 합니다.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보고, 숲속의 이것저것들을 탐구하며 자연 속에 더 머물러야 합니다.
그럴 때 생태계 교란에서 벗어나 삶의 정상성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밤하늘을 보듬어 주는 달과 별의 음덕(陰德)으로 오늘 우리의 하루도 멋지게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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