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스토리 텔러 (포토 에세이 블로그)
일기 본문
40대 초반부터인가? 나이 먹으면서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지만 마음 속에선 어느 하루도 깔끔하게 정돈된 적 없이 세월이 마구 흘러가는 것 같았고, 공연히 하루하루의 가시적 축적물 없이 시간만 허공 속으로 날려버리고 있다는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일상을 성찰도 할 겸, 그리고 무슨 글 하나 쓰려면 엄청나게 밀려오는 글쓰기 공포로부터 조금이라도 해방되기 위해 글쓰기 훈련의 일환으로도 일기를 시작한 것 같다.
때론 중세,근대 철학자의 참회록을 흉내 내, 나를 발가벗겨 난도질하는 자아비판식 일기도 있었다. 때로는 극단적 심미주의 시를 써대는 서양 시인들처럼 나의 일상을 한껏 찬미하는 유치찬란한 거짓 기록도 있었다. 어떤 날은 그냥 하루 일을 시간대대로 죽 나열해 기록하는 지루한 일지 형식으로 일기를 남겼다. 어떤 날은 운율까지 고려해가며 하루의 일상을 황홀하게 치장하려고 일기를 쓰며 마음이 분주했던 날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일기의 형식이야 어떻든, 일기를 쓴 순간만큼은 그 속에 내가 온전히 있었던 날들의 일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것이 삶의 처절한 반성이었어도 좋았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내 나 스스로가 만족한 날에 대한 나 자신의 축하 글이었어도 좋았다. 일기를 통해 나는 나를 반성하고, 또 일기를 통해 나를 칭찬하기도 했던 것이다.
일기를 오래 쓰다 보니, 이제는 일기의 주인공으로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혹은 사회나 자연이 등장하는 날들도 가끔 있다. 그런 경우의 일기는 사회의 단면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컬럼 비슷한 것이, 혹은 자연세계의 진리와 아름다움을 기록한 현장보고서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
컬럼이나 보고서 형식의 일기를 남긴 날은 내가 온전히 사회와 자연과 접속해 하루를 의미있게 살아보려고 애쓴 날이다. 비록 못난 나이지만, 사회현상의 객관적 분석자로서 혹은 자연세계의 아름다움을 생생히 전하는 리포터로서 또다른 모습의 내가 일기 속에 등장하려고 애쓴 날이다. 여러모로 부족하기 한이 없지만!
이제는 자아비판식 일기의 대상이 되는 날보다는, 사회현상의 설명자로서 혹은 자연 통신원으로서 내 일기에 더 많이 등장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멍청히 하루를 낭비하는 날이나, 성급한 마음에 일을 그르치고 하루종일 저주스런 마음에 나를 지옥의 세계로 스스로 빠뜨리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하루하루를 내 스스로 만들어선 안 될 것이다.
오늘의 일기쓰기가 내가 가고 싶은 세상으로 한발 더 나아가고, 나를 필요로 하는 세상에 좀더 가깝게 가기 위해, 내일의 삶을 설계하고 구상하는 그런 시간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러면 사회분석 컬럼이나 자연세계 보고서 형식의 일기 말미에 애써 노력한 나 자신을 대견해 하는 자찬(自讚)의 글이 한 줄 정도 담길 수 있겠지. 그 정도는 사람들이 애교로 봐주겠지.
참! 일기는 남에게 공개하는 것이 아니잖아. 이 바보야. 아직도 남이 읽을 것을 전제로 일기를 쓰는 의식적 삶을 사는가? 아직은 조금 더 자아비판의 대상으로 남는 못난 일기를 더 써야겠군. 그 형벌이 두려우면 너를 잊고 너를 필요로 하는 세상에 더 다가가기 위해 고민하는 탈 자아적 일기를 매일 써 볼 일이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