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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의 글/두 글자의 사유

귀국

숲길지기 2011. 6. 16. 09:14

귀국! 현재 자신의 처지가 이 말에 해당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일단 나라 밖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나라 안으로 다시 들어갈 때만 성립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 말에 해당되는 시점에 있다. 20일 뒤면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귀국을 앞둔 지금의 내 심정은 담담하다. 나라 밖에 머물면서 공부도 좀 했고, 한도껏 타국 생활도 누렸다. 아내가 같이 이곳에서 생활하지 못해 내게 잠시 부과되었던 엄빠(엄마+아빠)라는 새로운 모험에서도 살아남아 있다. 비록 여로 모로 여의치는 않았지만, 엄빠 생활에 하루도 게으름을 피우진 않았다.


나라 밖에서 내가 해야 할 도리는 어느 정도 해낸 것 같아, 귀국을 앞둔 내 마음은 조금은 가볍다. 큰 숙제를 마치고 그것을 막 어깨에서 내려놓는 심정이다.


물론 나라 안으로 홀가분하게 들어가기 위해 나라 밖에서 내 손길과 마음 씀을 요구하는 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곳 생활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는 일이다. 1년간 잘 쓴 차를 팔고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행정처리들을 완벽하게 해 놓아야 한다.


1년 생활의 흔적을 지우는 일을 앞두고, 귀국세를 내는 심정이다. 귀국세를 잘 계산해 내가 정당하게 내야 할 적정액의 세금을 내고 귀국행 비행기를 타고 싶다.


엄빠 생활이 힘겹긴 했지만, 여기서 나는 나를 대상으로 새로운 실험을 많이 해보았다. 취사와 빨래 등 평소 아내의 몫도 1년 대행해 보았고, 에세이, 포토에세이 등 대중적 글쓰기 훈련도 계획대로 해 보았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를 남들과 공유하고, 그런 세계를 좀 더 우리 앞에 가시화시키기 위해 뜻을 같이할 사람들과 마음껏 소통할 수 있는 장치로서 블로그도 만들 수 있었다.


나라 밖에서 시간을 내어 새로운 실험들을 잘 마쳤으니, 나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귀국세 내기를 두려워 말자. 어차피 어느 정도의 귀국세는 반드시 내야만 나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얻은 것만큼 토해 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많이 배우고 느낀 것만큼 내게 따르는 이 일시적 고통의 숙제를 잘 감당해 낼 때가 지금 온 것뿐이다.


조금 마음이 바쁘고 귀찮더라도 내가 정당히 낼만큼 귀국세를 낼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움직이자. 귀국세 내는 부담을 즐거운 불편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내게 남아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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