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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위한 제도와 정책/정책 평론: 사람을 위한 정책

대안적 주거문화운동이 필요하다

숲길지기 2011. 3. 26. 07:04

 

    사람은 어떤 주거환경 속에서 살고 싶은가?  미국의 도시설계 및 도시풍경 치료사인 듀어니와 플레이터-지버크는, 시사이드, 키웨스트, 사바나 등 미국 남부에 소재한 고전적 옛 도시들의 가장 큰 장점으로서, 시야가 탁 트인 전원에 독립된 구조로 자리 잡은 촌락, 생활 필수품이 도시 한 복판에 집합해 있는 점, 걸어서 출근하고 장을 보며 광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금방 친교가 이루어지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이처럼 식품점, 학교, 공원, 카페, 도서관, 서점, 영화관 등이 걸어서 도달할 수 있는 거리 내에 소재해, 우리가 일용 필수품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권리야말로 기본 시민권이다.

   “집 뒷문으로 나가면 걸어서 도서관, 우체국, 식품점, 병원에 쉽게 갈 수 있다. 생활편의시설이 집 주위에 없는 게 없다. 나는 산에서 노는 새들을 보며 클래식, 재즈를 듣고 책을 읽으며 자유시간을 보낸다.”

    이는 미국 콜로라도 주의 소도시 파오니아 시에 사는 과학자 테오 콜번의 말인데, 여기서 우리는 주거공간에 대한 인간의 기본 시민권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도심의 슬럼가 등 과거에 눈엣가시로 불리던 서구의 지역들이 생활의 편리와 풍요로움을 주는 찬미의 대상으로 뒤바뀌고 있다. 슬럼화 되었던 도심지가 다시 부산하게 움직이고, 사람들이 즐겨 찾으면서 공설시장, 광장 등도 활짝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 유럽과 미국의 시민들은 전통적 주택지구의 매력과 안락함을 재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압축성장 논리에 따른 무계획적 도시화의 난개발 속에서 불편한 주거환경과 막대한 통근시간의 고통을 참으며 살아냈다. 모처럼 큰마음 먹고 운동하려고 해도 마땅한 운동장 한구석 발견하기 어렵고, 다양한 책들을 빌려 읽고 싶어도 인근 도서관에 가려면 버스를 일부러 타야 하는 등 생활 코스트를 지불해야만 겨우 최소한의 공공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다.

    [창조적 계급]이란 책을 쓴 리처드 플로리다에 의하면, 과학자, 예술가, IT기술자 등 새로운 창조계급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이 경제, 문화적으로 활성화된 도시의 중심에 몰려들고 있는데, 이들 창조계급이 생활의 터를 잡고 살아갈 만큼 생태 친화적 공간과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 주는 다채로운 문화복지 서비스를 많이 제공해 주는 도시가 자연히 국제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서구의 대안적 주거문화 확보운동을 살펴보면, 서구인들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자기 집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도서관, 서점, 극장, 공연장, 갤러리, 스포츠 콤플렉스가 나오도록 주거생태공간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되면 훨씬 더 생태 친화적, 문화 지향적 일상생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많은 부를 창출하며 지역고용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는 창조도시로의 전환도 쉬워진다. 따라서 향후 우리는 도시 재개발이나 신도시 건설에서 이런 공간(재)배치를 필히 응용, 실천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디지털 정보도서관이 아니라도 괜찮다. 필수 도서를 잘 구비하고 인구분포에 맞게 지역적으로 골고루 분산된 동네 도서관에 마음껏 출입해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비싼 우레탄 트랙이 깔리지 않더라도 부드러운 흙길을 조성해 시민들이 생활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소박한 생활체육시설을 많이 만드는 것도 우선되어야 한다.

   단 주거공간의 재구성 과정에서 가급적 돈이 덜 들게 이를 추진해야 하므로, 기존 공공시설인 지방의회 의사당 및 시청건물의 일부, 마을회관, 학교, 지하철 공간, 동사무소 건물 등의 적극적 활용이 요망된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들 시설(혹은 그 일부)을 문화복지 생활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 예컨대 동사무소의 한 층을 북 카페로 운영하는 서울 노원구의 경우나, 과거의 동사무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구립 미술관으로 재활용하는 서울 성북구의 지혜가 전국적으로 확산, 전염되면 좋겠다.

   앞으론 상업기관이 주최하는 영리목적의 문화행사 보다는, 시민단체 주도적인 문화행사가 더 많이 기획되면 좋겠다. 자기 삶의 진솔한 표현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값진 예술작품이다. 따라서 지역출신 아마추어 작가와 화가들의 작품 전시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 마을회관, 문화회관 등 기존의 공공시설이 이들 전시회의 상설공간으로 무료로 제공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럴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의 생비자(prosumer)가 되어 문화예술을 스스로 생산하고 향유하며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