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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의 글/두 글자의 사유

양심

숲길지기 2017. 4. 11. 17:09


최근의 국정농단 사건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우리사회 상류층들의 부정적 작태를 보며, 우리는 한동안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의 상류층 중엔 서민들을 개돼지로 업신여기며 착취만 하려 드는 그런 부도덕한 부류의 인간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 그런 지위에 오르기 위해 발버둥치는 준() 상류층 언저리의 한심한 인간들도 참 많습니다.


허나 우리사회의 상류층 중엔 돈이든 자리이든 자기가 가진 것을 남을 위해 조금씩 나누려는 사람들도 더러 있고, 서민들과 뭔가를 직접 나누진 않지만 사회의 질서를 잡아나가기 위해  몸소 세상살이의 전범이 되려고 노력하는 양심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평생 조화로운 삶을 추구한 스콧 니어링을 흠모하며 그의 삶의 철학을 모방하는 사람이 아주 없진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하위층은 어떤가요? 불과 20년 전만 해도 민중이라는 개념은 아주 신성한 경외(敬畏)의 개념이었습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견뎌내며 개발독재와 자본의 힘에 당당하게 맞서 인간다운 세상을 앞당기려 힘껏 싸워온 성스런 기층 서민들이 바로 민중이었습니다.


불행히도 형식적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합리적인 재분배 구조가 마련되지 않은 사회에서, 서민들이 살아남긴 참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민중에 속한 기층 서민들 중 일부가 끼어들기 운전 등 거리에서 기초질서를 안 지키며 요행으로 살아가기 시작하더니, 이젠 적지않은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사회의 기초질서 위반을 밥 먹듯이 합니다.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약속 파기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 괴롭히기를 다반사로 합니다세상살이의 요행을 마치 세상살이의 진수처럼 여기며 막가파 식으로 살기도 해 마음 아픕니다.


하위층 중에도 과거 민중 개념에 손색없이 소유보다 존재하기 위해서, 또 "배고픈 사람이 배고픈 사람을 이해한다"고 서로 나누고 돕는 것을 생활화한 훌륭한 분들도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수단방법 안 가리고 사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다 보니 과거 민중 개념의 성스런 이미지는 아쉽게도 자꾸 비현실적 느낌으로만 다가올 뿐입니다.


결국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항시 기대하기도 어렵고, 한때 민중으로 마음속으로부터 숭앙되던 기층 서민층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회가 분열되어도 너무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늘 사적 욕망이 꿈틀거리는 거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혹여나 그 거리의 한 귀퉁이라도 차지하고 잠시라도 서 있으려면 참 버티기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가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것이 사회분열과 무질서의 절대 원흉입니다. 그러나 위물이 맑지 않다고 비난하면서도 아랫물 스스로도 덩달아 흙탕물을 만들고 있는 것도 우리의 숨길 수 없는 현실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것을 더 얻기 위해 모두가 각자도생하니, 사회의 기초질서가 무너지고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점점 빠지고 있습니다.


막가파 식으로 살면서 남을 괴롭혀도 남의 재산을 침범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잘못된 내성들만 사람들 마음속에 잔뜩 길러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는 사회를 좀먹는, 사회를 분열시키는 지름길입니다.


작금의 현실은 계급론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각 계급, 각 계층 내에서 정말 파렴치한 쪽과 양심을 최소한 지키려는 쪽으로 심하게 분열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서운 점은 그런 각 계급 내의 분열이 정글 같은 삶의 현실을 우리 앞에 놓이게 하는 점에서는 상하를 막론하고 공동전선을 굳건히 형성하는 점입니다.


중산층은 이미 무너졌습니다. 과거의 중산층 중 극히 일부만 상류층으로 갔거나 혹은 그쪽으로 가려고 지금 발버둥치고 있고대다수의 과거 중산층은 하류층으로 전락해 사회의 희소자원을 놓고 무한경쟁 중입니다.


과거엔 중산층이 사회의 허리가 되어 사회경제적 충돌을 막고 정치적 의사의 중추를 형성하는 등 중산층의 순기능을 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산층의 사회,경제, 정치적 버퍼링 존 역할이 없어진 지금 우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요?


여기서 다시 도덕교육, 특히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 복잡다단한 난제 앞에서 이 무슨 한심한 해법이냐고 못마땅해 하는 분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마음의 변화, 특히 자신의 부끄러운 짓을 정말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고, 남의 부끄러운 짓을 보면 그것을 그냥 묵인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경계하고 넌지시 통제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또래집단 내에서만의 친목과 그들만의 한정된 가치 공유는 그 집단 밖의 남들에겐 큰 짐이 되고 남들에겐 장애물이 될 뿐입니다.



다시 헌법교육, 도덕교육, 양심찾기 훈련이 전개되어야 합니다자기 것을 더 크게 하기 위해 남을 하냥 괴롭히면, 또 사회의 기초질서를 안 지키면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고, 두고두고 부끄러운 줄 알게 해야 합니다.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그것을 범한 자신도 불편해짐을 알게 해야 합니다. 내가 남에게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그것을 먼저 남에게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최근 개인적으로 집중해서 겪게 된 사회내 무질서와, 또 익명성 뒤에 숨은 채 자행된 얼굴 없는 사람들의 횡포 속에서 우리의 슬픈 자화상을 많이 들여다본 요즘 며칠이었습니다.


'자유의 사회성'이라는 서양 정치윤리, 또 수오지심, 측은지심 등 맹자의 사람의 길이 우리 모두가 당장 공부해야 할 필수 텍스트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들 개념을 화두로 삼아 좀더 체계적인 공부를 한 뒤 그것을 쉽게 풀어내어 사람들에게 기본 텍스트로 내놓는 공부 과정이 저의 숙제거리로 크게 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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