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스토리 텔러 (포토 에세이 블로그)
개발과 보전의 갈림길에 서서 본문
생태에세이를 쓰려다 보니 개발에 대한 얘기를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올리다 보면, 산을 뚫고 강을 막아 큰길을 내다보면, 국토산하(山河)가 망가지고 자연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등 막대한 부정적 영향이 가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발을 해야 따뜻한 잠자리가 보장되고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그렇다고 먹고사는 문제에만 치우쳐 과도한 개발이익이 야기하는 인간서식지 파괴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개발과 보전의 갈림길에서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생태 마인드와 생태친화적 정책지혜가 긴요한 시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읽은 [남기고 싶은 국토개발 이야기](김의원 저, 국토연구원 발행 비매품)는 지난 개발연대 하에 전개된 국토개발의 공과(功過)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국토개발 과정에 30년 이상 참여한 한 전직 건설관료의 회고록입니다. 저자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국토개발 현장을 오랫동안 진두지휘해온 핵심인물 중 한 명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헐벗은 땅에 개발의 깃발을 꽂고 단시일 내에 물적 성장의 토대를 만들어내는 일은, 어찌보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참 지난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자의 강한 의지와 리더십, 또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 전문지식과 집행역량을 겸비한 중간관리자들의 헌신과 노고 등 많은 사람의 공력이 모일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책엔 근대화와 압축성장의 초석을 놓기 위한 사회간접자본(SOC)의 확충, 신속한 성장거점을 마련하기 위한 동남 임해공업단지 조성, 물류를 위한 고속도로 건설, 산림녹화, 한강유역 개발 등등 지난 개발연대하에 전개된 숱한 국토개발의 생생한 역사와 그 역사를 추동한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애환이 잘 담겨 있습니다.
공장, 공단을 세우기 위한 입지선정의 고뇌, 원자재와 수출품을 빨리 실어나르기 위해 도로와 항만을 초스피드로 닦는 얘기들이 생생하게 실려 있습니다.
긴 겨울 농한기 동안 농민들의 일거리 마련과 당시 시멘트 공장의 과잉생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붕개량 등 새마을운동을 적극 전개한 얘기, 산림녹화 및 입산통제를 위해 산림청을 농림부에서 내무부 산하로 옮긴 얘기 등은, 이 책을 읽으며 새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아울러 전국의 대학에 조경학과가 설치된 역사적 배경의 소개도 흥미롭습니다.
자생풍수 지리학자 최창조 선생의 표현처럼 ‘천상(天上)의 지리학’ 장면도 책에 종종 나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건설 개발관료들이 헬기를 타고 높은 상공에서 빈 종이에 자로 선을 긋듯 도로 건설입지나 공단 입지를 선정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의욕과 열정을 토대로 단시일내에 국토개발 계획이 수립되고 신속한 토건작업에 힘입어 오늘의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 공장과 도로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땀과 눈물에 힘입어 당시 최빈국으로서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에서 오늘의 물적 토대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렇듯 명(明)이 있으면 암(暗)도 있는 법입니다. 이젠 화려했던 국토개발의 명에 가려진 어두운 암의 측면을 볼 줄 아는, 아니 꼭 봐야 하는 새로운 눈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지금은 천상의 지리학이 더이상 정답일 수 없습니다. 지역의 세세한 현실과 맞춤형 정책수요를 경시할 수밖에 없어 그 역기능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종래와 같이 압축 근대화와 압축성장을 위해 단기적 성과효율과 속도효율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국토 디자인은 득보다 실을 크게 합니다.
실제로도 혁신도시, 기업도시, 메가시티(초광역 도시권) 등 현 거점개발 방식은 여전히 국토발전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거기서 소외된 지역들의 지방소멸을 가속화시킬 뿐입니다.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종래의 국토개발과정에서 자행된 난개발, 막개발의 경로의존성이 너무나 큽니다.
"인프라, 일자리, 관광,산업 유치는 해마다 읊어지는 자치단체장들의 신년사에 등장하는 공동 키워드라고 합니다. 아직도 개도국형 토건모델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오영환, [지방이 시작이다] 참고) .
지방의 적지 않은 도시들이 과다하게 예상한 계획인구를 빌미로 도시외곽을 무리하게 확장하며 도시팽창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관할구역 안의 빈 땅만 보면 성급하게 손을 댑니다. 삽질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번 시작된 삽질은 매몰비용을 빌미로 완공식까지 계속됩니다.
문제는 물리적 개발과 도시외곽 확장을 목표로 하는 정교하지 못한 성급한 삽질이 난(亂)개발, 광풍개발로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는 지역자연의 파괴, 생태계 교란이라는 위험의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옵니다. 가해자인 인간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자연의 반격이 기후파괴의 생생한 증거자료로 나날이 쌓이고 있습니다.
이젠 국토를 다른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난개발의 개연성이 커서 지역의 자연과 그곳에서 살아갈 후세대에게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줄 여지가 클수록, 환경영향평가와 세대영향평가를 통해 개발용 삽질에 대한 정당성과 안전성을 진지하게 따져보는 사전동의 절차와 공론조사의 숙의 과정이 필수입니다.
천상의 지리학이 아니라 땅 위의 지리학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땅을 보는 눈높이가 중요합니다. 낮은 데로 임해 바로 땅의 눈높이에서 난개발에 신음하고 허덕이는 사람들과 병든 자연을 보듬는 성숙한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병든 땅을 치유하고 아픈 땅을 건강한 땅으로 복원할 수 있습니다.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땅은 청정구역으로 계속 보전할 수 있습니다. 고향의 자연을 지키며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건강과 새로운 살 길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목수철학도 필요합니다. 나무의 가치를 잘 알고 재목을 아끼는 목수일수록 함부로 톱질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중하지 못한 채 함부로 나무에 톱을 들이대면 톱질이 잘못될 수 있고 그러면 비싼 원목을 버릴 수밖에 없듯이, 한번 잘못 재단된 도시설계와 지역계획은 돌이킬 수 없는 자연파괴와 소중한 땅의 버려짐을 낳습니다.
“최소한 측정 2번 정확한 톱질 한번”, 그런 목수철학이 국토계획, 지역계획과 도시설계에 필요합니다.
물론 이 책에 소개된 것처럼 압축근대화와 국가발전의 물적 토대 마련이라는 당시 국토계획과 개발행정의 명(明)과 공(功)에 대해선 어느정도 인정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공(功)이 과(過)를 천년만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공이 과로 변하고 과가 공을 크게 누른다면, 바로 난개발의 삽질을 멈춰야 합니다. 속도제한(speed limit)을 가하며 삽질의 부작용을 철저히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잘못의 흔적을 생생한 반면교사로 남겨야 합니다.
4월 중순쯤 가성비 좋은 만두전골 식당을 찾아 하남 미사지구 인근에 간 적이 있습니다. 만두 먹으러 간 김에 덤으로 벚꽃놀이도 즐겼는데, 그날 벚꽃의 향연을 맛본 하남 강정뜰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오랫동안 잘 보전돼온 땅입니다.
강을 따라 길게 식재된 벚꽃행렬의 향연을 즐기기 위해 찾아온 많은 사람의 얼굴엔 기쁨이 흘러넘쳤습니다. 발걸음도 흥겨웠습니다.
사람들은 하남 강정뜰의 아름다운 장소감을 맘껏 향유하며 그곳에 찬사와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곳은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지켜주는 보루로 남았으면 합니다.
향후엔 이처럼 개발용지와 보전지역의 경계를 분명히 두어야겠습니다. 개발지역은 고도이용하되 부작용도 경계하며 속히 치유해 나가야 합니다.
아물러 사람들이 맘껏 숨쉴 수 있는 허파같은 자연과 사람들이 터잡고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살기좋은 땅을 더 많이 찾아내고 지켜내는 부지런함과 슬기로운 지혜도 필요합니다.
이젠 국토의 양적 개발보다 국토의 질 관리, 개발과 보전의 균형감을 전제하는 격조높은 국토행정이 요구됩니다.
'생태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에서 배우는 생태적 가치 (2) | 2025.05.01 |
---|---|
자연과 친구 맺으며 생물 계절학 맛보기 (4) | 2025.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