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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 큰 생각 본문
임형남, 노은주, [작은 집 큰 생각: 작고 소박한 집에 우주가 담긴다]. 교보문고, 2011
부부 건축가인 이들은 함께 작업하고, 책도 항상 함께 쓰는 것 같다. 이들의 글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내가 읽은 그들의 글은 모두 부부가 같이 쓴 글이다.
이 책은 대안학교를 하는 한 분의 집 설계를 의뢰받은 저자들이 충남 금산이란 곳에 도산서당을 본뜬 검박한 집을 설계하는 과정을 스케치한 것인데, 이들은 책의 곳곳에서 크고 화려한 것만 추구하는 현대건축의 허상과 작지만 집주인의 정신세계를 담은 동양 건축철학의 특장을 흥미있게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다.
먼저 저자들은 집에 대한 현대인의 생각에서 허구성을 끄집어낸다. 즉 바쁜 일상 속에서 현대인들은 대개 잠자는 시간만 집에 거주하는데도, 살기 위한 집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집을 만들기 위해, 큰 집을 짓고 화려한 집을 만들려고 인테리어 경쟁을 앞 다툰다. 그리고 행여나 집이 상할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현상 등 집이 상전이 되고, 사람이 집의 노예가 되는 오늘의 모순점을 지적한다.
저자들은 그러면서 집 지을 때 가장 염두에 둘 것은 기준을 자기에게 두는 것임을 강조한다. 자기의 취향과 안목 없이 남의 시선, 체면 등에 휘둘리다 보면 으레 거품이 들어가는 법이므로, 집 지을 때 꼭 필요한 것과 없어도 되는 것을 가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그러면서 선배 건축가인 김중업의 건축 철학을 불러낸다. “건축은 집을 통해 그 사람의 자화상을 그려낸 것이며, 제대로 만든 집은 주인과 건축가를 닮는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에게 있어, 집은 쉘터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 투사물이며, 그래서 전통가옥(퇴계의 도산서당, 남명의 산천재 등)은 선조들의 정신을 직접 만나는 통로라고 본다.
결국 저자들의 집 철학, 건축설계 철학은 “작은 집이 적절한 집”이란 것이다. 여기서 작은 집은 크기가 작다는 의미보다는 본래의 집 의미로 돌아간 소박한 집, 적당한 집, 본연의 집이며, 거품을 빼고 환경을 생각한 집,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집이다. 특히 공간이 사람을 지배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편안한 재료로 몸에 맞는 규모로 지어진 집이다.
저자의 이런 건축설계철학은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즉 설계과정부터 지어질 집에 대한 사항을 최대한 건축 의뢰주에게 이해시키며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만들고자 하는 집의 적절한 모형을 보여주며, 건축가와 의뢰주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의뢰한 사람의 생각과 욕심에 설계자가 일방적으로 끌려가서도 안 된다. 건축가의 전문가적 견해와 균형된 생각이 요구된다.
그래서 저자들은 막상 설계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땅을 보고 스케치북에 땅을 스케치한다. 그 다음 간단하게 집 윤곽을 그리는데, 그 때 본 땅의 모습, 땅을 둘러싼 조건, 그 장단점과 보완점들이 건축가의 머릿속에 열거된다.
각각에 대한 건축적 대응이 바닥에 깔리고, 그가 땅에서 느낀 건축적 바람이 그 위에 반영된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모형을 만들어 의뢰자에게 설득하고 이해시킨다.
일례로 저자들이 설계한 금산주택의 경우,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집을 약간 뒤로 밀어내 산과 조금 더 떨어져 보이게 하고, 산과 집 사이에 환한 마당을 두기 위해 집을 단순하고 작게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노력을 “오랫동안 그곳에 있던 산, 땅, 바람이 좋게 봐주어 집이 순조롭게 지어졌다”고 한다.
즉 "건축가가 한 것보다는 산, 바람, 땅이 다 한 것이며, 그래서 자연은 늘 옳다”며 집에 대한 자신들의 설계철학을 재 강조한다.
저자들의 건축설계 철학은 오늘의 정책설계에도 응용해 볼만하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묻지마 즉흥법안’들을 없애기 위해선 더욱더 그렇다. 평소엔 정치인들이 사회문제에 귀를 닫고 마이동풍식으로 흘리다가도 선거철만 되면 재정적 뒷받침 따윈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지역민원들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즉흥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건축설계에서 주변 환경과 건축물 입지의 조화로움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창문 하나하나의 용도와 위치에도 고심하며, 집에 들어올 빛의 양이나 바람의 소통 여부를 재차 점검하듯이, 평소의 정책 만들기에서도 많은 정책변수를 심도있게 고려해 반영하는 철저한 정책설계 과정과 민원인들과의 민주적 대화 및 소통통로가 필요하다.
특히 정책대상집단들의 포괄적 정책수요를 공익의 견지에서 정확히 인지하는 것은 물론 정책실험(policy pilot) 단계를 거쳐 문제의 소지를 철저히 점검, 예방해 나가는 체계적인 정책설계 개념이 조속히 제도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중(多衆)의 공익에 부합하고 실현 가능한 정책안이 만들어진다.
인문적 건축을 평소에 강조하는 저자들의 건축설계 철학에서, 선거철만 되면 마구 쏟아져 나오는 묻지마 정책안들의 홍수를 막기 위해 정책설계 개념의 제도화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던 아주 좋은 독서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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