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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 저,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망해가는 세계에서 더 나은 삶을 지어내기 위하여] (동녘, 2024) 본문

일상 속의 글/대안적 발전 책 소개

양미 저,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망해가는 세계에서 더 나은 삶을 지어내기 위하여] (동녘, 2024)

숲길지기 2025. 5. 30. 12:24

 

 

이 책은 시골살이에 대한 책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무대인 시골은 우리가 동경하는 낭만적 시골, 전원의 목가적 삶을 그리며 떠나는 그런 시골이 아닙니다.

 

저자는 험하고 거친 도시적 삶에 지칠 대로 지친 채 자신의 생계가 좀더 가능한 곳을 찾아 시골로 들어간 귀촌인입니다.

 

저자는 시골에서 프리랜서 기자, 인권,환경강사로 일하며 근근히 버티고, 식재료의 자급자족을 위해 텃밭 수준의 일부 농삿일도 합니다.

 

하지만 승용차를 구입,운행할 여력이 없어 어쩌다 한번 오는 버스를 마냥 기다리며 힘겹게 프리랜서 기자나 인권,환경 강사로 일하러 다닙니다.

 

그러면서 피부로 겪게 된 농촌현실의 여러가지 애로사항과 많은 문제들, 특히 교통불편과 일자리 얻기의 고단함과 그것과 연관된 구조적 모순에 대해 토로하고 있습니다.

 

시골살이의 일상적 불편함을 호소하는 단순한 넋두리와 불만의 표출만 이 책에 가득하다면, 그런 불편들은 우리가 어느정도 알고 있어 이 책을 굳이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책의 가치는 저자가 시골의 많은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하고, 또 시골 삶의 고통을 대변하고 그 해결방책을 제시하기 위해 올바른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는 점입니다.

 

저자는 시골에 거주하는 젊은(?) 여성이기에 응당 부여되는 마을 공동체의 며느리가 되기보다는, 시골의 구조적 모순과 각종 악습에 정면충돌하면서 치열한 저항의 시골살이를 시작합니다.

 

그런 점에서 베이비 부머가 꿈꾸는 낭만적 시골살이와는 완전히 맥을 달리하는 얘기들이 책에서 시종일관 전개됩니다.

 

저자의 눈에 비친 시골은 부정적 의미에서 도시보다 더 정치적인 곳입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시스템으로 가득찬 곳입니다. 매사가 이권과 연결되고 이권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한통속이 된 사람들의 견제받지 않는 행태가 아무 부끄럼 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곳입니다.

 

시골에선 환경, 젠더, 인권, 기후위기 문제는 아랑곳없고, 관광산업과 개발이익만 항상 최우선시될 뿐입니다.

 

고령층이 많은 시골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못해 이동이 극히 불편한 점입니다. 시골 노인들은 하루에 두세번 겨우 다니는 버스에 의존해야 하는 교통약자의 얄궂은 운명에 결국 처합니다.

 

젊은 사람들도 차가 없으면 일자리 얻기도 힘들고 여러 가지 실생활이 불편해집니다. 그러니 울며겨자 먹기로 승용차 구입비 및 유지비를 빠듯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충당해야 합니다. 각자도생을 강요받는 현실인 것입니다.

 

주민들이 기본권인 이동권, 경제권을 박탈당하는 문제를 풀려면 지방행정이 유능하고 능동적이어야 하는데, 자치단체장의 의지는 약합니다. 행정은 안이하고 공무원은 무능합니다.

 

소통령 대접 받는 군수, 특정 세력의 이권만 대변하는 군의회 의원들, 주민감시 역할에 자족하며 이권을 손에 쥐고 주민을 편가르는 이장등 일선행정의 무능과 무책임이, 시골주민의 일상을 불편하게 하고 그들 마음을 아프게 하는 현실도 책에 잘 그려져 있습니다.

 

저자는 매년 중앙에서 40-50개 지원사업이 내려와도 그 내용을 잘 알고 제대로 집행하는 공무원이 지역에 드물다고 지적합니다.

 

구조개선이나 인식의 변화 없이 형식적 제도만 많으면 실질적 지원과 돌봄을 기대하기 어렵고 예산만 헛되이 쓰이는 꼴이 됩니다.

 

시골은 더 이상 도시에서 지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장소여선 안됩니다. 도시 낙오자들의 임시 도피처도 아닙니다.

 

가난하고 삶에 지친 늙은 우리 부모들이 오늘도 내일도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레알 삶의 현장입니다.

 

저자의 시골살이는 도시의 배후라는 시골의 이런 테두리성에 대한 신체적 감각 위에서 벌어지는 철저한 정치적 과정”으로 전환됩니.

 

저자는 문제투성이고 모순덩어리인 시골에서 마을 바로 세우기를 주창하며, 이동권, 주거권, 일자리 등 경제권을 정치적 의제화하는 마당쇠 역할을 자처합니다.

 

이는 저자가 젊어서부터 소비하는 인간이 아니라 새 구조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자했기에,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자연스런 정치적 발언이자 정치적 행동으로 보입니다.

 

새 구조를 만들려는 그의 시골살이는 대안의 가능성 찾기로 부단히 연결됩니다.

 

저자는 대안은 괜찮은 삶을 더불어 누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가능성으로정치는 그 가능성을 찾는 사람들의 활동을 보장해주고 권장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저자는 좋은 정치는 좋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 시민에게서 나온다, 일상의 아래로부터의 더 촘촘한 민주주의가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누가 구조를 만드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제도 이전에 권리를 인식하고 요구하는 노력이 쌓여야 그 권리가 제도적으로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시골의 최대현안인  연결될 권리(교통권), 돌봄의 권리(주거권), 존엄을 지킬 일자리 제공(경제권)의 지역 맞춤형 구조 만들기를 주민의 입장에서 강하게  제안하고 외국의 관련 사례도 적극 소개합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시의 도시발전 양상과 시민 삶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설치된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부속 바바라/에드워드 네터 공동체 협동센터(The Barbara and Edward Netter Center for Community Partnership)의 센터장인 아이라 하커비(Ira Harkavy)지역에 대해 배우는 최선의 방법은 그 지역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라며 실천적 지역학을 주창한 바 있습니다

 

역시 지역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그곳에서 오래 살며 당사자주의에서 문제를 고민하고 직접 해법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론 몹시 힘겹지만 시골에서 살아가며 온몸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데 앞장서는 제대로된 시골살이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더많은 사람들이 당사자운동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변화의 목소리를 내면, 시골은 지금보다는 훨씬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시골의 현안인 연결될 권리(교통권), 돌봄의 권리(주거권), 존엄을 지킬 일자리 제공(경제권)의 지역 맞춤형 구조가 자리잡는 속도도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한번 참여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음미해봅니다. 아래로부터의 더 촘촘한 민주주의가 긴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자신의 삶이 부정당한다고 해서 훌쩍 이사를 가거나(exit), 그냥 현실에 묵종하기(loyalty)보다는문제에 직면한 당사자들이 새로운 구조를 만들기 위해 정당한 목소리(voice)를 내는 당사자 주권의 가치를 다시한번 되새기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정치적 시골살이를 한껏 응원합니다. 마음으로부터의 지지도 듬뿍 보냅니다.

 

한편으론 정년퇴직 후 낭만적 시골살이를 한때 도모했던 저의 안이한 내면도 성찰해 봅니다. 은퇴 이후에도 계속 지방소멸 문제를 손에서 놓지 않고 지역의 맞춤형 활성화 방안을 공부하며 현실 가능한 해법을 공유, 확산하는 기회를 계속 가져볼 것을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