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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량한 기후파괴자입니다: 기후위기를 외면하며 우리가 내뱉는 수많은 변명에 관하여 (토마스 브루더만 저, 추미란 역, 동녘, 2024) 본문
나는 선량한 기후파괴자입니다: 기후위기를 외면하며 우리가 내뱉는 수많은 변명에 관하여 (토마스 브루더만 저, 추미란 역, 동녘, 2024)
숲길지기 2025. 4. 4. 17:39지난 여름은 유난히 덥고 습했다. 글로벌 보일링이란 말이 실감 났다. 무더위에 지치자 기후문제에 대한 우리의 얄팍한 이성은 쉽게 굴복했다. 에어컨 앞을 떠나기 어려웠다.
지구생태계를 고의나 악의로 파괴하는 사람은 없다. 머리론 생태계 보전을 중시하고 입으론 기후정의를 부르짖는다. 그러나 에어컨 등 과도한 전력소비를 일삼고 코로나 이후 보복 해외여행이 폭증해 항적운 문제 등 기후파괴를 자행한다. 하지만 숱한 변명(이 책의 25가지 변명)만 난무한다.
우리는 자신이 기후친화적 삶을 산다고 착각한다(나는 대체로 환경친화적으로 산다, 좋은 의도에서 한 행동이다, 내 잘못이 아니야, 다른 수많은 이유가 있다). 기후문제 해결에 있어 과학기술 낙관론에 의지한다(신기술이 우릴 구해줄거야). 지금은 즐기고 다음부터 실천하면 되지 마음먹는다(내일 다음달 내년부터 혹 언젠가). 잠시 환경을 파괴해도 그 영향은 미세할거야 단정한다(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때론 나 혼자 환경보호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나며 합리화한다(모든 걸 다 고려할 순 없어, 문제가 너무 복잡해, 다들 그렇게 해). 나중엔 자포자기 심정으로 핑계만 늘어놓는다(너무 늦었어, 나는 급진적 자연주의자가 아니거든, 습관을 바꾸긴 쉽지 않아). 이처럼 숱한 변명으로 긍정적 자아상을 유지하며 오늘도 기후파괴에 발 담근다.
이 책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기후친화적으로 바꾸지 못하게 만드는 다양한 심리적 장벽들이 어디서 오며, 그것들이 어떻게 기후친화적 행위를 집요하게 방해하는지를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 의거해 자세히 설명한다.
예컨대 제한된 합리성, 인지편향, 기후변화로부터의 심리적 거리, 사회적 규범과 동조 등 자기방어, 시점 간 결정, 학습된 무력감, 확증편향, 후광효과, 습관과 사회적 관행, 도덕적 면허, 환경원시(遠視), 사건결과를 자신만의 긍정적 자아상에 맞게 해석하는 행동경제학의 자기봉사 편향, 사후 합리화 등이, 기후친화적이지 못한 생활방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긍정적 자아상을 유지하는 심리기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 동기부여하며 자발적으로 기후친화적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며, 기후친화적 삶을 부르는 구조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행동경제학의 넛지 이론을 인용하며, 우리가 좋은 결정을 쉽게 내리도록 결정상황을 만들 것을 강조하며, 자가 넛지의 몇 가지 예를 제시한다.
예컨대 항공사 소식지 대신 철도 소식지의 정기 수신, 차 나가는 길목에 자전거 배치, 채식의 날 지정, 유기농 채소의 정기적 구입 등 자신만의 선택구조를 스스로 만들 때 이들 습관 덕으로 기후친화적 선택구조가 마련된다며 자가 넛지의 유용성을 제안한다. 채식주의자들이 자꾸 눈에 띌 때 자신도 육식소비를 줄이게 되는 역동적 규범이 만들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 기후친화적 방향으로의 거시적 구조변화를 가져오는 개인 차원의 미시적 토대 마련에 긴요한 논의인 생태교육, 생태윤리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부족한 것이 이 책의 아쉬운 점이다. 오늘의 기후-생태위기는 도구적 자연관과 인간중심주의 등 우리들 마음의 문제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어릴 때부터 생태윤리를 체화시키는 생태교육이 긴요하다. 즉 자연을 자원이나 개발대상으로만 보는 도구적 자연관과 인간중심주의의 폐해, 생태계가 인간 삶의 터전임을 깨우쳐주는 전체론적 사고, 생태계 일원으로서의 인간의 생태적 배태성 등 생태소양교육, 생태윤리 학습의 정례화, 체계화는 마음의 생태학을 가꾸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기후변화의 핵심변수라면 사람을 기후친화적으로 키우는 혹 기후파괴행위에서 최소한 벗어나려는 성찰적 인간으로 만드는 교육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할만하다. “포기하는 순간 핑계(변명)를 찾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방법을 찾는다”란 말이 있다. 정현종 시인의 시구처럼 “짐승스런 편리보다 사람다운 불편”이 어려서부터 몸에 배게 학습해야, 변명보다 책임있는 행동을 하고 윤리소비의 체화가 가능해진다.
생태교육을 통한 생태윤리의 체화가 기후친화적 거시구조의 변화를 낳는 미시적 행위의 토대로 작용할 때, 저자가 강조하는 자가 넛지가 남의 눈을 의식해 몇번 해보다 마는 일회성, 과시성을 떨쳐버리고 역동적 규범의 행위수용효과를 높일 수 있고 결국 기후친화구조의 정착도 앞당긴다.
저자는 278-281쪽에 걸쳐 이 책에 소개된 25가지 변명에 대한 반대주장을 리스트 업하는데, 저자의 생각처럼 “종전의 변명이 달리 생각해보면 기후친화적 삶의 변명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도 기후친화적 자발적 행동동기를 만들어주는 생태교육, 생태윤리 학습은 긴요하다.
저자는 기후파괴의 변명을 낳는 인간 심리에 대한 딱딱한 개념과 이론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예와 일화를 담고 각 장 끝에 내용요약이나 그 배경을 설명하는 상자를 배치했다”고 하는데, 저자의 배려 덕에 책을 읽는 내내 기후파괴를 낳는 복잡다단한 심리적 장벽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듣는 기분이다.
생태교육과 윤리 논의는 다소 아쉽지만, 지구 보일링 시대에 짐승스런 편리를 추구하는 우리의 얄팍한 마음과 변명 뒤의 의도치 않은 행동이 생태발자국을 크게 낳음을 성찰하며 기후보호 및 기후정의 실천의 필요성을 깨우치는 데 유용한 저서로 생각된다.
(위 글은 국회도서관이 발행하는 [금주의 서평], 제2024-47호(통권 제706호)에 실린 필자의 글에 서평내용을 좀더 추가한 것입니다. 봄마다 겪는 대형산불의 주요인으로 기후변화가 주목되는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글로벌 보일링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기후파괴의 변명을 넘어 기후친화 구조의 정착"을 위해 다같이 노력해야 함을 명심하기 위해 서평 글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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