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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숲길지기 2016. 8. 3. 17:10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학동네, 2015.

 


학연, 지연, 직연(織緣) 등 화려한 기회사슬 구조를 통해 부와 권력을 서로 나눠 가지려는 막강한 집단주의 문화 속에 안주하려는 여느 한국인들과 달리, 이 책의 저자는 용기 있게 자신이 개인주의자임을 선언합니다.

 

“내겐 오뚝이처럼 제자리로 돌아와 나 자신을 대면하게 만드는 습성이 있다. 인간관계를 너무 넓혔다는 두려움이 몰려오면 덜컥 움츠린다. 세상과 전면적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관계를 맺는다. 내 공간을 침해받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솔직한 욕망이다.”

 

집단 논리에 의거해사람을 평가하는 세간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저자는 일단  “개인주의하면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깨는 배신자로 매도되지 않을까?” 우려도 하지만, 다음과 같은 단호한 판단에 의거해 곧바로 개인주의의 진면목을 옹호합니다.

 

“개인주의는 르네상스 이후 인류문명의 엔진이다. 다층적 갈등구조에선 특정집단이 나를 영원히 보호해 주지 못한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며 전략적 연대와 타협을 해나갈 주체는 바로 개인들이다. 개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해 서로 존중하며 책임의 한계를 명확히 할 수 있다. 그래야 집단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에게 최선인 전략적 사고가 가능해진다”

 

사회 저변에 깊게 뿌리박힌 집단주의 문화의 성행 때문인지, 저자는 “유전적 외향성이나 사회성이 강한 사람 중독증 환자들이 훨씬 더 행복해지기 쉬운” 한국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걱정합니다.

 

그러면서 “내성적으로 사회성이 약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고민해야 한다. 집단이 요구하는 술 잘 먹고 상사 잘 모시고 분위기 잘 잡는 전사가 될 것을 강요하기 보다는 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서로 간섭하지 않고 배려하는 성숙한 개인주의 문화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개인주의 문화의 사회적 확산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불행히도 개인주의자의 눈으로 보면, 한국사회는 아직도 적잖은 집단주의, 패거리사회의 병폐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돈과 실리의 추구를 넘어 지위재(地位財)에 대한 집착이 심한 사회이다. 즉 어느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느냐에 목을 맨 사회이다. 대학생들이 입는 과잠도 전리품으로 과시용이다. 개인이 아니라 소속 학교, 학과, 학번 등 집단에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그에 따른 위계질서에 개인의 복종을 강요받는 사회이다.”

 

저자는 그런 자승자박에서 한국인들이 불행해지는 이유를 찾아냅니다. 그래서 남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대안으로서 합리적 개인주의를 제안합니다.

 

저자는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집단속에 숨는 대표적 모순으로 한국사회의 이념 대립을 해부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에 극심한 이념분쟁이 판치는 것으로 보지만, 저자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엔 좌우가 없다. 보수와 진보는 정부의 역할, 복지정책, 조세정책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나뉘지만, 한국에서의 대립은 이념이나 정책이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 애향심, 세대차이가 결합된 것이다. 그래서 이념적 미분화 상태 혹은 이념부재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이념 코스푸레증에 빠져 있다“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좌우 자판기를 철거해야 하며, 우리가 미래를 공동구매하지 못하면 강제배분된다”고 우려합니다.

 

이념논쟁에서 벗어나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해, “어느 집단도 급변하는 세상에선 완벽한 해답이 되기 어렵다. 개인들 각자의 실사구시 정신이 필요하며, 막연한 믿음보다는 실증적 근거를 갖고 서로 토론하며 차선과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 상대를 몰살시키는 전쟁보다는 타협이 현실적”이라며, 그런 점에서 집단적 이념논쟁에 빠지기 보다는 비그포르스의 [잠정적 유토피아]를 현실적 차선책으로 제안합니다. 예컨대 생산성의 향상이 노동자의 이익에도 도움되는 쪽으로 유도해 분쟁을 예방하는 것이 현실적이란 것이지요.

 

물론 “북구의 높은 세율은 부담이 된다. 세금으로 복지서비스를 공동구매하라고 하지만 내가 선택해 선호하는 서비스를 집중 구매하려는 욕구가 있다. 또 월급의 절반을 세금으로 낼 만큼 희생정신은 없다”라며, 보편적 복지의 급속한 확대에 대한 개인주의자적 소견도 슬쩍 드러냅니다.

 

그러나 “북구모델의 주장에 경청할 준비는 되어 있다. 막연한 유토피아가 아닌 실현 가능한 정책제안으로 설득해줄” 것을, 즉 “정책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지점이 있음을 근거로 설득하며, 내가 낸 세금이 효율적으로 쓰여 반드시 내게 혜택으로 돌아온다”라는 제도적 신뢰를 유능한 공무원들이 만들어 줄 것을 제안합니다.

 

저자는 사람의 이기심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체의 행복에도 일면 책임감을 갖게 하는 합리적 개인주의자로서의 마인드 학습 모델로서 스웨덴 인들의 문화적 전통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컨대 ' 라곰'은 바이킹 시절 스웨덴인들이 술통을 돌려 먹으며 깨달은 진실에서 나온 것이라 합니다. 누가 너무 많이 마시면 뒷사람이 마실 게 없고, 또 누가 중간에서 너무 적게 마시면 뒷사람에게 부담이 되므로 각자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정당한 몫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지요.

 

결국 자기의 자유를 위해 공동체적 질서를 최소한 갖추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합리적 개인주의의 덕목입니다.

 

합리적 개인주의는 자신의 자유만큼 그것에 상응하는 책임에 대해서도 균형적 시선을 놓치지 않습니다. 즉 자유의 사회성만이 진정 자신의 자유를 지켜주는 보루임을 아는 것입니다.

 

저자는 “창조자보다 평론가가 많아 결과 책임론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한계가 결국 책임자들로 하여금 결정 장애를 앓게 한다”라고 지적하며, 그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선 영미식 실용주의, 즉 의무를 다하면 과감히 책임을 면해줘, 스스로가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지게 하는 가치관을 정립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영화 ‘스파이더맨’의 대사처럼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비록 지위는 낮아도 자기 책임을 다한 사람을 영웅화하는 미국을 예로 듭니다. 그 나라에선 아이돌보다 소방관이 아이들 환호를 더 받는다지요.

 

저자는 “위기 시에 한 사회의 성숙함이 나온다”라고 전제하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험한 세상에서 내 아이를 지켜내지 못하므로, 서로 아이를 지켜야 내 아기도 지켜진다”고 강조하며 책을 마무리짓습니다.

 

개인적 자유의 향유와 그것이 요구하는 공동체주의적 책임의 조화를 강조하는 것이지요.

 

결국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자신의 자유 간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최대 관심사이자 행위의 지향점인 것 같습니다.

 

자유의 사회성만이 진정 자신의 자유를 지켜 내는 최후의 보루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