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스토리 텔러 (포토 에세이 블로그)
창조 본문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나는 꽤 비판적인 사람이다. 아니 부정적인 사람이다. 세상의 사물과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의 호불호(好不好) 기준에 따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특장을 지닌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생각과 의견, 말투까지도 100% 전폭 수용한다. 그러나 내 못된 호불호 기준에 따라 불호에 해당하는 생각이나 습관, 말투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나는 그를 속으로 나무라다가 종종 그에 대한 비판을 겉으로 표출하고 만다. 남들도 나에 대해 그럴 수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그래서 나도 누군가의 비판의 도마 위에 자주 오르는 생선 신세가 될 줄 뻔히 알면서도, 그 버릇을 잘 못 고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남에게 비판만 하진 않고, 종종 비판과 더불어 “당신은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는 대안도 나름대로 제시한 경우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런 경우엔 과연 진정으로 그에게 대안을 준 것인가?
아무리 좋은 귀띔도 귀띔하는 방법이 상대의 수용범위 안에 있지 않으면, 그저 날이 시퍼렇게 선 칼날로만 느껴질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의 한마디 훈수는 그저 아무 소용없는 훈장님 말씀이거나, 아니면 병 주고 약주는 식의, 그래서 결국은 비판의 연장선에 놓인 잔소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요새는 남에게 무엇을 얘기할 때 그 방법에 대해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는 방법론의 한계에 자주 봉착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판의 건설적 내용과 더불어, 말하는 방법의 창조적 건설이 절실한 경우를 많이 직면한다.
“비판은 쉽고 창조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남 얘기하긴 쉬운데, 자기 얘기 하긴 어려운 법”이란 말도 있다. 비판은 남을 향해 하는 것이고, 창조는 자기가 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방 바라보기이다. 그의 관점에서 그의 문제와 상황을 보면 그에게 내가 해야 할 말의 내용과 방법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 그에게 정말 해주고 싶은 충고가 더 가능해지며, 그리고 그에게 정말 쓸모 있는 대안, 즉 문제해결방안이 전달될 것이다.
그런 말의 내용과 방법에 익숙해지기 위해선, 세상만사를 꼬인 눈으로 보는 못된 마음을 스스로 꾸짖고, 남을 비판하기 이전에 그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고, 그의 역량의 범위 내에서 문제해결책을 만들어 전해주는 고독한 훈련이 많이 필요하겠다.
이제야 “비판은 쉽고 창조는 어렵다”는 얘기의 뜻을 조금은 알겠다. 결국 남에 대한 일방적 비판보다는 내가 변해야 결국 상대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나를 변화시키는 창조적 고통이 있을 때, 내 비판이 남에게 효용을 주는 약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