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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의 글/두 글자의 사유

공원

숲길지기 2011. 6. 10. 03:29

서울의 외곽 산 아래 있어서인지, 우리 집 근처엔 비교적 공원이 많다. 불암산 도시자연공원, 노해근린공원, 중계근린공원, 양지공원 등등---. 그래도 공원이란 글자가 비교적 많이 눈에 들어오는 곳이 우리 동네이다.

 

 

어디 발 한 뼘조차 풀이나 흙을 접할 수 없는 그런 곳에 거처하는 분들에 비하면, 집 주변에 녹지공간이 많아 그런 점에서만큼은 내 삶의 질은 높은 편이다. 그런데 이런 삶의 질이 산 하나면 넘으면 경기도인 서울 변두리이기에 가능한 것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우리 사회는 도시화율 90%가 넘는 선진국형 도시화율을 자랑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다수의 국민이 터 잡고 사는 도시들이 인간생활 정주(定住)공간, 즉 사람이 터 잡고 오래 살만한 공간이 전혀 되지 못하는 점은 큰 자성(自省)의 시간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래도 집 인근에 변변한 산이나 숲 한 자락이라도 있으면 그것 참 행복한 일이다. 도시 안에 흙이 사라지고, 멀쩡하게 있던 숲이나 나무도 뽑혀 팽개쳐지고 그곳에 아파트나 길만 자꾸 생기는 못난 세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연구년 와 Eugene이란 도시에서 1년간 살면서 인간생활정주공간이란 개념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았다. 물론 이 나라는 땅이 워낙 넓어 시정부가 마음만 먹고 재정만 허락하면 그까짓 공원 하나 만들기는 누워서 떡먹기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곳 유진만 해도 도시의 양 옆으로 큰 산맥들이 길게 뻗어 있어, 그 산맥들 안에 갇힌 계곡(윌라멧 밸리) 안 도시이다.

 

 

인구가 얼마 안 되어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 시 정부의 공원조성정책(park policy)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유진 시민들이 풍족한 도시공원을 맛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즉 땅의 물질적 공간이 풍족해서 보다는, 인간-자연의 공존을 위해  원시자연(natural environment) 을 사람의 공원(built environment)으로 정성스레 확보하고 알차게 운영하려는 이 시의 공원정책에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넓은 땅을 갖고 있어도 우리처럼 “무슨무슨 공단이다,” “무슨무슨 기업도시다, 혁신도시다” -- -이런 식으로 경제적으로만 땅을 이용하려 들면, 공원이 들어서긴 참 힘들지 않겠는가?

 

 

미국에 와서 재차 놀란 점은, 어느 도시에 가도 기본적 사회기반시설과 생활편의시설이 골고루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학교, 쇼핑센터, 교회, 도로는 말할 것 없고, 도서관, 공원, 예술회관, 시빅 센터 등등 시민의 문화생활, 전원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이 이른바 공공재(public goods)의 개념으로 잘 구비되어 있다. 자기의 생활에 필요한 공공시설의 이용 면에서 시민들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그 이용에 있어 서로 경합하지 않아도 될 만큼 공공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점이 참 부럽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환경 탓으로 돌아가선 안 될 것이다. 원래 미국은 부자나라이고 땅도 무지 넓으니 이런 것이 모두 가능하다고 해버리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지혜나 방도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가 온다.  이들이 무엇을 이유로 공원을 공공재화 했는지, 공공재로서의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어떤 정책지혜를 강구하고, 어떤 계획 아래 공원을 실제로 조성해 왔는지 그 구체적 방법론을 알아내야 한다. 그들이라고 공원조성에 장애물이나 암초가 없었겠는가? 미국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자 자본주의 냄새가 몸 곳곳에 배인 그런 물질문명의 사회 아닌가?

 

 

우리의 좁고 못난 환경을 탓하기 보다는 남의 문제해결방식에서 지혜의 방도를 구할 때, 좁은 땅덩어리이지만 그곳에서도 아기자기한 미니 숲을 조성할 수 있고, 애들이 안전하게 뛰어놓을 수 있는 조그만 공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넓은 땅이 없다고 미리 포기하지 말고, 토지 공개념의 일부 요소를 건설적으로 받아들여 공공의 땅을 미리 확보해 낼 일이다. 먼 앞을 내다보는 알찬 도시계획에 입각해 공공재로서의 공원을 조금씩 마련해가는 공원조성정책의 제도화가 긴요하다.

 

 

조금 있으면 무더운 성하(盛夏)의 밤, 열대야가 찾아올 것이다. 좁은 아파트를 몇 발자국 벗어나 바로 집 곁에 있는 조그만 공원과 나무숲에서 매미울음 소리를 들으며 식구들과 조용히 산책하거나 배드민턴이라도 마음껏 쳐볼 수 있는, 작지만 의미있는 공원들을 주변에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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