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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에세이

나무가 전하는 말

숲길지기 2025. 6. 12. 11:44

 

 

먹고살기도 힘든데 자연까지 보호해야 해?”   사람다운 불편? 자연을 보전하려고 왜 사람이 불편을 감수해야 해?”

 

생태주의를 얘기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의 서늘한 반응에 자주 부딪힙니다.

 

자연보다는 물질문명과 AI에 친숙하고 자연의 이변엔 경계심마저 보이는 우리는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사람이 자연과 공생해야 한다는 생태주의 공부의 필요성을 마음 깊이 터득하기가 쉽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한 사람, 두 사람의 자연 경시와 물질적 편리함의 추구가 모이고 쌓여, 산하와 들녘을 훼손하며 우리들 삶의 보금자리를 뺏어가는 난개발, 막개발의 원인이 돼 왔음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개발의 탐욕을 덜어낼 수 있을까요? 생태주의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고민, 또 고민하게 됩니다.

 

긴 고민 끝에 우리가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나무를 중심으로 자연생태계의 가치를 느껴보고,  나아가 사람과 자연의 거리감을 해소하는 기회를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나무 목() 변이 들어간 한자들을 소개하며 나무를 상징으로 하는 자연과 사람 간의 필연적 관계성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옥편을 뒤져보니 나무 목 변을 쓰는 한자들은 꽤 많습니다. 그만큼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나무를 이용하거나 실생활과 연관해 나무와 관계를 맺는 경우가 흔하다는 뜻이겠죠.

 

무엇보다 재미있는 한자는 휴() 자입니다. 사람이 휴식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나무에 느긋이 기대어 앉아 잠시나마 마음속 걱정을 내려놓는 것이 아닐까요.

 

인격(人格)을 뜻하는 격() 자도 의미심장합니다. 옥편을 보니 격() 자엔 바로잡을 격, 격식 격 등의 뜻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아 사람이 번듯해지고, 세상살이의 격식을 갖추는 데도 나무가 그 본보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근본 본) 자에도 어김없이 나무 목이 들어갑니다. 땅속 깊이 뿌리를 단단히 박고 기둥과 가지를 쭉쭉 뻗어 올리며 싱그러운 과실을 맺는 것이 무릇 생()의 순서이니, 당연히 세상의 근본을 다지는 데 나무가 빠져선 안되겠지요.

 

나무는 연결고리 역할도 합니다. (지팡이 장)에서 보듯이 사람이 늙어서 허리가 불편해도 밖으로 출타하려면 땅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지팡이용으로 나무는 꼭 필요하지요.

 

(다리 교), (편지 찰)에서 보듯이 강을 건널 때도 누구와 글로써 소통할 때도, 나무는 빠짐없이 사람들 세상에 등장합니다.

 

(학교 교), (책상 안), (책상 궤), (쪼갤 석)에서 보듯이 나무는 배움의 장소, 배움의 수단으로도 기여합니다.

 

아 참! 나무는 , 씨 등 사람의 성() 씨에도 들어가지요. 나무는 사람의 태생적 뿌리를 밝혀주고 신원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나무는 영어 단어에도 등장합니다. decision tree(의사결정), family tree(가계도) 등 역사적 퇴적물이나 사람들 생각의 꼬리를 무는 경로로도 존재합니다.

 

나무의 쓰임새를 위에서 다양하게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삶이 꽤나 나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무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자주 뻗어야 할 아주 중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다행히도 우리 주변엔 나무가 많습니다. 소나무, 서어나무, 회화나무, 배롱나무, 층층나무, 자작나무 등 나무 이름도 참 다양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나무이름 중 최고의 이름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지요. 바로 이 아낌없이 주는 데 나무의 최고덕목이 있습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부지런히 나무 그늘을 찾습니다. 시원한 나무 그늘 한 자락 차지하면 세상에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지요.

 

등을 타고 흘러내리던 땀은 어느새 다 식고 더위에 덩달아 치솟던 마음속 화기(火氣)도 한결 누그러지지요우리에게 아낌없이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 덕에 선()한 사람 하나둘 나무 아래에서 태어납니다.

 

나무라는 놈들이 모여 만들어진 숲은 녹색 댐이 되어 홍수와 가뭄을 막아주고, 그린 샤워로 우리의 몸을 상쾌하게 해줍니다.

 

숲속 나무들은 살아서뿐 아니라 죽어서도 좋은 일을 많이 하지요. 일생을 다하고 죽어 쓰러진 고목들은 작은 풀들과, 이끼 등 지의(地衣)식물, 설치류 등 작은 짐승, 그리고 벌레들의 따듯한 보금자리가 됩니다.

 

죽어서까지 다른 생명들을 위해 이렇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나무의 사회적 상속이란 멋진 말로써 칭송한 사람도 있습니다.

 

죽을 때 자기 자식에게만 재산과 땅을 물려주려고 안간힘 쓰는 속좁은 우리는, 나무의 사회적 상속 과정에서 공동체적 삶의 지혜를 배워볼 수도 있습니다 (이도형, [사유] 참고).

 

강판권의 [선비가 사랑한 나무] 책에서 보듯이, 옛 선인들은 간절히 묻되 가까이 생각하는근사(近思)의 대상으로 나무를 중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근사의 정신은 지금도 조금씩 계승되어 오고 있습니다.

 

일생 나무를 들여다보고 나무의 아픔을 제 아픔처럼 느끼며 병든 나무를 살려온 나무의사 우종영은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삶의 좌표와 나무에게서 배울 수 있는 삶의 자세를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란 일련의 책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수들도 나무를 주제로 곡을 만들고 나무에서 읽을 수 있는 삶의 참뜻을 아름다운 노랫말로 표현합니다. 먼저 송봉주가 짓고 안치환이 부른 [나무의 서]라는 노래를 음미해보죠.

 

"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가지에 꽃은 피지 않아도 하늘을 우러러 난 부끄럽지 않소
천년을 살아온 힘센 팔로 하늘을 품고 비바람 눈보라 이겨낸 뿌리 깊은 나무요

...............................
아무도 날 찾지 않아도 날 부르지 않아도 언 땅위에 우뚝 선 난 푸른 겨울나무요
...........................
마음이 가난할 지라도 내일이 오늘 같을 지라도 움켜진 흙이 있어 난 두려웁지 않소."

 

자신의 노래에 인생철학을 담는 싱어송 라이터 박강수도 [나무가 되고 싶다]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어 다음과 같이 즐겨 부릅니다.

 

"푸르다 숲 드높다 저 산  마른 숨 쉬어가자고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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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길 잃은 마음 둘 곳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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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되고 싶다 말없이 섰는 마음으로
슬픔도 모르고 눈물도 없는 산 위에. 슬픔도 모르고 눈물도 모르는 채로."

 

지금까지 나무를 중심으로 사람과 자연의 관계성과, 세상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자연의 선순환 구조를 잠시나마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분풀이 대상으로 나무를 발로 걷어차거나, 신발에 묻은 껌을 떼기 위해 나무기둥에 신발을 문지르는 등 자연을 하찮게 대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합니다.

 

럭셔리 카, 명품 백, 호화 저택 등 물질문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럭셔리 카와 명품 백의 주인이 되고픈 사람들의 소유 욕망도 어느 정도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무 등 자연의 생태적 가치와 자연-사람 간의 관계성을 이해하면 할수록,

럭셔리 카와 명품 백보다  맑은 하늘, 뭉게구름, 품 넓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더 늘어날 것입니다

 

대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보다는, 일용할 양식을 키우고 베풀어주는 들녘에서

호흡이 편해지고 두 발에 힘이 모이는 사람도 더 많이 늘어나겠죠.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 개안(開眼)을 통해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건강한 흙의 가치, 즉 자연의 소중함이 더 인정받고 존중되는 날이 빨리 오길 고대해 봅니다.

 

그러려면 나무를 비롯한 자연 생태계를 찾아가는 도정을  앞당기고 그 의미를 더 깨우치기 위해, 나무의 이름과 숲의 쓰임새 등 자연생태계를 더 많이 공부하려는 우리의 노력도 더 필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