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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숲길지기 2025. 6. 19. 11:25

도키와 후미카스라는 일본의 한 중소기업 경영인이 쓴  [자연을 벤치마킹하라]란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남에게서 한 수 배워 자기 사업에 보탬이 되게 하자는 벤치마킹이란 단어는,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생존경영 철칙이긴 한데, 그 벤치마킹의 대상이 자연이라니?

 

자연은 왠지 이윤추구를 위해  자연을 도구로 이용하는 데 앞장서온 기업경영인의 관심대상으론 썩 궁합이 맞는 단어 같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에 약간의 의문을 품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페이지를 한장 한장 넘기자, 경영인인 저자가 동식물의 생존비법을 의인화해 인간의 삶과 기업경영에 유용한 지혜를 자연계라는 우물 속에서 두레박으로 하나하나 길어 올리고 있는 점이 책에서 자주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책 제목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합니다.

 

책의 주된 요지는 자연의 지혜를 기업경영 및 인생살이에 접목시킬 때 우리의 삶이 더 의미로워지고, 슬기로운 기업경영 및 생태 친화적 생산활동도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다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점은 인간이 사용하는 기계나 도구의 모양과 기능이, 많은 경우 생물들에게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는 그의 통찰력입니다

 

예컨대 비행기는 새를, 고속열차는 공기저항을 완화하기 위해 오리너구리의 주둥이 모양을 연구한 결과물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늙은 벌은 먹이를 찾고 젊은 벌은 먹이를 운반하는 등 벌들의 () 지능과 분업 체계는기업조직의 최적화 및 시스템 제어에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책에서 눈여겨 볼만한 내용이었습니다.

 

저자는 또 인간과 자연이 모두 같은 원소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의 몸에도 자연을 움직이는 법칙이 똑같이 적용되기에, 우리는 자연을 병의 치유에도 응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컨대 허브의 고유한 파장이 인체의 파장, 진동과 일치할 경우, 사람들은 허브를 이용해 인체의 본래 리듬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는 상기한 점에서 자연은 고갈되지 않은 무한한 지혜의 샘이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 등 모든 생명체가 인간의 스승이므로, 인간은 자연을 떠나선 절대 살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책으로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이 쓴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자연을 위대한 발명가로 보면서, 생물들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해 경제적 효율성이 뛰어난 물질을 창조하는 '자연중심기술'이 장차 인류의 희망이라고 단언합니다.

 

도마뱀붙이 발바닥의 강력한 흡착력을 응용한 나노접착제, 얼룩말 무늬에 숨겨진 통풍효과를 응용한 에너지 절약건물 등 적지않은 자연모방기술이 책에서 자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자연의 가치를 일찍이 간파하고 적극 응용하려 했던 대표적 인물은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다라고 일갈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입니다. 자연에 대한 그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는 오늘날 자연중심기술, 생체모방이란 개념으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현대의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자연을 스승으로 삼아 기술문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오리와 물총새의 길쭉한 부리와 날렵한 머리를 본뜬 신칸센 고속철도, 혹등고래의 지느러미에서 힌트를 얻어 회전날개에 요철을 더한 풍력발전기 이외에도, 물을 튕겨내는 연잎의 표면구조를 응용한 발수소재, 홍합의 결합조직에서 힌트를 얻은 접착제 등이 그것입니다 (김택원, "엔지니어들이 꼽는 위대한 스승, 자연." <KISTI의 과학향기> 참고).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점은 인간세계의 기술문명, 물질문명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해온 자연은 절대 저작권을 부르짖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연은 수십억 년에 걸쳐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며 애써 진화해온 자신의 결과물임을 굳이 내세우며, 그것을 응용해 물건을 만들고 삶을 꾸리려 하는 인간들에게 값비싼 로열티 지불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또 기술사용료를 안 낸다고 변호사를 앞세워 소송을 걸어오지도 않습니다.

 

기술사용을 무료로 허용하면서도 절대 공치사가 없습니다. 라떼 식의 잘난 체도 안합니다. 오직 스스로 그러함(自然; self-so)의 정수를 보여줄 뿐입니다.

 

자연은 인간의 스승이 맞습니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며 꼰대짓을 안합니다. 자기 머릿속 아이디어나 지혜를 통째로  빼내간다고 공치사도 안합니다. 오히려 제자들의 청출어람을 유도하며 흐뭇한 얼굴로 제자들을 지켜보는 꽃대 역할을 자처할 뿐입니다.

 

생태주의자들은 인간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적지 않은 해답을 수십억 년 동안 진행된 진화의 산물인 자연 생태계의 비법(wild solution)에서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힌트와 아이디어가 아직도 무궁무진하게 자연의 원리 속에 숨겨져 있다는 얘기이지요. 

 

그렇다면 스승인 자연의 이치와 비법을 계속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삼가야겠지요. 더 나아가  자연에 보답하는 길도 꼭 찾아내야겠지요

 

그 보답의 길은 자연을 아끼고 사랑으로 지켜주는 것, 즉 원시자연은 잘 보전하고  병들고 지친 자연은 적극 치료해서 회복(복원)시켜주는 것입니다.

 

저작권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자연의 베풂에 나몰라하며 이기적으로 이용만 한다면, 그야말로 스승님 얼굴에서 미소를 빼앗고  스승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지게 하는 못난 학생이 될 뿐입니다.

 

자연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당장 버겁다면, 최소한 덜 괴롭히는 일이라도 해야겠지요. 즉 자연에 덜 첨가하고 덜 철회하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이제부턴 물건 하나 만들 때도 좀 생각하며 만들면 좋겠습니다. 상품생산의 흔적을 덜 남기기 위해 덜 쓰고 덜 버리는 생산방식이 필요합니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물건을 만들 때부터 아예 산업 쓰레기가 덜 발생되게 하거나, 폐원료를 철저히 분해해 생산공정에 재투입하는  녹색공정기술이 필요합니다.

 

자연으로부터 덜 빼앗는 방법도 적극 고안해야 합니다. 피크 오일, 피크 카(peak car) 시대를 맞아 화석연료보다는 바람, 조력, 햇빛, 태양열, 지열 등 녹색연료, 즉 재생에너지나 대체에너지의 개발이 급선무입니다.

 

비록 지금은 에너지효율을 구실로 원자력 개발에 쉽게 의존하지만 방사성 폐기물 처리는 여전히 지난한 숙제이며 노후화된 원전의 사고 개연성도 매우 높습니다. 이미 유럽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대폭 줄여가며 초기 비용은 들더라도 재생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원리를 응용한 생태디자인, 생태건축도 필요합니다. 건물을 새로 짓거나 증축할 때 자연 닮아가기의 지혜가 요구됩니다.

 

자연채광과 자연난방에 유리한 통유리창 설치와 정남향 구조,  원활한 통풍을 위한 판상형 구조,  집의 온도를 낮추는 옥상녹화 등 건축의 그린화와 여타 자연의 원리를 디자인과 건축에 응용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고 합니다(이도형, [우리들의 정부] 참고).

 

그린 빌딩, 그린 홈 등 우리의 건축방식이 자연을 닮아갈 때 생태친화적 건물과 천연 에너지의 활용이 자연에 대한 불필요한 첨가와 과도한 철회를 더욱 막아줄 수 있습니다. 초기에 값을 치르더라도 장기적으로 에너지효율 면에서도 훨씬 낫습니다.

 

우리가 자연에 덜 버리고 덜 빼앗는 실천에 익숙해지면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차원에서 자연의 보전, 복원을 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발걸음도 곧 경쾌해지겠죠.  차후에 자연의 보전과 복원 방법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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