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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의 글/두 글자의 사유

이름

숲길지기 2014. 1. 14. 18:43

 

이름은 생명체나 사물 등 어떤 대상에 대한 명명(命名)이다. 이름에는 명명 대상에 대한 기본 정보가 담겨져 있다. 우리가 그 정보를 토대로 명명 대상에 대한 일정한 지칭(指稱)을 이름으로 하기로 약속하면, 우리는 그 약속에 준거해 그것의 이름을 대화, 교환, 거래의 도구로 쓸 수 있다. 이름이 있기에 서로의 얘기가 연결되고 서로의 의사가 통하고 시장에선 거래나 교환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름값 좀 해라” 라고 말할 때의 이름은 명명 대상인 자의 사람됨을 요구하는 말이 된다. 이 말은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나아가 남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가치 있는 행동을 할 것을 상대방에게 준엄하게 요구하는 표현이다. 여기서 이름은 거래, 교환의 단순한 도구를 넘어 사람다운 품격과 인격체적 정체성을 담는 윤리적 그릇의 의미를 내재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더 널리 알리고 드높이려는 욕심은 많지만, 이름값 제대로 하며 살려는 진정성은 상대적으로 덜 중시하고 실생활에서도 덜 표출한다. 그러니 세상은 저마다 자기 이름을 크게 내고 세게 인정받으려는 인정투쟁의 장이 된다. 이런 욕망이 넘실대는 사익 추구의 세계는 이름값 하기 위해 개인이 치르는 헌신이라는 비용을 우습게 여긴다.

 

불행히도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 그런 사익에 오염된 이름은 허명(虛名)이기 쉽다. 자신은 본인의 이름을 드높여 소리내어 부르지만 정작 상대방은 그 이름에 담긴 여러 가지 직함과 자가발전 식의 사적 메시지에 대해 쉽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드높이려고 오늘도 허명의 굴레에 스스로 갇힌다.

 

우리 사회엔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자신과 타인의 행동에 대해 너무 관대한 평가문화가 난무한다. 자신의 허물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그것을 되풀이한다.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도 대충대충 넘어간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개의치 않는다. 그러니 이름값 제대로 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도 어렵다.

 

자신의 얼굴에 욕되지 않게 원칙을 지킬 때, 나아가 남을 위해 조금이라도 진실한 행동을 하려 노력할 때 그의 이름값은 저절로 올라간다. 그 이름에 정당성이 부여되고, 나남 없이 그 이름의 주인공을 이름값 제대로 한 사람으로 널리 칭송해 준다.

 

물론 이런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선 순간의 사익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자신의 내적 윤리기제가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기 얼굴과 행동에 책임지려는 외유내강식의 행동강령 또한 필요하다.

 

훌륭한 번역가이자 소설가였던 고 이윤기 선생은 이런 점에서 귀감이 되는 본인의 진솔한 체험 하나를 들려준다. 선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를 동행한 사람이 어느 미국 교수에게 선생을 novelist로 소개하자 미국인 교수는 선생에게 “지금까지 장편소설을 몇 편 썼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가 아직 장편소설을 쓴 경험이 많지 않다고 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writer이지 novelist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는 이 말에 크게 당황해 이후 장편소설 작업에 몰입하게 되었고 이후 실력있는 번역가를 넘어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경험담을 그의 책에서 들려준다.

 

옛사람들은 관계윤리에서 비롯되는 책임윤리를 중시했다. 즉 부모는 자식과의 관계에서 부모답게, 스승은 제자와의 관계에서 스승답게, 윗사람은 아랫사람과의 관계에서 윗사람답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바로 정명(正名) 사상이다. 바람직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정명을 다하려 노력하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서 관계를 자의로 해석하고 마구 행동하는 사람들에겐 손가락질이 뒤따랐다. 그만큼 사람답기 위해선 이름값 제대로 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덕목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사람다운 마음씨와 그것의 행동적 표현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맑은 사회이다. 그런 사람들에게선 숲속 나무와 같은 청명한 향기가 난다. 그들의 이름은 내 입속에서 언제나 맴돌고 내 귀에 오래도록 들려온다.

 

자기 이름에 걸맞은 행동과 마음씨의 표현을 고민하고, 또 그들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넉넉하게 인정해주는 맑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서로가 강하게 요구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견제하면서도 서로 독려해주는 정명의 정신과 깨어있는 마음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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