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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에서 무위의 참뜻을 배운다 본문
저는 집 근처의 숲(林)을 좋아하고, 주말 산(山)행을 낙으로 삼습니다.
자연히 산과 숲을 합한 산림(山林)이란 단어에 흠뻑 매력을 느끼고, 정부의 산림정책에 대한 관심도 큽니다.
산림 관련 정책부서인 산림청의 행정기능을 중시하기에, 산림청에서 공무원 채용 면접심사 요청이 오면 강의시간과 중복되지 않는 한 줄곧 응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잦은 산불과 산사태를 접하면서 산림정책에 몇 가지 의아한 점이 자주 눈에 밟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산림정책은 크게 2-3 방향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우선 경제림을 조성해 목재로 쓰거나 산에서 송이를 재배해 수익을 내는 일을 돕는 경제적 가치가 주된 목표입니다.
그러나 최근 산이나 숲에서 휴식을 취하고 건강도 돌보려는 국민 수요로 인해 산림의 보건휴양기능이 중시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의 일환으로 탄소흡수원 차원에서의 산림보전 기능도 이슈화됩니다.
산림청은 산림경영을 하는 곳인지? 산림보전 및 휴앙을 도모하는 곳인지? 어디다 더 방점을 찍어야 할까요?
물론 두가지 일을 다 잘하면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두 역할은 서로 충돌하고 그만큼 갈등적 요소도 내재합니다.
산림보전은 길게 내다보고 산림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은 손에 큰돈이 들어 오지 않지만, 풍성한 자연이 사람들의 건강과 휴양엔 크게 도움됩니다. 탄소중립의 실천에도 유용합니다.
그러나 먼 산 바라보며 손가락만 빨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산림을 이용해 수익을 낼 궁리도 하게 됩니다.
그간엔 산림 경영의 일환으로 송이 채취용 송이숲을 만들었습니다. 송이산을 만들려고 소나무를 많이 심기도 했습니다. 목재로서의 쓰임새를 위해 벌목의 경제적 가치가 강조돼 왔습니다. 목재용 큰 나무를 얻기 위해 간벌 등 숲 가꾸기도 해왔습니다.
일례로 산림청은 ‘2022년 주요업무추진계획’에서 지난 4년 반의 추진실적으로, 경제수림 조성, 임업의 스마트화, 산림산업기반 확대, 산림일자리 창출 및 임가소득 향상을 우선 앞세웁니다. 반면 산림복지, 기후변화 대비, 건강한 산림은 후순위 목표로 돌립니다.
산림청은 명품 숲을 플랫폼으로 해 관광자원으로 키워낼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산림청장은 “산림은 자연이지만 자원이기도 하다”며 경제임업과 산림자원 개발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적 가치 중심의 산림경영이 자칫 인간의 도구적 자연관만 키우지 않을까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크게 우려되는 현실적 문제는 목재용 나무 육성과 송이숲 조성을 위해 산에 소나무를 잔뜩 심으면 송진 등 인화물질이 산속에 그득해져, 건조하고 바람 많이 부는 봄철만 되면 대형산불이 연례행사처럼 야기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최근 강원도와 경상도 쪽의 봄철 대형산불 피해는 해마다 극심합니다.
그럼에도 불탄 자리에 많은 예산을 들여 계속 소나무를 심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입니다. 목재를 얻기 위해 화재에 취약한 소나무 등 침엽수 위주의 단일 수림을 계속 조성하면 송진 등 인화물질로 인해 산불에 더욱 취약한 산림구조를 갖게 됩니다.
큰 목재를 얻기 위해 간벌하고 벌목을 많이 하면, 또 이를 위해 임도를 많이 닦으면 산의 토양이 약해져 큰비에 산사태 우려도 더 커집니다.
오랫동안 산림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오마이 뉴스 최병성의 탐사보도에 의하면, 숲 가꾸기 차원에서 임도를 많이 건설하면 그 임도가 산불이 지나가는 통로가 되고 산사태 유발의 취약점이 된다고도 합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한반도가 아열대 지역으로 점차 바뀌면서, 앞으로 우리는 더 길고 더 덥고 더 습한 여름을 해마다 감내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에어컨 사용 등 전력 낭비는 더 큰 기후재난을 초래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주변에 도시숲을 조성해 도시열섬 현상을 줄이고, 기회가 될 때마다 시간을 내어 천연에어컨 바람이 부는 산속으로 자주 발걸음을 향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년 여름의 폭염을 이겨내야 할 상황에서 국민 건강 차원에서 산림의 보건휴양 기능도 더 중시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개인적 얘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얼마전에, 유학 중 방학을 이용해 잠시 귀국한 아들애가 강원도 산과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해서, 7월 중순경 1박2일 일정으로 강원도에 다녀왔습니다.
첫날은 한계령을 넘어 오색 주전골 산행을 시도했습니다. 날씨가 흐렸지만 비가 안 와, 계곡물의 청량음을 귀로 즐기고 눈으론 우뚝 솟은 기암들을 맛보며 산행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나 용소폭포를 눈앞에 두고 큰비를 만나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산에서 큰비를 만나니 딱히 할 일이 없어 양양 바다로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닷가에서도 내리는 빗물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습니다. 낙산사에 들러 사찰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일찍 숙소로 향했습니다.
다음날 바다를 다시 보려고 해변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전에 비가 그치면서 바닷가는 금새 덥고 습해졌습니다.
게다가 해변은 이미 인산인해로 몸과 마음을 다 어지럽게 합니다. 곧바로 바다를 떠나 일찍 귀가길로 오르면서, 귀가길에 산으로 다시 들어갈 계획을 급하게 세웠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인제 용대리 자연휴양림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니 인적은 드물고 자연만 가득했습니다.
숲속 산책로에서 호랑나비 떼의 아름다운 군무도 보고 깊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의 청량음을 오래 들으니, 바닷가에서의 덥고 습했던 몸과 마음이 곧 치유되었습니다.
잘 보전된 산과 숲이 주는 소소하지만 매우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산속 자연휴양림에서 자연이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self-so) 자신을 올곧게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언젠가 책에서 본 ‘생태계 자치’라는 개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 변화는 결국 인간의 잘못된 잣대로 평가된 자연에의 인위적 개입 때문에 발생합니다. 인간에 의한 자연에의 지나친 쌓임 혹은 지나친 부족이 생태적 불균형을 유발합니다.
그런 점에서 생태적 불균형을 유발하는 대규모 사업과 공사를 함부로 진행해선 안 됩니다. 그래야 생태적 균형이 깨지지 않고 생태계의 내부순환이 이루어져, 생태계가 내부의 자원만으로도 스스로 기능을 잘 유지하는 생태계 자치력(eco-system autonomy)과 복원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이도원, [흙에서 흙으로] 참고).
그런 점에서 보면 현 산림경영엔 성찰할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성급하게 수익을 내려고 침엽수 등 단일수종으로 경제림을 조성하고, 송이산을 만들겠다고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만 잔뜩 심는 산림경영엔, 사람들에 의한 인위적 개입 성격이 너무나 짙게 배어 있습니다.
더 이상의 생태적 불균형을 유발하는 대규모 경제림 조림사업과 임도공사에 대해선 대대적인 재고가 요구됩니다. 산림경영 수익을 명분으로 관행화되어온 산속 삽질과 톱질을 이젠 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산림청의 홍보와 달리 산림 경영수익은 최악이라고 합니다. 산림학자 홍석환에 의하면, 40년 산림경영의 결과는 원금의 90% 이상이 허공으로 사라진 채 손해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때 민둥산의 주범이었던 땔감이 불필요해지면서, 우리 기후대에 더 적합하고 수분함량이 많아 산불에도 강한 참나무류가 산불에 약한 소나무류를 빠르게 밀어내면서 생태적 산림전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산 스스로가 산불에 대한 방어능력을 스스로 키우는 생태적 전환을 스스로 하던 중에, 정부가 침엽수 위주로 경제림을 조성하고 숲가꾸기를 하는 등 인위적으로 개입하면서, 수분함량이 많아 산불에 강한 활엽수가 속절없이 베어지고 뽑히면서 회복력 강한 산림전환이 그만 멈추고 말았습니다(홍석환, “기후위기시대, 산불을 막을 대안은.” [녹색평론] 2025년 여름호 참고).
생태계 자치, 즉 자연은 스스로 정화능력과 치유력을 갖고 있습니다. 스스로 병든 곳을 고치고 스스로 회복합니다.
일례로 개들도 아프면 며칠 그늘에 누운 채 굶으며 속을 다스린 뒤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천변 수초들의 자정(自淨) 작용을 통해 개천은 늘 맑은 물을 유지합니다.
그렇다면 산불에 취약하고 재선충에 병든 산도 스스로 자신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합니다. 더 이상의 인위적 개입 없이 산림을 그냥 놔두어, 우리 기후대에 적합한 활엽수로의 자연 천이를 통해 산불에도 강한 푸르고 건강한 산이 되도록 산림에 자연 복원의 시간을 넉넉히 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다시한번 익숙한 것(종래의 인위적 개입)과의 결별, 낯선 곳에서 아침 맞기(산림 그냥 놔두기; 무위)가 요구됩니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 아침을 제대로 맞기 위해, 무위 (無爲) 라는 말의 참뜻을 잘 새겨두면 좋겠습니다(서양식의 보전 규범은 동양의 무위 개념으로도 설명 가능합니다).
무위(non-action)는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하지 않는 무행(無行; inaction)이 아닙니다. 무위는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함부로 무엇을 벌이지 않도록 단호함을 보이는 것, 그리고 자연의 법칙을 따라 세상이 "스스로 그러하게" 놔두고 지켜보는 것입니다.
무위가 지향하는 것은 혼란(不治)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인데, 혼란이 생기는 이유는 인간(人)의 자연 개입(爲)이 결국 자연을 속이는 거짓(僞=人+爲)을 낳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과도한 목표를 억지로 추구할 경우 자연을 속이는 거짓 개입이 자주 발생하게 됩니다( 신영복,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참고).
가만히 살펴보니 산림청의 경제림 조성 등 산림경영과 임도건설 등 인위적 숲 가꾸기는, 자연의 흐름에 반하는 과도한 목표설정에 따른 거칠은 인위적 개입 사례에 해당됩니다.
무위는 무행이 아니라 어떤 어설픈 자연파괴도 더이상 하지 않도록 단호히 결정을 내리고 그 다짐을 준열히 지켜나가는 것이란 점에서, 우리가 필히 따라야 할 적극적 행동윤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검증되지도 않은 산림경영수익을 위해 인위로 산에 삽질과 톱질을 더이상 하지 않는 것이 정답입니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산이 스스로 그러하게 자신의 길을 가도록 그냥 놔두고 지켜보는 것이 산림보전의 행동준칙으로 마음 속 깊이 새겨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아주 불가피할 경우엔 산림을 신중히 이용하되 문제해결에 자연의 원칙을 반영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여기서 자연기반해법 (nature based solution)이란 다소 낯선 개념과도 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자연기반해법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의 원칙을 활용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즉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자연을 모방하거나 자연에 의지하는 해결책을 강구하자는 것입니다.
대기오염과 미세먼지에 대처하기 위한 도시녹지, 학교숲 조성/ 옥상녹화를 통한 도시열섬 완화/ 지하수 고갈에 대비한 습지 등 자연공간 조성과 투수성(透水性) 보도블록 설치/ 수질오염에 대비한 하천변 녹지 조성/ 폐기물에 대해 생분해되는 재료 사용/ 토양오염에 대해 토양미생물 활용 등(명수정,오일찬, [환경위기 대응을 위한 자연기반해법 연구], 한국환경연구원)이, 자연에서 영감을 얻거나 또는 자연에 의지한 자연기반해법의 실례입니다
위의 얘기들을 우리의 산림문제에 대입하면,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등 단일수종의 경제림 조성, 숲가꾸기 등 그간의 인위적 개입을 거두어들이고 생태계 자치력을 회복하기 위해 가능한 한 산에 손을 대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그래서 활엽수림으로의 자연천이를 통해 산불에도 강하고 건강한 산림으로의 자체 회복력을 도모하는 것이,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자연에 의지한 산림정책의 자연기반해법이 되겠습니다.
결국 우리가 건강한 산과 든든한 숲을 더많이 원할수록, 무위의 참뜻에 따라 산림에 대한 인위적 개입을 줄이면서 자연기반해법에 의거해 산림을 지켜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산불에도 강하고 산사태도 피할 수 있으며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해 탄소중립에도 기여할 수 있는 건강한 산림을 우리 곁에 늘 둘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맑고 푸른 산림 속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건강도 회복하면서, 각자의 일상으로 힘차게 복귀할 수 있는 재충전의 시간도 마음껏 향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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