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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에세이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숲길지기 2025. 8. 15. 17:47

 

세살 버릇 여든 간다.” “사람은 절대 안 변한다.”

 

위의 말엔 사람이 습관과 관행의 동물이며, 타고난 기질 때문에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체념적 인식이 깊게 깔려 있습니다.

 

저에게도 필히 고쳐야 할 나쁜 습관과 낡은 사고방식이 좀 있는데, 그게 참 잘 안 고쳐집니다. 애써 노력하다가도 시간이 좀 흐르면 문제시되던 습관이 바로 반복되고 낡은 사고가 이성의 빈틈을 뚫고 들어와 이내 삶을 꼬이게 만듭니다.

 

사회적으로도 나쁜 관행과 관습은 계속 남아, 우리는 경로의존성에 사로잡힌 채 어제 한 일과 어제 한 생각을 오늘도 반복합니다. 뼈를 깎는 각오와 깊은 반성이 없으면 아마 내일도 반복하며 또 후회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관행, 관성, 관례를 답습하며 타성의 포로가 됩니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 다시 가슴에서 발끝이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이성적으론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행동은 그에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좋든 싫든 이제 변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기후위기 시대에 잘못된 소비습관과 개발패턴을 버리지 못한 채,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를 내세우며  변명만 늘어놓으면 우리들 삶의 터전이 남아 있질 못할 우려가 큽니다.

 

나의 행위 하나하나가 생태발자국으로 남고 종국엔 위험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나의 삶터를 빼앗아갈 수 있음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좋습니다. 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변할 수 있는지 도무지 갈피를 못잡겠습니다.”

 

우리들은 변하려는 마음이 있어도 그 방법을 잘 몰라서, 위와 같이 변화의 발걸음 떼기를 주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같은 고민을 먼저 하며 진심으로 변하려고 노력했던 실제 인물이 우리의 행동모델이 되어주면 참 좋겠습니다.

 

여기 그런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이 자연보다 사람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후 자신의 일을 통해 자연의 가치를 흠뻑 느낀 뒤 자신의 짧은 생각을 반성하고, 해결책을 차분히 강구하며 조금씩 자연지킴이로 변해간 사람입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모델이 될만한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한 사람의 내면의 변화와 실천의지를 배워보렵니다.

 

사람을 구분하는 시각은 무척 다양하지만, 생태주의에선 크게 2개의 자아, self(소자아)Self(큰 자아)로 사람을 구분합니다.

 

self는 인간의 신념과 욕구로 구성된 자아입니다. self라는 인간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물질적 욕망을 꿈꾸는 자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연 따윈 안중에도 두지 않는 인간 우월적 존재입니다. 자기 하나밖에 모르는 분리적 관점과 인간중심적 사고의 소유자란  점에서 소()자아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Self는 이런 소자아의 배후에서 자연과 함께 있으려 합니다. 이렇게 사람만 중시하는 게 아니라 그 배후의 자연도 더불어 생각하는 점에서 큰 자아입니다.

 

Self, 즉 큰 자아의 실현은 인간-비인간, 자아-타자 간에 어떤 존재론적 구분도 없다는 점을 몸소 체험하는 과정으로서결국은 인간도 자연생태계의 일부임을 인식하는 자기성찰의 과정입니다.

 

아래에선 미국인 Aldo Leopold의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한때 도구적 자연관 아래 공리주의(‘최대다수 인간의 최대행복을 도모하는 점에서 가장 인간중심적 사고방식)를 신봉했던 미국의 일개 산림공무원 Aldo Leopold오랫동안 자연과 접하고 생태학을 공부하면서 생태 친화적 사고를 하게 되고 이후 대표적 생태철학자로 변신해갔던 그의 인생역정을 하나의 사례로 삼아, 소자아에서 대자아로의 인간의 내면변화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는 것입니다.

 

공무원 초입에 그가 신봉했던 경제, 과학기술적 관점의 한계를 성찰하고 자연에까지 윤리확장을 하게 된 Leopold의 생애적 전환과 인식전환 과정을 그가 쓴 [모래군의 열두달(A Sand County Almanac)]과, 그의 생애에 대한 전기 [야생의 푸른 불꽃]을 참고하며 따라가 보겠습니다.

 

Aldo Leopold1887년 미국 Iowa 주의 소도시 벌링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외할아버지의 가르침 덕에 어려서부터 정원을 가꾸고 파종, 전정 등 식물 보살피는 법을 배우며 자연공부에 심취했습니다.

 

Leopold1906년 예일대 산림학부에 입학합니다. 그는 대학 재학시절, 자연을 현명하게 이용하자는 Pinchot(미국 초대 산림청장)의 주장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전하자는 Muir(자연보전운동가로서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 창시자)의 주장 사이에서 혼돈을 빚었지만, 초기엔 Pinchot의 주장에 동조했습니다.

 

즉 공리주의 철학을 받아들여 최대다수 인간의 최대행복을 위해 산림을 효율적으로 개발, 관리하는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Pinchot가 이끄는 미국 산림청의 정예사단이 되기 위해 산림법, 산림구획, 목재 관리,운용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배운 대로 목재, 돈과 숫자의 관점에서 산림을 보았습니다.

 

이후 산림공무원 임용시험에 통과해 22살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의 초기 임무는 목재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산림파괴를 막아 지역내 목재관련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후 악조건 하에서의 거듭된 공무로 인해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으며 고생도 했습니다. 그러나 산림보호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아, 그는 박봉에도 불구하고 국유림 내 동물보호계획을 직접 세우고, 미국 남서부 산림 내 사냥동물 원상복구 보고서 작성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는 사냥의 대상인 동물도 나무처럼 숲의 산출물로 보고, 야생종을 개체수와 특성에 따라 과학적으로 관리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또 보호구역을 정해 유료로 사냥허가를 내고 그 이익금으로 경비대원을 고용해 포식자수를 조절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총수입에만 관심을 두고 산림내 방목허가를 더 많이 내주는 상사의 지침 등 산림청의 근시안적 산림경영정책과 자주 의견충돌을 빚으며, 조금씩 공리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원생(原生)자연 보전쪽으로 생각의 변화를 갖기 시작합니다.

 

그의 인식변화를 가져온 결정적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는 Blue 강 상류 협곡지대의 산림조사를 하다가 늑대무리를 만나 사격을 가했는데, 그때 총을 맞은 어미 늑대의 두 눈에서 차츰 꺼져가는 맹렬한 푸른 불꽃을 보며,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늑대와 산 둘만이 공유하는 그 무엇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자연인 산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만 인간만 모르는 늑대의 울부짖음에 숨은 뜻이 바로 건강한 야생의 상징임을, 또 포식자수 제한 등 산림자원의 효율적 관리가 지극히 인간중심적 견해임을 뒤늦게 알게 된 것입니다. 포식자인 늑대의 사살로 인한 사슴의 과도한 증식이 사슴들에게도 치명적이라는 쓰라린 체험을 한 것입니다.

 

Leopold는 이 사건을 계기로 그간 자신이 실용적 관점에서만 숲을 보고 야생생물을 관리했음을 성찰합니다. 즉 신참공무원 시절 공리주의 사고에 빠져 사냥꾼이 사슴 떼에 접근 가능하도록 원생자연지대를 둘로 쪼개는 신작로 개설을 허용했던 과거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크게 후회했습니다. 또 미국 남서부 지역의 회색곰 박멸에 일조하는 등 생태학적 살인에 종범 역할을 한 자신의 과오도 반성했습니다.

 

그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환희와 그것의 점진적 상실에 따른 슬픔, 또 자신을 포함한 산림공무원들이 그런 상실에 결과적으로 일조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더불어 포식자, 사냥감, 화재, 숲 모두가 생태계 내에서 자신의 생태적 지위를 갖고 고유의 역할을 하므로, 모두가 없어선 안될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했습니다.

 

그는 오랜 자연체험과 내적 성찰을 통해 인간-비인간 간에 어떤 존재론적 구분도 없다는 점을 체득하고, 결국은 자신을 더 큰 전체인 생태계의 일부로 인식하는 자기성찰 과정을 거쳐 self에서 Self로 변신해 갔던 것입니다.

 

이후 Leopold는 지역 내 동식물 종류 및 수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며, 모든 생물종이 경제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똑같이 중요하다고 상사들을 설득해 나갔습니다. 그의 종 다양성 보전 청원은 미국 산림청 최초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경관과 미학의 관점에서도 숲의 보전을 주장했고, 같은 생각을 가진 아서 카하트와 의기투합해 Pinchot의 현명한 자연이용정책에 사로잡힌 산림청의 기본 시각을 바꾸는 투쟁을 시작합니다.

 

그는 산림경비대원들에게 숲의 총체적 건강에 대한 주체적 생각을 가질 것과, 산림청 정책보다 더 포괄적인 정책관을 갖고 항상 숲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예측하며 일에 임할 것을 권유하는 등 산림청 내에서 원생자연 보전분야의 리더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합니다.

 

1921년에 [삼림학 저널]에 기고한 한 논문에선, 미국 산림청이 목재생산, 사냥감 보호차원을 넘어 원생자연을 휴양자원으로 미리 보전하는 데까지 책임영역을 넓힐 것을 주장했습니다.

 

1차세계대전의 종전 후 시민들이 휴가여행을 즐기자 도로개선운동이 일어났는데, 이에 휴양지 개발은 아름다운 곳에 도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지 못한 사람들 마음에 감수성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해, 한때 관광도로 건설 반대자로 낙인찍히기도 했습니다.

 

1923년엔 국유림에 자연보전지역 지정을 제안해 부결되긴 했지만, 원생자연의 보전 필요성을 역설한 그의 글은 전국적 관심을 유도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근거로 1924년엔 힐라 국유림에 최초로 원생자연 보전지역이 지정되었습니다.

 

대공황기 동안 정부의 환경정책과 산림업무가 지리멸절해지자 1928-29년 스포츠 총포 및 탄약제조업 협회에 잠시 근무했는데, 그는 지질 및 사냥행태 관련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9개 주()를 몸소 여행하면서, 토양침식에 따른 서식지 파괴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정부의 보전역할엔 한계가 있어 땅 소유자인 농부들의 윤리와 도덕심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개체수 통제 등 포식자의 생태적 가치도 인식했습니다.

 

산림청장이 그의 재능을 Maddison 임산품 연구소에서 쓰라고 요청하며 연구소 부소장 직을 제의했지만, 상업적 성격의 그곳 작업에 매우 당혹해하면서 자연 친화적 글쓰기에 매진하며 계속 관련 글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공무원 시절의 장기적 산림조사 등 오랜 자연체험과 생태학이란 학문을 체계적으로 접하면서, 자연을 인간의 목적대로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 보는 환경보호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했습니다. 특히 생태학의 도움에 따라 '한줌 흙에도 엄청난 유기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공리주의적-경제적 계산을 초월하는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미국 Wisconsin주 농과대학의 교수가 되었는데, ()의 환경보전 연구에 대한 실천 의지가 강해, 강의와 더불어 라디오 연설, 강연을 통해 토양침식 문제를 제기하고, 야생동식물 보호 및 작물연구는 물론 대학 내 수목원과 야생동물보호구역 수립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는 고교생 환경보호단체 모집에 관여하고 야생생물협회 조직에도 앞장섰습니다.

 

1935년엔 Wisconsin주 강변의 모래땅에 있던 낡은 오두막을 재건축해 그의 가족 모두 참여하는 텃밭을 만들고, 주변의 동식물을 주기적으로 관찰하며 자신만의 생태복원 실험을 해나갑니다.

 

즉 인간-자연 간 새로운 관계맺기, 관계회복의 실례를 몸소 보여주었는데, 이는 대지(land) 공동체에 대해 알수록 인간이 대지에 미치는 악영향은 줄어든다는 그의 평소 신념에 따른 행동이었습니다.

 

Wisconsin주 강변에서의 Leopold의 농장생활 및 생태복원 실험은 대지와 건강한 관계를 맺는 인간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는 매일 새벽에 야생관찰 일기를 쓰며, 태양에 반응하는 생명들의 흐름을 좇는 생물계절학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개인에 불과한 자신을 성공적인 자연 관찰자이자 계절의 전령으로 만들어준 자연의 아름다움에 늘 탄복했습니다.

 

일생에 걸친 그의 작업은 생태학과 윤리학의 통합이었습니다. 그는 생태윤리 최초의 체계적 저작을 시도했는데, 그것이 저 유명한 [모래군의 열두달(A Sand County Almanac)]이란 책입니다.

 

농장은 생태학 교과서이고, 거기에서 사는 사람은 교과서 번역 역할을 맡은 자이다.”

 

한 그루의 늙은 굴참나무를 가진 자는 역사도서관을, 그리고 진화라는 초대형 공연의 예약석을 가진 것이다.”

 

오래된 나무토막의 자서전은 대학에서 배울 수 없는 문학이다.”

 

이 책에 담긴 주옥같은 문구들은 그의 치열한 자연관찰과 자연과의 오랜 관계맺기가 낳은 귀중한 소산입니다.

 

그는 뭔가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려면 자연과정 인식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자연과정은 대지와 그속의 생명체가 특징적 형태를 갖게 되는 진화의 과정과 자기존재를 유지해가는 생태과정을 가리킵니다.

 

그는 자연에 대한 애정이 있고 자연과정 인식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자연관리기술을 무리없이 자연에 적용할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Leopold는 생태주의의 바이블로 칭송받는 [모래군의 열두달] 에서 자신의 경험과 내적 갈등을 그대로 드러내며 독자와 경험을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자신도 한때 잘못된 자연관의 희생자임을 고백한 뒤 스스로의 변모 과정을 자세히 밝혀, 독자들도 그의 인식변화를 참고하며 생태인으로 변화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는 인간을 자연보다 우월한 존재로 보던 종래의 분리적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체계적 입장을 취하며, 인간의 윤리가 생명공동체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대지윤리학(land ethics)입니다.

 

그는 2차대전 중엔 전쟁으로 인한 자연파괴에 맞서며, 자연보전을 넘어 인간-자연의 융화를 위해 미국인의 관념을 변화시키려는 생태교육을 주창했습니다.

 

자연보전은 정부의 물리적 사업이 아니라 시민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냐에 달려있다고 본 것입니다. 땅과 대지를 우리가 함께 속한 공동체로 볼 때 비로소 자연에 대한 사랑을 갖고 겸손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랬습니다.

 

그는 미국삼림연합의 명예 부회장, 미국 생태학협회 회장에 선출되었지만, 말년엔 왼쪽 얼굴에 신경줄기가 부풀어 오르는 등 주기적인 신체고통으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공무과정에서의 험난한 산림조사와 오랜 생태학 공부, 농장에서의 끈질긴 생태복원실험, 생태윤리를 널리 알리려는 각종 강연과 방송스케줄, 오랜 글쓰기의 물리적, 신체적 부담이 누적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1948년 이웃농장의 화재진압 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조차 자연 속에서 자연을 지키려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Leopold는 처음엔 도구적 자연관과 공리주의를 신봉하던 일개 산림공무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연과 접하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야생성의 가치를 몸소 체험하고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어 생태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했습니다그러면서 자연생태계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에 터해 대지에까지 윤리 확장의 필요성을 알리는 생태철학자로 변신했습니다(졸고, "생태윤리의 수용과 그 행정학적 함의," [정부학연구] 20:2에서 부분발췌).

 

인생은 사실학이 아니라 해석학이다이란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을 쓴 용타 스님은  [생각이 길이다]란 그의 책에서  어떻게 생각해야 인간이 행복 해탈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이런 인생학을 설파합니다. 즉 스님은 이루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이루었다고 생각(해석)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 말합니다.

 

스님의 말씀을 좀더 의역하면, 인생은 그저 주어진 사실의 연속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삶이 주어졌다고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앞날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직장인(공무원 포함)은 그저 직장과 상사가 시키는 대로 주어진 일만 하며 제때 들어오는 월급만 탐닉합니다. 이처럼 경제적 의미의 직업(occupation)으로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직장현실에 대한 사실학입니다.

 

주지하듯이 이런 소극적 직장관이 능동적인 것으로 바뀌지 않는 한, 직장인의 수동적 하루는 매일매일 고달픔의 연속입니다. 일하는 재미도 보람도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위에서 길게 따라가 본 사례의 주인공 Leopold는 하급 산림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산림공무원 업무를 occupation이 아닌 하나의 천직, 직업소명(Calling)으로  '해석'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과 직업을 능동적으로 해석했기에, 많은 산림공무원이 갖고 있던  공리주의적 사고와 도구적 자연관의 한계를 오랜 자연체험을 통해 몸소 체득할 수 있었고, 나아가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생태학 공부를 하고 생태복원실험을 직접 하며, 자연 보전사상을 전파하고 생태교육에도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생을 사실학이 아니라 해석학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과 직업세계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며 스스로 성찰하고 스스로 변해 갔습니다.

 

또 자신이 self에서 Self로 변화해간 체험의 과정을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수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즉 우리 모두가 소자아에서 벗어나 큰 자아로 성숙할 수 있는 길을 자세히 안내해 주고자 훌륭한 인생 가이드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인생은 허들 넘기에도 비유됩니다. 살다 보면 숱한 암초가 우리 앞에 놓입니다. 일례로 병에 걸리면 병을 치유하고 건강을 회복하려는 또 한번의 인생허들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그 허들을 넘으며 다시한번 살아보고자 힘을 내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우리에게 잘못된 생각과 습관이 있다면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하며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기후 조건을 만들도록 우리 모두 또 하나의 기후대응 허들을 넘어야겠습니다.

 

토마스 브루더만이 쓴  [나는 선량한 기후파괴자입니다 : 기후위기를 외면하며 우리가 내뱉는 수많은 변명에 관하여]라는 책을 보면,우리는 기후문제 해결에 있어 지나치게 과학기술 낙관론에 의지합니다(문제가 너무 복잡해, 신기술이 우릴 구해줄 거야).   지금은 일단 즐기고 다음부터 실천하면 되지 하며 안이한 마음도 가집니다(내일, 다음 달, 내년부터 혹 언젠가). 

 

잠시 환경을 파괴해도 내 영향은 미세할 거라 단정합니다(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때론 나 혼자 환경보호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냐며 쉽게 합리화합니다(다 그렇게 해, 모든 걸 고려할 순 없어).   

 

나중엔 자포자기 심정으로 핑계만 잔뜩 늘어놓습니다(너무 늦었어, 난 급진적 자연주의자가 아니거든, 습관을 바꾸긴 쉽지 않아). 우리는 이처럼 숱한 변명으로 기후파괴 행동을 합리화하며 오늘도 기후파괴에 쉽게 발 담급니다.

 

기후-생태 위기는 도구적 자연관과 인간중심주의 등 우리들 소자아(self)의 약한 마음에서 기인합니다. 그래서 생태계가 인간 삶의 터전임을 깨우치는 전체론적 사고와 생태계 일원으로서 인간의 생태적 배태성 인식 등 어릴 때부터의 생태소양교육, 생태윤리 학습의 정례화는,  우리들 마음의 생태학을 가꾸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사람이 기후변화의 핵심 변수라면 사람을 기후친화적으로 키우는, 혹은 기후파괴에서 최소한 벗어나려는 성찰적 인간으로 만드는 교육과 개인적 노력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포기하는 순간 핑계를 찾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방법을 찾는다란 말이 있습니다. 기후대응 허들을 하나하나 뛰어넘는 사람다운 불편(정현종 시인의 시구)이 어려서부터 몸에 배게 해야, 커서도 변명보다 책임 있는 행동을 하고 윤리적 소비의 체화도 가능해집니다.

 

물론 머리가 이미 굳어버린 성인이 되면 참 변화가 어렵습니다. 변화가 두렵기조차 합니다. 더욱이 자연보전을 위한 사람다운 불편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란 말도 있습니다. 성인들도 지금부터 소자아에서 벗어나 큰 자아가 되려는 사람다운 불편을 차근차근 하나하나씩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Lepold의 사례는 이런 점에서 우리의 기후친화적 행동변화의 좋은 전범이 될 수 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사람다운 불편이 언젠가 즐거운 불편으로 승화되면, 자신의 기후친화적 삶에 책임을 지는 성숙한 사람으로 우리 모두 변할 수 있습니다.

 

남의 눈을 의식해 몇 번 하다 마는 일회성, 과시성 환경보호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허들들을 힘차게 뛰어넘으려  단단히 마음 먹고 발돋음할 때, 바로 그 발돋움은 기후친화 구조의 정착을 앞당기는 위대한 첫 발자국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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