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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에세이

몽골에서 목수철학을 생각한다

숲길지기 2025. 9. 5. 17:13

 8월 말에 몽골을 다녀왔습니다테를지 국립공원 등 몽골의 자연을 잠시 맛보고, 수도인 울란바토르 시내의 박물관과 공연극장에서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한 뒤, 울란바토르 시내를 거닐며 몽골인들의 생활상을 조금 들여다본 짧은 일정이었습니다.

 

몽골은 한참 개발 도정에 있었습니다국토면적은 우리의 15배나 되는데, 인구는 3백만 명 남짓그나마 대다수 몽골인이 수도와 그 인근에 모여 사니, 자연히 도시의 주거 문제, 교통 문제, 에너지 문제가 꽤나 심각해 보입니다.

 

울란바토르 도심의 한 숙소에 여장을 풀고 16층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빈 땅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건물과 아파트가 시내에 가득합니다. 저 멀리 도시 외곽의 산정상 부근까지 빼곡히 들어선 허름한 집들이 대규모 산동네를 형성하며 이 도시의 어려운 주거 사정을 드러냅니다.

 

시내의 교통정체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심각합니다. 길은 좁은데 대중교통은 발달하지 못해 저마다 차를 끌고 나오니 한낮의 도시는 오후 내내 교통마비 증세를 보입니다. 시내 화력발전소에서 뿜어낸 탁한 연기와 자동차 매연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오염된 구름띠 아래 놓여 있습니다.

 

차를 달려 시내를 벗어나니 그제야 숨통이 트입니다. 도시를 떠나 초원을 향하자 눈앞의 상황은 바로 역전됩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탁 트인 시야와 넓은 초지 및 푸른 구릉이 도시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금새 씻어냅니다.

 

자연을 향해 달려 갈수록 입에선 경탄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이윽고 테를지 국립공원에 이르자 세상 최고의 자연경관이 멀리서 찾아온 외지인들을 반갑게 맞아줍니다.

 

테를지 국립공원의 자연경관은 도시에서 지친 몸과 할퀸 마음을 달래고 치유하기에 충분한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병풍처럼 길게 펼쳐진 산들, 구릉의 부드러운 능선 자락, 푸른 침엽수림과 드넓은 초원, 기이한 모양의 암석과 바위 무리 등 원시 자연의 아름다움과 태고적 시원(始原)의 경이로움으로 충만한 곳이 바로 테를지 국립공원입니다.

 

한가지 못내 아쉬운 점은,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이곳 국립공원조차 난개발의 마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현실입니다. 국립공원 안인데 어떻게 이리도 많은 리조트용 숙박시설과 관광객 숙소용 게르가 산과 초원 곳곳에 잔뜩 설치되어 있는지요?

 

멀리서 보면 푸른 산자락과 넓은 초원을 예쁘게 수놓은 하얀 구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우리나라 소형 임대아파트만큼 큰 규모의 게르들이 산자락과 초원 곳곳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광업, 목축업과 더불어 최근 관광산업이 주요 돈벌이로 대접받는 몽골의 현 경제상황에서 보면 일면 불가피한 면도 있겠지만, 천혜의 아름다움을 내재한 원시 자연을 단지 돈벌이를 위해 삽시간에 파괴하고 있는 점에서, 테를지 국립공원 안의 무분별한 난개발 실상은 그곳을 잠시 스쳐지나가는 외국인이 볼 때도 매우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나라도 국가발전단계론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한 나라의 발전엔 필히 거쳐야 할 몇가지 단계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나라마다 편차가 조금씩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는 먹고사는 문제를 일단 해결하고 국가발전의 물적 토대를 닦은(경제성장) 뒤에야, 민주주의와 참여 등 정치발전을, 또 경제민주화와 배분적 정의 등 경제발전과 더불어, 복지와 환경보전 등 사회발전을 단계적으로 도모해 나갈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형태로 나라의 꼴을 제대로 갖출 순 없습니다.  일단은 먹고사는 문제의 시급함 때문에 단견적 시각에서 난개발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시간을 다투며 삽질, 톱질을 서둘러야만 일자리가 생기고, 입에 밥이 들어오고 몸에 옷을 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소련과 중국 등 초강대국의 영향력 틈새에 끼여있다가 1990년대의 민주화 혁명을 통해 비로소 시장경제 발전을 시작한 몽골의 현실에선, 바로 지금이 그런 국가발전의 물적 토대를 한참 갖추어 나가는 단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단견적 시각에서 자연파괴를 야기하는 난개발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겠습니다.

 

몽골은 가득이나 물 자원이 부족한데다가 기후변화로 사막화가 더많이 진행돼 농사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공업의 미발달로 생필품이나 먹거리마저 수입에 대거 의존하는 현실입니다. 한마디로 나라경제가 쉽지 않은 상황이니 난개발과 자연파괴형 사업을 해서라도 하루빨리 나라경제를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클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됩니다.

 

하지만 테를지 국립공원 안의 무분별한 난개발과, 과도한 도시인구 유입으로 이미 과포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도심의 현대식 고층빌딩 등 광속으로 전개되는 몽골의 개발속도를 적절히 제어하며 숨을 고르지 못한다면전세계 어디에서도 맛보기 어려운 빼어난 자연경관과, 한때 유라시아를 지배했던 대제국의 역사유산, 초원 유목민들의 환대(歡待)문화와 공동체 정신의 가치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증발될 우려 또한 너무나 큽니다.

 

몽골의 현 난개발과 미래의 광풍개발이 적절히 제어되지 못할 때몽골이란 나라 자체의 왜곡된 발전과 그것이 초래하는 자국민들에 대한 생활압박은 물론세계자연유산급의 훌륭한 자연경관 파괴와, 세계문화유산급의 역사,문화의 퇴행을 전세계인들도 가슴 조리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암울한 미래가 예상됩니다.

 

난개발로 인한 자연, 역사문화의 파괴는 비단 몽골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20세기 후반의 개발연대를 거칠고 힘겹게 거쳐온 우리나라도 여전히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가장 진보정권임을 표방했기에 환경문제 해결에 기대가 컸던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녹색생태계 복원과는 달리 자연파괴형 SOC 사업들이 개발이익을 노리며 지속되어 왔습니다.

 

일례로 국토부는 제주도의 자연생태계 훼손과 멸종위기 철새 도래지의 파괴 논란 속에서도 제주제2공항 건설을 추진해 왔습니다. 기획재정부도  지리산 하동 알프스프로젝트’ 에 따라 고지대 숙박시설, 산악열차,  케이블카의 설치 등 산지관광을 추진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지자체들이 관광자원 개발을 구실로, 경치좋은 산엔 케이블카와 짚라인을, 풍광 좋은 계곡과 아름다운 해안엔 출렁다리, 스카이워크, 짚라인을 경쟁적으로 설치하며, 지역 곳곳에서 자연파괴형 난개발과 세금낭비를 일삼고 있습니다.

 

여전히 개발이익과 성장전략을 위해 자연을 자원화하고 상품화하는 도구적 자연관이, 그린(green)이란 미명 하에 우리의 개발정책, 성장전략 곳곳에 은폐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몽골의 난개발 현실을 우리가 한가로운 마음에서 그저 스쳐지나가는 말투로 비난만 하고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치여 국립공원 안에서조차 난개발을 일삼는 몽골이나, 부존자원이 없어 고속성장과 개발정책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우리나라나아무리 개발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난개발의 역기능을 줄이고 아름다운 자연,역사,문화를 좀더 지키는 쪽으로 국가발전의 균형추를 찾으려는 노력을 절대 게을리 할 수는 없습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목수철학에 담긴 긴 호흡과 생태적 지혜를 찬찬히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훌륭한 목수는 집을 떠받치는 4개의 기둥목을 같은 산의 같은 비탈에서 모셔와 생시(生時)적 방향 그대로 세운다고 합니다. 이처럼 나무를 생육방위(生育方位) 그대로 써야만, 같은 곳에서 나고 자란 4개의 기둥이 생시적 몸의 기억으로 함께 하며, 콘크리트 집보다 더 오래가는 천년가옥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원규,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지리산 편지] 참고). 

 

좋은 목수는  눈앞의 돈이 탐난다고 얼렁뚱땅 집 짓고 대충 사용하다가 이내 부수고 또 짓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오래 가는 집을 지을 수 있는지를 늘 궁구하고 그에  알맞은 목재를 구하려고 발품을 팔며 목재의 성격도 잘 따져서 오래 가는 집을 짓고 말겠다는 그런 긴  호흡과 자기 경계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무의 성격을 잘 아는 것이 대목수의 임무였고,  나무가 자란 모양 그대로 제 성징을 그대로 쓰는 것이 고건축의 묘미였습니다. 나무에 손을 덜 댈수록 원래대로의 자연스러움이 남지만, 지나치게 손을 대면 인위적 형태만 남기 때문입니다(목수 김씨(김진송), [목수일기] 참고).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목수라면 이처럼 나무에 손을 덜 대어 나무의 자연스런 성질을 잘 살리는 사람이며, 특히 목재로서 나무의 경제적 가치도 잘 알기에 어설픈 톱질로 비싼 목재를 단번에 못쓰게 만들어 경제적 손실을 낳는 어설픈 짓을 늘 경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려면 나무에 톱질을 가하기 전에 여러번 나무의 재질을 살펴보고 나무의 성징을 잘 고려해, 자르고자 하는 단면을 잘 찾아내 그곳에 정확히 톱질을 가하는 것이 목수철학의 근본입니다.

 

그간엔 사람의 이익을 위해, 혹은 사람이 도모하는 일에 방해가 되어선 안된다고 자연에 몹쓸 톱질, 삽질, 망치질을 참 많이 해댔습니다이젠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살리면서 겸허한 마음으로 인간의 목적도 함께 도모하는 조화의 방법론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 측정 2번에 정확한 톱질 1이라는 목수 철학에서 배울 것이 참 많습니다개발이익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당장의 인내와 긴 안목의 생태적 지혜가 그것입니다.

 

목수철학은 아무리 개발이 시급하더라도  바쁠수록 돌아서가라”라는 말처럼, 지킬 것은 꼭 지키고 다질 것은 잘 다지며 집도 짓고 길도 내자는 점에서 난개발 속도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론입니다

 

당장 눈앞의 개발이익이 탐난다고 단견적 시각에서 함부로 삽질, 톱질하기보다는 정확한 계획과 신중한 판단 아래 꼭 필요한 개발만 도모하려는 매우 현명한 길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판단에는 사전예방원칙 아래 환경영향평가, 세대영향평가 등 미래의 문제소지를 사전에 도려내려는 긴 호흡과 신중한 측정이 전제되어 있겠죠.

 

짧은 일정이었지만 너무나 훌륭한 몽골의 자연을 잠깐이라도 맛보았기에, 또 한때 유라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던 큰 역사를 지닌 나라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한창 개발에 빠져해 난개발을 서두르는 오늘의 몽골에 대한 단상들을 두서없이 적어 보았습니다.

 

길 잃은 자가 길을 서두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몽골의 난개발이 낳을 추후의 파장을 생각하면 또 한번 지상의 한 나라가 단기적 개발이익에 눈이 멀어 세계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할 세계자연유산, 세계문화유산 급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파괴할 것같다는 우려의 마음을 쉽게 지울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데는 그런 우려의 걱정과 안타까운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몽골의 난개발 현실은 아직도 우리의 반면교사로 작용합니다. 우리 역시 난개발의 오랜 관행을 보여왔고 그 개발의 후유증은 지금도 만만치 않게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성장론자와 개발론자들은 고속성장과 난개발에서 요란하게 해법을 찾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보는 자신들의 짧은 눈과 거친 마음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몽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의 자연관리와 도시관리에도 목수철학을 늘 연계하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개발이 불가피하더라도 개발속도를 적절히 제어하고 개발과 보전의 균형추를 끊임없이 고려하며 참 발전의 방향을  궁구하려는 마음이, 우리의 마음속에 또 몽골인의 가슴속에 깊게 깃들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을  글에 담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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