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스토리 텔러 (포토 에세이 블로그)
회성 (교육) 본문
1994년 지방의 한 국립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속한 학과는 그해에 막 문을 열고 처음으로 학생을 모집한 신설학과여서 교수 수가 절대 부족했습니다.
법학을 전공하신 선임교수 한 분이 법학 과목을 담당하시니, 행정학 분야의 상당수 과목은 막 전임이 된 제가 처음엔 전담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대학원 공부를 할 때 제가 전공으로 한 과목은 행정이론, 행정철학, 국가론 등 거시적, 관념적 공부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리잡은 행정학과의 핵심 이수과목은 지방대학의 특성상 지방행정, 도시행정, 인사행정 등 실용적 과목들이었습니다.
신설학과여서 그 과목들을 가르칠만한 전공자가 아직 없다 보니, 그래도 막 전임이 된 제가 처음엔 이들 생면부지의 핵심과목 강의를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는 강의를 즐길만한 여유도, 배짱도 없었습니다.
당시를 잠시 돌이켜보면 좀 속된 말로 생면부지의 과목들을 전날 교재로 배워 다음날 학생들에게 교과내용을 소개하는데 급급했던, 단순 지식전달에 바빴던 가슴 아픈 시간들이었습니다.
한 가지 다행스런 점은 제가 그 순간을 즐기진 못했지만 피하지도 않았다는 점입니다. 당시는 민선 지방자치가 막 시작된 시점이어서 지방행정, 도시행정, 인사행정이 학문적 수요도 많은 과목들인지라 지방대의 행정학과 교수로서 응당 책임지고 맡아야 할 과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새 신세대 직장인은 상사가 뭘 시키면 ”그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반문한다고 합니다. 당시는 그런 ‘3요?”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라뗀 말이야“라는 꼰대 말처럼 비추어질 수 있지만, 그땐 응당 교수로서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오로지 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고생을 기꺼이 감수한 데는 아래와 같은 이유도 있었습니다.
당시엔 신설학과인데도 야간학부와 편입생제도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니 공부에 한이 맺혀 뒤늦게 학교에 들어온 나이 든 학생들이 자연히 많았습니다.
그들이 직장 일을 마치고 퇴근해 야간수업을 듣게 되어 밤마다 강의실은 불야성(不夜城)을 이루었습니다.
직장인 신분의 학생들을 배려하자는 차원에서 토요일 오후에도 강의를 집중 배치해, 토요일 저녁 6시에 강의를 마치고 밤늦게 서울집으로 귀가하던 날들의 힘겨웠지만 보람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당시 편입생들은 전문대를 다닐 때 행정학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도 꽤 있어, 정규 수업시간 외에 별도로 밤늦게까지 과외로 행정학개론 특강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나이 든 학생들은 ‘책 한 권을 떼면 책거리하듯’ 떡도 푸짐하게 싸 와서 밤늦게 나누어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당시는 연말연시 때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도 학생들이 자주 건넸고, 스승의 날이나 기말엔 감사의 마음이 담긴 학생들의 손 편지도 많았습니다.
그땐 공부에 한이 맺힌 나이 든 학생들이 있었고 어린 주간부 학생들도 사제지간에 남다른 정이 있었습니다. 새삼 당시의 정감(情感) 어린 캠퍼스가 문득 그립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공부에 대한 그런 갈증은 덜합니다. 상대적으로 좋은 시대에 태어나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마음에 주눅 든 점을 발견하기 어렵고, 그 대신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말도 딱 부러지게 잘합니다.
태도도 바르고 토익 등 어학공인점수, 취업관련 각종 자격증 등 많은 스펙으로 무장한 학생들도 적지 않습니다.
과제 발표를 시키면 학생들의 당찬 문제의식과 탁월한 과제해결능력, 뛰어난 정보검색능력에 종종 감탄합니다. 어려운 취업 문을 뚫고 학교로 찾아오는 졸업생들을 보면 그 의젓한 모습이 여간 대견스럽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대학 강단에 오래 서온 저로선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기쁨입니다.
교수 초년병 시절엔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노학도들의 공부 갈증을 조금이라도 더 채워주려고 생면부지의 과목들도 열심히 공부해 최선을 다해 가르쳤습니다. 요즘은 젊은 학생들의 당찬 행동과 날카로운 질문에 대비해 더 완벽한 강의가 되도록 강의준비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합니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같이 성장하는 불야성의 학당이 제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학상장의 기쁨이 큽니다.
이제 정답 말고 교육 분야와 관련된 저의 오답노트도 슬슬 공개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머리는 나쁜데 부지런한 상사’는 하위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상사 유형이라고 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야말로 하위자에겐 큰 민폐가 되는 상사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외골수인 데다가 공부 욕심도 많은 교수’도 학생들에겐 꽤나 민폐이겠지요? 저는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과제도 많이 내주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땐 시험범위도 무척 넓고, 학점도 좀 짠 편입니다.
성격상 학생들에게 달달한 위안의 말은 많이 못해 주고, 주로 세상살이의 올곧음이나 사회가 나아가야 할 규범적 방향만 학생들에게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제 딴엔 “나 때는 말이야”란 말이 입에서 나올까 봐 극히 조심했지만, 학생들이 저의 규범적 말투를 그렇게 꼰대의 말투로 느꼈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수님들처럼 학생들의 꽃대가 되어주려던 저의 일심(一心)엔 변함이 없습니다.
학생들이 저마다 자신의 예쁜 꽃을 싱싱하게 오래 피울 수 있도록 그들의 꽃대가 되고자 하는 모든 교수님들의 충심을 학생들이 성숙한 마음으로 이해해 주면 정말 좋겠습니다.
간혹 몇몇 학생들이 제 강의를 듣고 학기 말에 “세상 보는 눈이 밝아졌습니다.” “세상을 분석할 수 있는 좋은 잣대 하나를 얻었습니다.” “교수님의 철학을 배울 수 있어 좋았습니다”라는 강의소감을 전해오면 큰 보람도 느낍니다.
교육이란 것이 궁극적으로 사람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라면 일부 학생들의 따듯한 강의 소감에, 제가 가르치는 자로서 최소한의 역할은 한 것 같아 흐뭇한 얼굴로 잠시 자족해 봅니다.
그래도 제가 강의를 하며 정답 비슷한 것을 찾아 열심히 실천에 옮겼다면 그것은 제가 나름대로 개발한 몇가지 교육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단치는 않지만 혹시 이 글을 보는 후배 교수님들께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몇자 소개해 보겠습니다.
제가 맡은 과목 중엔 ‘행정학 입문’ 과목이 있습니다. 행정학이라는 전공에 막 입문한 새내기들이 배워야 할 필수과목입니다. 문제는 이 과목이 새내기들에겐 최초로 맞부딪치는 전공과목인데다가 아직 대학의 수업내용이나 수업방식에 익숙하지 않아 처음엔 매우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새내기들의 순조로운 전공입문(入門)을 돕고자 지적 호기심을 유도하는 과제들을 많이 내주고 발표의 기회도 부여했습니다.
학기 초엔 ‘길 위에서 행정 찾기’라는 개별과제를, 학기 중간 무렵엔 ‘예술작품에서 행정세계 발견하기’ 등의 팀 프로젝트를, 어느 정도 전공에 익숙해진 기말을 앞두곤 행정문제 관련 상황극 시나리오를 팀별로 직접 쓰고 몸소 시연도 해보는 UCC 제작발표회도 가져봅니다.
[사례분석을 통한 세상 읽기]라는 4학년 2학기 과목에선, 직장생활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키워드들을 중심으로 관련 사례를 분석하며 곧 미래의 일터로 진출할 예비 사회인들이 직장생활의 성공조건을 미리 간접체험해보는 기회를 가져봅니다. 마치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아남는다’는 심정으로, 4학년생들이 미리 직장생활을 체험하며 직장에의 적응방법을 스스로 익혀보게 하는 것입니다.
뭐니뭐니해도 이 과목의 메인 이벤트는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미래의 민주시민이자 지역 생활인으로서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출신 고향이나 현 거주지에서 내발적(자생적) 지역발전의 길을 스스로 강구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제의 일환으로 해당 지역지도(생태지도,문화지도,위험지도) 그리기, 지역자산을 기반으로 한 작은 도시가 사는 길, 지역공동체 역량을 키우기 위한 마을기업, 협동조합, 품앗이형 지역화폐를 , 또 기후위기에 대비해 지역 기후시민되기 등의 과제를 학생들과 같이 풀어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요즘은 자주 개설하지 않지만 한때 저의 주력 강의과목이었던 3학년 대상의 [국가발전과 행정개혁], [생태주의 행정철학] 과목에선 제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블로그에 탑재된 관련 이미지 파일들을 보며 시청각교육도 실시해 보았습니다.
학생들의 어깨동무 정신을 키우기 위해 팀 프로젝트 등 협력교육을 모든 과목에 도입하였고,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한 집단지성 창출의 장을 수업 시간에 많이 만들려고 애써 노력했던 시간들이 제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다음 글에선 연구분야에서의 저의 경험에 대해 잠깐 언급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