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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성 (연구)

숲길지기 2025. 12. 11. 16:35

이제 연구분야를 살펴보겠습니다. 대부분의 교수님들처럼 저도 강의의 효능성을 위해 당대의 시의적절한 연구주제를 찾고 그 공부의 결과물을 다시 교육에 반영해 좀더 현실감 있는 교육이 되도록 교육-연구의 공진화를 도모했던 것 같습니다. 즉 교육-연구의 연계성 확보를 위한 상호 피드백을 중시한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이런 피드백에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꽤 많은 노력은 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모든 text는 그것이 쓰이는 당대의 맥락(context)에서 나온 것임을, 즉 책이 쓰이게 된 배경맥락인 context와 그 결과물인 text의 상관성도 연구에서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교수생활 초기(1994-2006)엔 앞의 교육 분야에서 말했듯이 한동안 가르치는 데 급급했습니다. 제 전공 말고도 지방대학 특성상 학문적 수요가 많은 생면부지의 과목들도 공부해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과목을 다른 분이 쓴 대학교재로 강의하다 보니 간혹 뭔가 ‘내 몸에 안 맞는 옷같은 느낌이 적지 않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과내용을 일단 제가 다 소화한 뒤 그에 대한 저의 정리된 생각을 담아 일관성 있는 논의틀을 마련하고 그 틀에 의거해 과목내용 전체를 체계적으로 전달하자는 생각으로 해당 과목들의 텍스트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저는 가수 중에 싱어송라이터(singer-song writer)를 좋아합니다. 자신이 부를 노래를 자신이 만들어야, 즉  곡을 직접 쓰고 노랫말을 붙여야, 온전히 자신의 느낌과 생각으로 자신 있게 노래를 당당히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듣는 사람에게도 전달이 잘 된다고 생각하고 싱어송라이터의 마음으로 텍스트를 집필했습니다. [행정학의 샘물], [지방자치의 하부구조], [행정철학], [비교발전행정론(2인공저)], [정부의 전략적 인적자원관리] 등은 그런 마음으로 쓴 텍스트들입니다.

 

이 중에 2번째와 5번째 책은 대학원 때의 제 전공과는 아무 상관 없지만 신설학과의 전임교수로서 피하지 않고 애써 노력해 얻어낸 귀중한 학문적 소산이어서 특히 정이 가는 책입니다.

 

그렇게 강의에 쓸 텍스트가 일단 마련되니 강의의 심적 부담을 좀 덜 수 있어서, 학자 생활 중기(2007-2016)엔 연구의 외연 확장을 적극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생태주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파괴, 경제성장에 녹색이란 색만 살짝 입힌 사이비 녹색뉴딜사업, 신개발주의로 포장한 뉴타운 개발이 기승을 부리며, 가짜 녹색 탈을 쓰고 국토의 이곳저곳을 파헤치던 미친 개발의 시대였습니다.

 

당시엔 제가 몸이 좀 불편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산을 찾고 숲에서 시간을 보내려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종종 찾아간 산과 숲에서 맛본 자연의 원리(관계성,순환성)와 생태적 지혜, 숲의 공익적 가치를 조금씩 터득하다 보니, 이명박 정부의 미친 개발에 치가 떨리고 광폭 개발에 조금이라도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고, 그런 생각으로 [생태주의 행정철학: 생태관료 육성의 철학적 기반을 찾아서]라는 책을 썼습니다.

 

둘째, 민주주의 공부도 병행했습니다. 뒤이어 집권한 박근혜 정부 땐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최순실 국정농단과 십상시 문고리 권력 등 연일 비판여론이 끓이지 않았습니다. 청와대라는 절해고도에서 자행된 소수에 의한 밀실결정과 그것이 낳은 숱한 계획오류가 사회를 어지럽히고 혼탁하게 만들던 때입니다. 그래서 숙의(熟議) 민주주의 등 여민(與民)행정의 필요성을 제도화하는 책 [우리들의 정부: 시민속의 정부가 사람을 위한 정책을 만든다]을 쓰게 되었습니다. 또 같은 맥락에서 한 나라의 발전의 진면목을 찾고 참발전의 방향을 국가정책으로 제도화해보는  [참발전이야기(2인공저)]라는 책도 쓰게 되었습니다 

 

셋째, 자율주의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가 몸담고 있던 대학에선 학내에서 리더십을 찾지 않고 총장을 외부에서 영입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시의 대학행정이 구태에 갇혀 추진력을 잃고 발전이 더디다 보니, 일부 학내 구성원들이 외부에서 새 피를 수혈하겠다는 마음에서  총장 영입을 추진한 것을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학내의 중지를 모으고 서로 힘을 합쳐 학내 구성원의 자율의지와 잠재역량으로 작지만 강한 대학을 만들기보다는, 자꾸 총장을 외부에서 끌어들이고 타 대학과의 통합으로 덩치만 키우려는 의견엔 절대 찬성할 수 없었습니다

 

자주적 발전을 도모할 의지가 약한 채 점차 위축되는 직장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학교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인사를 영입해 자칫 무능 무책임한 리더십의 결말을 반복해 초래하기보다는, 학내구성원들의 자유연합과 자치관리 능력을 살리는 아나키즘 요소를 행정학이나 조직운영에 도입해보려는 자율주의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는 관피아 기득권층이 시절인연을 잘 타고 태어났는지 지자체의 장 자리나 지방대학의 총장 자리를 탐하던 시절이었습니다또 지방의 여러 대학들도 스스로 자생력을 키우기보다는 관료 출신들이 여전히 중앙과의 예산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을 거라 기대하며 외부에서 리더십을 구하려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리더십 위기 하에서 평소 관심 있던 아나키즘의 행정학적 버전을 찾는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무정부주의자, 암살범, 파괴자로 오역된 아나키스트와 달리, 아나키즘의 본질을 반강권(反强權)주의, (무능 무책임한) 우두머리 없는 동맹, 자유연합에 의한 자치관리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런 점들을 숙의(熟議)민주주의식 정책설계와 여민(與民)행정이란 틀로 정리해 일종의 시민행정학을 실험해 본 것입니다. 그 결과는 몇 편의 논문으로 나타났고, 또 앞에서 소개한 [우리들의 정부] 책 뒷부분에도 일부 반영되었습니다.

 

교수생활의 종착역으로 달려가는 후기(2017-2025)는, 중기에 시작된 자율주의, 민주주의 공부의 심화 시기입니다.

 

자율주의 공부의 연장선상에서 공무원 인사제도의 자치관리 필요성을 정부 인사행정에 반영한 [당근과 자율: 나라살림꾼 키우기의 키워드를 찾아서], 지역소멸 대응 차원에서 외래형 개발의 폐해를 지적하고 로컬의 자생적 발전, 자주적 지역활성화를 도모해본 [소멸시대의 지역 활성화와 도시사랑법: 내발적 발전과 탐구적 도시걷기가 답이다]가 이 시점에서 발간된 책입니다.

 

돌이켜보니 당시의 시대적 맥락이 문제의식과 연구주제를 주었고 그 해답을 갈구하려던 저의 생각이 나름의 공부 외연을 확대하고 공부의 내포를 조금씩 심화시켰던 것 같습니다. 또 그런 연구결과물을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전하는 시간이 쭉 있어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연구분야와 관련해 저의 치명적인 오답노트도 하나 공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혼자 끙끙대며 저의 저술 스케줄을 애써 지키려다 보니, 같이 공부하고 공동연구하자는 몇몇 학회 교수님들의 제의에 제가 흔쾌히 화답하지 못한 점입니다.

 

아프리카 속담처럼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는데,” 급한 마음에 "빨리 가려고 혼자 가는"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역사에 가정법은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당시 동학들의 제안에 제가 좀더 큰 마음으로 접근했더라면, 그분들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훨씬 더 긴 안목으로 연구대상을 바라보고 시의적절한 연구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의 심정이 지금 크게 드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혹여나 그런 공동연구의 기회가 다시 온다면,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겠습니다. 그리고 폭넓은 시야와 긴 안목의 공동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먼 길을 안전하게 가는 최적의 방법을 찾는 집단지성의 장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습니다.

 

다음 글에선 교수로서의 사회봉사 경험에 대해 몇가지 소회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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