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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의 글/두 글자의 사유

회성 (닫는 글)

숲길지기 2025. 12. 11. 16:40

지난 32년을 회성(回省)하니 미국의 무성영화 시대를 이끌었던 배우이자 감독인 찰리 채플린의 말이 생각납니다.

 

´세상사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입니다. 저의 경우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왜 이리도 강의가 잘 안되지?” “왜 이렇게 논문이 안 써지지?”  “왜 학생들은 내 마음을 몰라주지?”  “교육부 당국은 무슨 권리로 돈 몇 푼 재정 지원하는 구실로 대학의 자율 운영에 과잉 개입하지?” 등등 매일의 일상은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 그런 고통과 좌절의 순간이 제가 교육자로서나 연구자로서 좀더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는 담금질의 기회로 축적되어, 이제 무탈하게 정년의 순간을 맞이하도록 든든한 연결고리가 되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학생들의 푸릇푸릇한 성장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교수로서 최소한의 역할은 하지 않았나 자족해 봅니다. 이 모든 시간의 흐름을 저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기쁨으로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저 개인적으론 32년 교수생활을 학자보다는 학인(學人)의 마음으로 보내고자 했습니다.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학자보다는, 늘 공부를 손에 놓지 않으며 그 공부가 개인적 입신양명보다는 사람답게 사는 쪽으로 작용하도록 미천한 능력이지만 열심히 궁구하는 마음을 잊지 말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학(儒學)에선 성인(聖仁)을 이상적 인격체로 규정합니다. ()이라는 한자를 해자(解字)하면, + = 입니다. “귀다운 귀와 입다운 입을 가진 사람만이 남을 이끄는 위치에 있게 된다”([동양철학 에세이] 참고)라는 말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는 간혹 공명심에 빠져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던 점에서 귀가 얇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됨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 호불호가 분명해 사람 칭찬에 다소 인색해서 모든 사람을 위한 입다운 입을 갖기가 어려움을 뼈저리게 절감합니다. 

 

그래도 학인 생활의 -중기엔 성인까진 언감생신 꿈도 못 꾸더라도 그 하위버전인 선비의 정신세계는 잊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공부 + 청렴(검약) + 지조를 강조하는 선비적 삶의 덕목은 학인으로서 꼭 실천하고 싶었고 개인적으로 부단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실천할 수 있을 거란 판단도 있었습니다.

 

이후 학인 생활의 중-후기엔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선비의 연장선상에서 전인적 교양인(인문주의자)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왜 이리도 어려운가? 그렇다면 정말 어찌해야 하나?”라는 문제의식 속에, 인생살이의 진미를 좀더 깨닫고 세상살이의 해법을 찾기 위해 인문학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하루의 반은 인문학도로, 나머지 반은 사회과학도로 살며,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두 마리 토끼 쫓기를 부지런히 했습니다.

 

교양인이나 인문주의자가 되고자 하는 저의 노력은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그래도 2권의 생활에세이( [사유<思惟>],  [노을처럼 익어가야지]),  1권의 포토에세이  [시름은 덜고 여유는 한 자락 얻고]라는 책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에도 시대의 일본 외교관이자 유학자, 어학자인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는  [어느 경계인의 고독과 중얼거림]이란 자신의 책에서, “수명 5년 단축할 마음이면 세상에 하지 못할 공부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부족하나마 인문학, 사회과학 숙제를 마치기 위해 교수 말년에 다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주말까지 반납하며 저술에 노력했고 올해 2가지 숙제를 다 마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니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살았다는 생각은 듭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며 더 나은 내일의 내가 되고자 오늘을 열심히 살아온 발자국의 면적과 부피가 조금은 느껴집니다.

 

 

 

 

 

 

수고로운 땀방울과 속울음의 다짐이 켜켜이 배인 지난 생()의 흔적과 그 결과물들을 앞에 놓고 보니, 지난 32년 세월이 다시 주마등처럼 흘러갑니다.

 

물론 제가 이뤄놓은 이들 결과물이 큰 자랑거리는 절대 못됩니다. 하지만 나이가 더 들어 병들고 지친 순간이 올 때마다, 젊은 날 생의 과제 앞에서 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는 자긍심으로, 또 뭔가를 늘 지향했던 젊은 날의 나 자신을 돌이켜보며, 자칫 의기소침해지기 쉬운 늙은 내가 되지 않으려는 자존감 고양의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뭘 더 바라겠습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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