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스토리 텔러 (포토 에세이 블로그)
굿 뉴스 하나, 배드 뉴스 둘 본문
재작년 가을 어느 주말에 동네에서 플리마켓이 열린 적이 있습니다.
동네 엄마들이 아이들이 입던 옷가지나 아이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 책들을 갖고 나와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좌판을 벌이며 동네장터를 열고 있었습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서로 안면 있는 사이인지 부모는 부모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밝은 목소리가 동네장터 내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청량한 웃음소리도 참 듣기 좋았습니다.
오래 방치된 채 집구석에 처박혀 있던, 그러나 아직은 쓸만한 옷가지나 책, 장난감들이 어두운 방구석을 탈출해 대낮의 장터에서 빛을 발하는 모습도 너무나 보기 좋았습니다.
장터에서 오랜만에 동네의 활기를 느끼고 동네사람들의 정(情) 나눔을 지켜보면서, 이 시대에 필요한 소비의 덕목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보고 배우는 아동생태교육의 참 방향은 어떠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의 대량생산-대량소비 사회에선 기후위기를 야기하는 여러 징후들이 산재해 있지만, 과소비를 낳는 패스트 패션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옷장을 열며 "입을 옷이 하나도 없네”하는 우리의 말투는, 진짜 옷이 없어서가 아니라 신상(신상품)이 없다는 허튼 소리일뿐이죠.
해마다 옷을 사니 작년에 사서 한두 번 입은 옷은 이미 올드 패션이 되었는지요?
물론 아이들의 키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니 작년까지 입던 옷을 올해는 입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남의 집 동생들이 그 옷의 새 임자가 되면 정말 좋겠죠.
어디 옷뿐이겠습니까? 아이들이 잠깐 갖고 놀다가 시들해지면 팽개치는 장난감도, 또 한번 보면 그 다음엔 눈길 한번 안 주는 동화책들도 동네장터에서 새 임자를 만나면 정말 굿!!입니다.
동네 플리마켓에서 불필요한 것은 처분하고 필요한 것은 득템하며 서로 정(情)을 나누는 이런 자리는,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참고하면 좋은 의미를 듬뿍 담고 있습니다.
빈틈 하나 없이 빽빽이 들어찬 차가운 아파트 숲에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웃으며 서로 정을 나누는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정신을 통해 과소비 시대의 병폐를 조금씩 지워 나가는, 살아있는 아동 생태체험교육의 장이기도 합니다.
불행히도 우리 주변엔 이런 굿 뉴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 같이 성찰해야 할 배드 뉴스도 만만치 않게 들려옵니다.
최근 동네 인근 산자락마다 유아숲체험원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아파트 놀이터나 게임기에 빠진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인근의 자연을 찾도록 유도해보자는 점에서 숲체험원 조성은 일단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무럭무럭 건강하게 커나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산자락에 유아숲체험원이 들어서거나 숲속 체험학교를 개설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자연과 친숙한 아이를 키우겠다는 매우 좋은 취지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유아숲체험원이 적지 않은 경우 멀쩡한 산자락을 깎아내며 성급히 만들어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일전에 다른 글에서 한번 다뤘지만, 어느 산에 갔다가 목격한 사실을 중심으로 이 얘기를 좀더 해보겠습니다.
산자락에 조성된 그 유아숲체험원의 경우는 그곳에 이르는 통행로가 숲 이곳저곳에 나 있어 살짝 걱정이 되었습니다.
통행로를 여기저기 내면 그만큼 산속 숲면적이 줄어듬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산과 숲을 보러 오는데 그것을 위해서 산속 숲면적을 줄인다? 그것 참 아니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아이들이 숲체험원에 빨리 당도하도록 하기 위해서인지 나무와 풀이 우거진 멀쩡한 숲속으로 일부러 길이 난 곳도 있었습니다.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숲체험원이 이렇게 조성되면 뭔가 주객이 전도되어도 단단히 전도되었다는 부정적 느낌을 우리가 쉽게 지울 수 없습니다.
숲체험원 안의 여러 시설들도 놀이기구 성격만 강할 뿐 자연학습 도구로서의 활용가치는 떨어져 보였습니다.
잘 보전돼온 산자락과 천연의 숲을 헤치면서까지 숲체험원과 그곳에 이르는 길을 함부로 조성하면, 아이들은 자칫 자신들의 짧은 유희(遊戲)를 위해선 얼마든지 파헤쳐도 되는 한갓 도구나 수단으로 자연을 여기고 하찮은 것으로 대하기 쉽습니다.
사람은 다른 생명체들과 공생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생태계의 일원(member)이지, 자연 위에 군림하며 자연을 제 마음대로 재단하고 거칠게 다뤄도 되는 생태계의 대장(boss)이 절대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자연과 제대로 된 친구를 맺게 하기 위해선, 위와는 전혀 다른 숲체험 방식이 요구됩니다.
일단 아이들이 산과 숲에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깃들게 해야 합니다. 뭔가 소중하고 값진 것을 만나러 간다는 설레임도 심어주면 좋겠습니다.
산과 숲에 들어와서는 나무와 풀, 벌레들을 조용히 관찰, 기록하며, 자연이 주는 생태적 지혜를 감사의 마음으로 차분히 배울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잘 보존되어 있던 자연을 일부러 파헤치면서까지 아이들에게 놀이공원을 만들어 주거나, 또 숲속 놀이기구에 빨리 다다르도록 아무 곳에나 통행길이 나도록 더이상 방치해선 안될 일입니다.
그러면서까지 산과 숲을 훼손하면 그 뒤에 남는 것은 생태발자국뿐입니다. 어제까지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던 나무들이 다 뽑혀 사라진 흔적만 휑하게 눈에 띄겠지요.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어려서부터 자연을 하대하면 죽을 때까지 자신의 짧은 유희를 위해 자연을 한갓 도구로만 여기게 되고, 인간이 세상의 유일한 주인인 양 배타적 소유욕을 당연시하게 됩니다.
배타적 소유욕과 관련해 안타까운 배드 뉴스가 하나 더 있습니다. 어느 유아숲체험원 입구의 표지판에서 확인한 금지행위 안내문입니다.
그 표지판엔 여러 가지 행위가 금지되어 있었는데, “음주, 흡연, 화기사용, 소음 금지”는 숲의 보호를 위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사항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려동물 출입금지, 보호자 외 외부인(성인) 출입금지” 표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물론 아동의 안전을 고려한 점에서 특히 외부인(성인) 출입금지를 표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숲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마음껏 즐기며 소중히 지켜나가야 할 대표적 공유장소임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더 진정한 숲체험 교육이 아닐까요?
“사람은 자연에서 나와 자연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태생적 뿌리가 자연이기에, 우리 모두는 생태적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과 자연 서식처와의 올바른 관계 맺기 훈련이 정말 어려서부터 필요하겠습니다.
human(사람) - humus(땅) - humility(겸허)! hum이라는 같은 어근에서 나온 3 단어를 찬찬히 뜯어보면, 결국 사람이 자연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바로 겸허의 마음입니다.
아이들을 자연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줄 아는 겸허한 사람으로 만들려면, 어설픈 숲체험원 조성으로 망가진 숲을 돈이 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복원해, 아이들이 자연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방법을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배우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잘 보전된 숲에 아이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다가오고, 감사의 마음으로 숲에 깃들도록 조그마한 오솔길 하나만 내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 길의 소중함을 깨닫고 경건한 마음으로 숲에 들어와 자연의 소리에 조용히 귀기울일 것입니다. 숲에 함부로 발자국 안 남기려고 발걸음도 신중히 하겠지요.
또 숲체험원이나 숲속체험학교 안에 재미 위주의 놀이기구만 설치하기보다는, 숲이 자연스레 변해가는 모습에서 '스스로 그러한' (self-so)이란 자연의 참뜻도 어려서부터 점차 깨우치게 하고, 자연과 사람의 상호연계성을 찬찬히 배울 수 있도록 그곳을 자연체험 및 생태학습장소로 만드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것이 이 산, 저 산에 속속 들어서고 있는 유아숲체험원이나 숲속 체험학교에 아이들이 들어와 자연과 제대로 소통하는 진정한 방법입니다.
내가 배려해야 할 사랑의 대상을 주변 자연에까지 확대해, 사람이 자연을 지키고 사랑할 때 사람의 삶도 안전해지고 삶의 질이 올라감을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배우는 계기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또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부정적 발상보다는 숲이 만인이 공유하고 활용하는 공유의 장소임을 알려주되, 서로를 위해 지킬 것을 꼭 지키는 쪽으로 어려서부터 공유장소 이용법을 배우는 긍정의 아동 생태체험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럴 때 아이들 마음속에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나무' 한 그루가 무럭무럭 자라고, 그 사람나무들이 모여 이루어진 ‘더불어 숲’이 우리 사회에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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