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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자연 야구팀의 탄생 본문

생태 에세이

가을 자연 야구팀의 탄생

숲길지기 2025. 9. 26. 11:28

 

며칠 전 출근길 운전 중이었습니다요즘 아침저녁으론 제법 서늘한 느낌이 들어,  길고 길었던 여름도 드디어 물러가나 생각하며, 에어컨 작동 대신 차창을 조금 열었습니다.

 

그러자 청량한 바람이 차 안으로 훅 스며듭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차 안으로 밀려든 바람은 더 이상 덥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아니었습니다.

 

맑고 깨끗한 청량한 공기였습니다. 덕분에 공연히 바쁜 출근길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운전하며 차 앞유리를 통해 힐끗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를 짓누르던 먹구름 떼는 사라지고 푸른 하늘이 드높습니다. 놀러온 뭉게구름이 푸른 하늘 가득히 하얀 자수를 놓고 있습니다.

 

도시를 벗어나니 차창으론 조금씩 노래지기 시작한 들판이 보입니다. !  가을이 성큼 다가왔구나 생각하니, 유난히도 덥고 습했던 지난여름의 악몽에서 빠져나온 듯 해방감마저 살짝 들었습니다.

 

이후 차창으로 스쳐가는 정경들은 다 가을의 도래를 증명합니다. 가을이 왔음을 여실히 보여주려는 듯 가을을 상징하는 자연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문득 그것들로 가을 자연 야구팀을 하나 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급하게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야구팀을 꾸리려면 가을을 상징하는 자연이 최소 9가지는 돼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가을을 상징하는 자연이 많을까 살짝 의구심도 들었습니다그래도 이왕 내친 김에 손으론 핸들을 단단히 부여잡고 머릿속으론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보기 시작합니다.

 

야구에서 한 팀의 1번 타자와 2번 타자는 테이블 세터로 불립니다. 안타를 치든 포볼을 고르든 일단은 출루해 득점의 발판을 만든 뒤, 후속 타자의 안타나 희생 플라이 때 홈으로 질주해 득점을 올리는 것이 이들의 미션입니다.

 

그렇다면 가을의 어떤 자연이 가을 자연 야구팀(이하 가을 야구팀으로 줄임)의 테이블 세터를 차지할까요가을 야구팀의 1번 타자는 뭐니뭐니해도 한층 달라진 공기의 맛과 냄새입니다.

 

덥고 습한 여름공기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선선하고 맑은 계절의 도래를 알리는 첫번째 존재는 청량한 공기와 선선한 바람입니다.

 

선선한 미풍에 실려 청량한 공기가 코로 들어오면 아무리 감각이 무딘 사람도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찾아왔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그래서 가을 야구팀의 타선을 여는 1번 타자는 청량한 가을 공기와 선선한 바람입니다.

 

야구팀의 2번 타자는 1번 타자의 진루를 돕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안타를 쳐서 자신도 살아나가면 좋지만 우선은 희생번트를 대거나 진루타를 쳐서 1루에 있던 선수를 2루까지 보내는 작전을 수행해야 합니다,

 

제 생각엔 가을 야구팀의 2번 타자는 드높은 푸른 하늘과 그것에 하얀 수를 놓아 푸른 하늘을 더 돋보이게 하는 뭉게구름 같습니다.

 

아무리 가을 공기가 청량해도 사람들은 푸른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힘을 합쳐, 여름 내내 우리를 짓누르던 먹구름떼를 어서 걷어내고 가을로 가는 징검다리를 하나 더 든든하게 놓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클 테니까요.

 

청량한 가을바람에 드높은 푸른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가세하면, 가을이란 계절의 도래를 제일 먼저 알리는 확실한 신호탄이 될 수 있겠죠우리는 이들 자연을 가을 초입의 일상에서 자주 맛보며 계절의 변화가 주는 싱그러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야구팀에서 3,4,5번 타자는 클린업 트리오입니다. 1,2번 타자가 출루해 스코어링 포지션에 가 있으면 적시타를 쳐서 누상의 주자들을 홈으로 불러들이는, 즉 누상에 잔루를 남기지 않고 싹슬이 하는 타점 능력이 출중한 타자들입니다.

 

가을은 한해 수확의 계절! 그렇다면 가을 야구팀의 3,4,5번도 누상의 주자를 다 불러들여 점수를 내는 추수자, 수확자임이 분명합니다.

 

그중에 3번 타자는 가장 정확한 타격을 자랑하는 클러치 히터입니다. 즉 득점찬스를 맞아 적시타를 쳐서 누상의 주자들을 홈으로 쓸어 담는 빗자루 노릇을 도맡죠.

 

제 생각에 가을 야구팀의 3번 타자는 때가 되면 세상 모든 논에 노랑색 물감을 듬뿍 풀어 온세상을 환하게 장식하는 황금들판과 고개를 숙이며 익어가는 누런 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을을 상징하는 대표 색깔 중 하나인 황금색으로 너른 들판을 물들인 채 날로 익어가는 벼들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을이라는 맛난 음식을 눈으로 미리 맛보게 하는 확실한 한방을 장착하고 있지요. 황금 들판을 쳐다보면 먹지 않아도 이미 배가 부릅니다.

 

4번 타자는 홈런 등 장타력으로 게임결과를 일거에 뒤집는 게임 체인저입니다. 그런 점에서 풍성한 과육과 과즙으로 우리 입을 마냥 즐겁게 하고 알록달록한 색깔로 눈호강도 시켜주는 풍성한 햇과일들이야말로 가을 야구팀의 진정한 4번 타자라 할 수 있습니다.

 

여름 내내 입맛을 잃고 축 처져있던 우리들 입에 싱싱한 과육과 풍성한 과즙을 선사해, 단번에 왕성한 식욕을 북돋워주는 글랜드 슬럼(만루홈런)을 날려줄테니까요.

 

클린업 트리오의 마지막 5번 타자는 태풍이 잦아 햇과일 농사의 작황이 안 좋은 해에도 가을이 수확의 계절임을 잊지 않게 하는 마지막 존재, 즉 우리들 밥상 위에 놓이는 햅쌀입니다.

 

햅쌀로 지은 따스한 밥 한 공기일찍이 고은 시인은 이란 시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더라라며 밥의 참맛을 시로 풀어냈지요.

 

가수 강산에의 노래  '천천히 걷는다'라는 노래 가사 중에도  친구들과 싸웠던 날도 밥 한 공기 든든히 먹고 나면 잊어버리던 그때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밥 한 공기는 흔하디 흔하지만 최고의 사랑 나눔이고, 현실의 아픔과 고단함을 잊게 하는 화끈한 심리 치료제입니다. 그중에서 밥맛이 가장 좋은 햅쌀밥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죠.

 

야구팀에서 6번부터 9번 타자까진 그냥 하위타선으로 치부해 버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상위타선이 긴 슬럼프에 빠져 있거나 일시적인 컨디션 난조로 타점을 못내도, 수비의 중추를 이루면서 꾸준히 안타를 생산하고 출루능력까지 갖춰 득점에 기여하는 6, 7번 타자가 있으면 이들의 팀 기여도는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을 야구팀의 6번 타자는 단풍입니다. 물론 가을 산을 화려하게 수놓는 그 수려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단풍을 상위타선인 3,4,5번에 배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맹자 말씀처럼 항산(恒山)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생기는법이고, 우리 속담에도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습니다.

 

저는 가을을 한해 내내 정성껏 키운 먹거리 수확의 계절로 강조하고 싶어서, 햇과일과 햅쌀, 또 햅쌀을 잉태한 황금들판을 클린업 트리오로 배치한 바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풍에겐 좀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알록달록 가을 단풍을 6번 타자로, 그리고 색깔은 더 짙고 깊지만 조금 늦게 길 떠날 채비를 한 늦단풍을 7번 타자로 배치해 봅니다.

 

혹여나 개인사정상 햇쌀밥과 햇과일을 마음껏 섭취하지 못해도, 우리는 가을단풍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을을 맛보고 계절의 변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런 타순 배치는 어디까지나 순전히 저의 주관적 판단입니다. 가을을 상징하는 것들에 대한 개인적 선호에 따라 가을 야구팀의 타순 오더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선호에 따라 가을 야구팀의 타순을 자유롭게 짤 수 있습니다. 그 타순 오더가 어떻든 가을 야구팀 타자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면서도 서로 연결되고 하나로 뭉쳐 가을야구의 묘미를 우리에게 듬뿍 선사합니다.

 

아직도 가을 야구팀의 8, 9번 타자 지명이 남았군요. 프로야구에서 8번 타자는 투수를 리드하고 팀의 전체 수비 위치를 컨트롤하는 포수가 주로 차지합니다.

 

게임 내내 무거운 보호장비를 걸치고 쭈그리고 앉아 팀의 수비를 진두지휘하면서, 투수의 강속구를 받아내고 간혹 투수의 폭투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궂은일 치다꺼리의 대명사가 바로 포수이지요.

 

포수를 보면 희생과 헌신의 아이콘, 어머니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실제로 포수는 팀의 안방마님으로 불립니다.

 

그런 점에서 가을 야구팀의 8번 타자는 감나무에 끝까지 매달려 까치밥 역할을 하는 몇 개 안 남은 감이 아닐까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결국 새들의 밥으로 희생될 운명이지만 끝까지 나무에 매달려 붉은 감나무의 존재감과 까치밥으로서의 미션을 다하니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늦가을의 묵직한 상징물입니다.

 

야구에서 9번 타자는 또 하나의 1번타자라 불립니다. 그만큼 선구안이 좋아 출루 역량이 있고 일단 출루하면 도루도 잘하는 등 작전수행능력이 좋아 하위타선과 상위타선의 연결고리 역할을 주로 맡죠.

 

낙엽이야말로 그런 점에서 보면 가을 야구팀의 9번 타자로 손색이 없겠습니다. 마지막인 자기 타순이 올 때까지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낙하해 나목(裸木)의 뿌리를 한겨울 추위로부터 보호하고 다음 해 나무가 잎과 꽃을 듬뿍 피우도록 거름 역할도 톡톡히 하는 언성 히어로가 낙엽입니다.

 

출근길 운전 중 차창 밖 계절의 변화를 보며 떠오른 단상을 위에서 두서없이 적어보았습니다. 가을을 상징하는 자연들을 하나하나 불러내 그 성격을 감안하며 가을 야구팀을 급조해 보았습니다.

 

상대팀 투수가 볼 때는 어느 타순 하나 쉬어갈 수 없는, 즉 만만한 타순이 하나도 없을 때 그 팀을 공격력이 막강한 팀으로 보고 더 경계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가을 야구팀의 타자들은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이 다 중요하고 의미 충만한 가을의 상징물들입니다.

 

청량한 공기와 선선한 바람, 드높은 푸른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은 가을 야구팀의 1, 2번 타순에 들어서며 가을이란 계절의 문을 활짝 여는 테이블 세터입니다.

 

3번에 해당하는 황금 들판과 누렇게 물든 벼들은 마치 눈맛으로 먹는 일본 음식같이 수려하고 예쁜 계절인 가을의 첫인상을 단단히 심어줍니다.

 

핀치에서 한방을 터트려 게임을 뒤집는 게임 체인저 4, 5번인 햇과일과 햅쌀은 여름 내내 쇠약해진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돌보고 지친 마음에 활기를 더해주는 헬시 푸드입니다.

 

하위타선들도 뭐하나 빼놓고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제 역할을 다하며 이모저모 팀 기여도가 높아 가을야구팀의 귀중한 상징자산들로 손색이 없습니다.

 

여기서 빼먹으면 안되는 야구팀 일원이 하나 더 있지요. 바로 투수입니다. 흔히 야구는 투수놀음이라 합니다.

 

타자들이 아무리 안타를 많이 치고 출루를 빈번히 해 점수를 많이 뽑아내도, 투수가 만루 상황에서 상대팀 타자들에게 홈런과 장타를 연달아 얻어맞으면 대량 실점해 팀은 바로 패배의 수렁으로 빠집니다.

 

여기서 가을을 맞는 우리들 마음 하나하나가 투수의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가을 날씨를 즐기되 계절의 변화가 주는 여러 특이점을 맞춤형으로 잘 받아들여 하루하루 일상의 공을 자신이 설정한 스트라이크 존 곳곳에 정확히 찔러넣는 용기와 지혜가 가을 야구팀의 선발투수로서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우리 모두 가을 자연 야구팀을 응원하며 한 계절을 멋지게 설계하고 맞춤형으로 실행해, 아름답고 풍성한 가을을 듬뿍 맛보았으면 합니다. 또 그 여력으로 긴 겨울에 대비할 힘도 길렀으면 합니다.

 

그러고 보니 4월말 제 블로그의 한 카테고리로 시작한 생태 에세이연재 코너의 첫 글이 올봄을 맞아 계절의 변화 속에서 주변 자연의 아름다운 변화를 지켜보는 마음으로 우리들 일상의 색깔도 예쁘게 물들게 하자는 글이었는데, 가을을 맞아 다시금 생물계절학에 대한 글을 하나 더 쓰게 되었네요.

 

우리 모두 아름답고 풍성한 가을을 보내면서 햇과일이나 햇벼처럼 무르익어가고  알록달록 예쁜 단풍처럼 자기 색깔을 분명히 찾아가는 멋진 인생을 설계해 나가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