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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에세이

아픈 자연, 그 슬픈 자화상의 치료법은?

숲길지기 2025. 10. 21. 11:07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두보의 시 <춘망(春望)>의 첫 구절입니다.

 

안록산의 난 등 큰 전화(戰禍)를 겪으며 나라(당나라)는 폐허가 되었지만, 봄이 오면 산하(자연)는 여전히 소생하리란 희망이 시구에 서려 있지요.

 

어인 일인지 세계 10위 경제대국인 우리의 현 상황은 위와는 정반대인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압축성장 신화로 일컬어지듯 경제는 급성장했지만, 그 와중에 아름다운 산하(자연)는 개발을 위해 마구 파헤쳐져 온몸에 멍이 든 슬픈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나라는 멀쩡히 존재하는데 반대로 산하는 피폐해졌다는 점에서, 국재산하파(國在山河破)가 지금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 아닌지요.

 

압축성장 과정에서 산과 강, 바다 등 큰 스케일의 자연은 성장의 도구, 즉 경제자원으로 이용됐습니다. 국가는 공권력을 동원해 자연을 자원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국가는 민둥산에 속성수 조림 위주로 녹화사업을 단행해 헐벗은 민둥산 이미지를 지우며 목재육성과 송이재배 등 산림의 경제적 가치를 도모했습니다.

 

국가는 수자원 확보 차원에서 강에 다목적 댐을 대거 짓고, 운하를 파서 배를 띄우기 위해 훗날 수많은 생태문제의 온상이 되는 보()를 잔뜩 설치했습니다.

 

서해안엔 대단위 간척사업을 전개해 해안의 보고인 갯벌을 없애고 지우며,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정도의 광대한 규모로 농경지와 공단부지를 확보해 나갔습니다.

 

화석연료 경제가 기후변화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등 근본적 한계에 이르자, 뒤늦게 태양열, 풍력, 조력 등 에너지 원()을 바꾸기 위해 논과 산, 바다를 에너지 공장으로 만듭니다.

 

Whitehead et al., 황진태 등 일군의 학자들은 한 나라의 산과 강, 바다 등 큰 스케일의 자연이 국가의 목적에 따라 경제성장 도구로 포섭, 변형되어 자연자원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국가-자연이란 용어로 개념화합니다. 그 개념 속엔 본래의 아름다움과 내재적 가치를 잃은 채 국가에 의해 한낱 성장의 도구로 자원화되는 자연의 왜곡, 변형 과정이 여실히 담겨 있습니다.

 

큰 스케일의 자연만 경제성장이나 에너지원() 교체과정에 자원으로 동원된 것은 아닙니다.

 

동네 뒷산, 마을숲, 개천, 인근 임야 등 지역 내 작은 스케일의 자연도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공장부지나 아파트 택지 조성, 산업도로 건설을 위해 쉽게 허물어졌습니다.

 

성장을 위한 도도한 개발 물결과 인간의 생활 편익 앞에서 이들 작은 스케일의 자연은 그저 걸리적거리는 방해물에 불과하기에, 불도저와 포크 레인의 발길 아래 마구 파헤쳐도 무방한 그런 하찮은 정복대상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 결과 나라는 물질적으로 부강해지고 토건 자본은 득세하는데, 사람들의 서식처는 붕괴되고 주변 자연은 피폐해 갑니다. 이는 기후위기는 물론 인간서식처 붕괴와 환경오염 등 당장의 생활위기를 초래하는 등 위험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는 산업용 SOC(다목적댐, 항만, 운하, 간척지, 고속도로 등)로 불리는 국가-자연에 대해 요란한 환호성과 함께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푸른산, 다목적댐, 대규모 간척지 등을 나라의 부강을 상징하는 발전경관으로 칭송해 왔습니다.

 

동네뒷산과 마을숲, 개천이 마구 파헤쳐지며 영영 사라질 위기에 놓여도, 그래야 마을에 공단이 들어서서 일자리가 생기고 큰 도로가 쭉쭉 닦인다는 선거꾼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지역 자연이 선거용 SOC(표를 얻기 위한 지역산단 조성, 대규모 시설입지 및 도로공사 등)의 희생양이 되는 데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큰 스케일의 국가-자연이나 작은 스케일의 지역 자연을 희생시킨 결과, 우리는 물질적 이득은 좀 얻었지만 생명가치의 희생에 따른 그 몇 배의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목재와 송이를 얻기 위해 불에 약한 소나무 등 단순 경제림으로의 조림 관행은 봄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대형산불의 원흉이 되고 있습니다. 수몰민의 아픔엔 아랑곳없이 속전속결로 건설된 다목적 댐으로 인해 주변 생태계 파괴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운하용 보 설치로 인해 큰 하천엔 녹색라떼 현상이 거듭돼 수질오염은 물론 보기에도 흉측한 문제경관을 노정합니다. 논과 임야에 대규모로 설치된 태양광 시설과 산과 바다에 들어선 풍력 터빈도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해치며 인근에 큰 소음공해를 유발합니다.

 

국재산하파(國在山河破), 즉 나라는 존재하는데 산하는 병들고 피폐해진 것이 오늘 우리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국토개발의 이면엔 자연생태계 파괴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재해 있음을 크게 성찰하면서, 국가목적을 위해 자연이 자원으로 동원되고 단기적 개발이익에 눈이 멀어 소중한 지역 자연의 파괴를 눈감아온 그간의 단선적 개발경로에서 조속히 벗어나야겠습니다.

 

그렇다면 병들고 멍든 자연을 치유해 다시 건강한 산하로 되돌리고, 나아가 건강한 산하(자연)의 품 안에서 사회의 질적 성숙도 도모하는 것은 과연 실현 불가능한 한갓 이데아에 불과한지요?

 

그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먼저 정치의 입맛에 맞게 멋대로 포획되어 자원으로 왜곡 변형되어온 국가-자연과 지역경제를 위해 파헤쳐진 고향 산천을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재()자연화해 최대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시켜 나가는 길입니다.

 

스위스, 네덜란드 등 유럽에선 경제적 목적으로 직강화했던 강들을 다시 자연사행(蛇行)하천으로 복원하고 간척지들의 역()간척을 단행했습니다. 재자연화를 꾀하는 유연한 토목기술에 힘입어, 자연을 되살려내고 인간 서식처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도 복원을 통한 재자연화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감수합니다. 일례로 남부 에버글레이즈 습지 안 Kissimmee 강의 제방 철거 등 직강화했던 물의 흐름을 원래 모습으로 재자연화하기 위해 직강화 비용 3천만 불의 10배인 3억 불을 자연복원비용으로 치렀습니다(최병성, [강은 살아있다] 참고).

 

일본 군마현 얀바 댐은 자민당 정권이 벌인 최대 토목공사로서 공사가 이미 70%나 진행됐지만 당시 하토야마 내각은 공사를 중단시켰습니다. 이미 큰돈을 들였지만 향후 치를 비용이 더 크다면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임석민, “물류효과 없는 운하, 재론의 여지도 없다.” [녹색평론] 20105-6월호 참고).

 

이처럼 왜곡 변형돼온 국가-자연을 재자연화해 최대한 복원하면서, 지역에 남아 있는 소중한 원시자연이 더 이상 국가-자연이나 지역개발의 대상으로 왜곡, 변형되지 않도록 자연을 단단히 지켜나가는 보전의 담금질도 우리의 시급한 과제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개발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꼭 필요한 개발은 있을 수 있지요. 그런 불가피한 개발은 하되 좀더 신중히 판단하고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 자연에 상처를 최대한 덜 내는 방향으로 개발과 보전의 균형추를 맞추는 정책지혜가 긴요한 시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배가 부르면 아무리 눈앞에 먹이감이 뛰어다녀도 눈 한번 꿈쩍 안 하는 사자의 여유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아주 불가피할 경우엔 자연을 신중히 이용하되 문제해결에 자연의 원칙을 반영하는 또다른 생태적 지혜도 필요합니다. 자연기반해법(nature based solution)이 그것이지요.

 

유럽연합은 자연기반해법을 기후위기 등 생태문제를 해결하는데 자연의 원칙을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즉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자연을 모방하거나 자연에 의지하는 그런 해결책을 강구하자는 것입니다.

 

최근 대형산불이 매년 이슈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해법이 논의되지만 제 생각엔 자연기반해법이 궁극의 해법입니다.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등 단일수종의 경제림 조성 등 그간의 인위적 개입을 거두어들이고 생태계 자치력을 회복하기 위해 가능한 산에 손을 안 대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수분 함유량이 큰 활엽수 등 내화(耐火)수림으로의 점진적 천이(遷移) 등 자연복원을 통한 건강한 산림의 자체 회복력을 도모하는 것이, 자연기반해법에 의거한 산림전환 정책의 근본책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며 가장 뛰어난 보전 방법임을 외국의 값비싼 복원비용 사례에서 배워야 합니다.

 

이제라도 도구적 자연관을 버리고 자연의 순환 원리에 따른 보전, 복원 방식으로 자연생태계 관리를 차분히 해나가야겠습니다.

 

그러려면 경제성장과 국토개발을 도맡는 정부관료들의 뼈아픈 자성과 책임행정이 요구됩니다. 무엇보다도 생태주의적 사유와 학습이 이들에게 시급히 요구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적 전일(全一)성과, 사람도 자연에서 태어나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다 간다는 생태적 배태(胚胎)성의 자각 아래, 더 이상의 인위적 개입이나 무리한 통제 없이 자연(self-so; 스스로 그러한)의 이치대로 정치행정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공무원들이 조속히 깨우쳐야겠습니다.

 

아울러 최소한 측정 두번에 정확한 톱질 한번이라는 목수철학을 이들이 내면화해야겠습니다.

 

그럴 때 관료들이 경제적 합리성에만 의존해 자연을 국가-자연으로 왜곡 변형시키며 개발의 정당화에만 충실했던  개발관료의 환경파괴자적 이미지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개발의 파괴효과를 줄이며 보전,복원의 생태발전경로를 체계화해 나가는 생태관료(eco-crats) 이미지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겠습니다.

 

시민들도 지역의 단기적 개발이익에 유혹되기보다는 스스로 고향 산천을 지켜나가기 위한 보다 주체적인 노력이 요구됩니다. 이에 대해선 다음번 글에서 생물지역주의, 생태민주주의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