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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에세이

자연의 맛 보기, 자연의 멋 읽기

숲길지기 2025. 10. 29. 12:01

올봄 저의 블로그에 생태 에세이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생태 에세이를 시작할 당시, 나무나 천변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을 하나 택해 그것이 계절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틈틈이 지켜보고 그 관찰결과를 짤막한 자연관찰일지로 써보는 생물계절학(phenology) 공부를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제안자인 저부터 솔선해야 할 일이기에, 저는 집 앞 배롱나무 한 그루를 택해 저 나름의 생물계절학을 시도할 것을 당시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간 써온 저 나름의 관찰일지를 대략 추려보겠습니다.

 

집 앞의 배롱나무는 봄이 되자 아기처럼 연한 새싹들을 하나하나 선보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어린 티를 벗던 배롱나무 잎들은 초여름이 되자 성큼 청년잎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푸른 나뭇잎 나라를 활짝 열었습니다.

 

한여름이 되자 배롱나무는 선홍빛 꽃들로 자신을 아름답게 치장합니다. 저의 집 앞 배롱나무는 인근의 배롱나무들보다 20일 정도 늦게 개화해서인지 9월 하순까지 붉은 꽃을 주렁주렁 매단 채자신이 왜  ‘나무(목) 백일홍(百日紅)’으로 불리는지를 증명합니다.

 

가을이 되니 배롱나무는 또 한번 붉어집니다. 이젠 잎들이 붉게 물들며 홍조 띤 얼굴로 등장합니다. 덕분에 나무 앞을 지나다니는 행인은 오랫동안 눈 호강합니다.

 

배롱나무는 그렇게 오래도록 붉습니다. 10월 말인 지금도 일부 꽃은 지지 않고 여전히 선홍빛으로 얼굴을 내밀고, 이파리들은 단풍잎답게 울긋불긋 물들어갑니다. ‘나무 백일홍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배롱나무의 붉음은 참으로 오래도록 지속됩니다.

 

집 앞의 배롱나무를 반년 넘게 지켜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미건조한 우리네 일상을 덜 삭막하게 느끼며 재밌게 보낼 수 있는 묘책 하나를 잘하면 마련할 수 있겠단 생각입니다.

 

삭막하고 따분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할 평범한 우리들지만, 그래도 마음의 문을 열고 주변 자연과 친구를 맺은 뒤 부지런히 친구를 찾아가며 자주 말을 걸어보자는 것이지요.

 

그러면 자연을 찾는 순간순간마다 맛보게 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이,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던 생태주의 공부와 생태친화적 삶의 출발선상에 우리를 서게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생태주의 공부는 쉽지 않습니다. 자연보전, 생태계 복원은 너무 추상적인 개념이고 관념적인 말들입니다. 그래서 어렵게만 들립니다. 공부의 갈피가 쉽게 잡히지 않기에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사람도 먹고 살기 어려운데 왜 자연을 보호해야 하나란 생각에, 우리는 생태주의 공부를 배부르고 한가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으로 여겨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쁜 꽃이나 푸른 나무, 녹색의 초원, 파란 하늘, 맑은 강물을 보면 그것을 배경으로 셀카 찍기에 열심입니다. 자연을 배경으로 놓고 자신이 주인공으로 들어간 사진 액자를 책상 위에 놓거나 혹은 사진을 폰에 저장하고 틈만 나면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오래도록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가 자연을 하대하고 자연에 상처를 낼수록 사람들의 안전한 서식처도 줄어들고 생활환경이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자연에 손을 덜 대고 지켜내야 할 필요성은 머리로는 잘 아는데 그 실천의 마음먹기는 자꾸 뒤로 미뤄지고 그러니 행동은 더욱 요원해지기만 합니다.

 

고 신영복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또 가슴에서 발끝까지라 말했는데,  사람들 간의 멀고먼 거리감은 물론  생태친화적 삶의 실천에 주저하는 우리의 짧은 생각을 꿰뚫어 보고 나온 슬픈 말로도 기억됩니다.

 

좋습니다. 다 좋습니다.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기에 자연을 지켜내는 행동에 주저하게 되는 점도 충분히 이해 갑니다. 그래도 종종 멋진 자연, 아름다운 자연을 일부러 찾아가 그 안에서 휴식도 취하며 그것을 배경으로 예쁜 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 또한 우리에겐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 안에서 몸과 마음을 쉬며 위안을 얻고 싶은 바로 그 마음, 그 마음을 좀더 자주 먹으며 자연을 찾아가는 횟수와 자연 안에 머무르는 시간을 좀더 연장해 보면 어떨지요.

 

일단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맛보고 그것에 흠뻑 취하면서 그런 반복된 체험을 계기로 삼아,  주변 자연과 개인적 연결감을 쌓는 계기를 지주 가져보자는 것이지요.

 

생물계절학은 어찌 보면 이런 자연과의 접촉을 반복 생활화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자주 맛보기 위해 우리가 개인적으로 뭘 더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헤아려보는 그런 생각의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생태사상가나 자연문학가들은 모두 생물계절학의 시각에서 자연을 즐겨 찾고 오랜 자연관찰 과정을 겪으며 쌓아온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전해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런 체험을 토대로 자신들이 맛본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또 자연에서 발견해낸 생태적 지혜를 우리에게 친절히 안내해 줍니다.

 

생태적 사유의 전형적 모델이자  자연문학의 고전인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는 호숫가 오두막에서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점들을 책으로 남겼습니다.

 

월든 호숫가에서의 22개월은 자연 속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기만의 삶의 정수를 맛보기 위해 소로가 선택한 의도적 고립과 자발적 가난의 시간이었습니다.

 

소로는 우리가 자연 안으로 들어가 자연을 오래 체험하면서 그 속에 담긴 미적, 생태적 가치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수용할 때, 자연과의 새로운 인지 관계가 생성된다고 말합니다. 즉 자연관찰을 통한 직관적 경이로움을 체험하게 될 때, 애벌레가 성충 나비가 되듯이 하나의 고양된 자아(higher self)가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소로는 자연의 경이로움 발견을 토대로,  대지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발꿈치를 받쳐주는 생명의 디딤판으로 인식합니다.

 

자연의 섭리에서 생의 진수를 찾아낸 소로는 [시민불복종]이란 책도 썼습니다소로의 이 책은 정부의 권력은 인민의 동의(同意)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해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전쟁 등 정부의 부당한 행동과 무리한 인위적 개입을 맹렬히 비판하면서 정부의 그릇된 행동들에 대한 시민의 정당한 항거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아마도 그가 숲에서 오래 살면서 세속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 자연을 닮아가는 self-so 식 삶의 방법론을 몸소 익혔기에,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는 인위적, 억압적 정부활동에 대해선 나라의 주인으로서 시민들이 정당한 항거를 해야 함을 강조하는 이런 책의 저술도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의 생태적 사유와 자연친화적 삶이 인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올바른 정치의 길 하나를 명확히 밝혀줍니다.

 

생태윤리 최초의 체계적 저작이자 자연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인 [모래군의 열두달(A Sand County Almanac)]의 저자 레오폴드(A. Leopold)도 헨리 데이빗 소로를 따라 자연의 직접적 체험이 사람의 생태적 자각과 세계관의 변화를 촉진하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제시합니다.

 

그는 자연을 실제로 체험하기 위해 스스로 자연 속으로 파헤쳐 들어가(dig in) 그 위에 자신을 던지는 방식을 택하며 자연이 주는 교훈을 몸소 얻고자 했습니다.

 

그는 미국 위스콘신(Wisconsin)주 강변의 모래땅에 있던 낡은 오두막을 고치고 오두막 옆에 모든 가족이 참여하는 텃밭을 만든 뒤 주변 동식물을 주기적으로 관찰하며 자신만의 생태복원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매일 새벽에 야생관찰 일기를 쓰며, 태양에 반응하는 생명들의 흐름을 좇는 생물계절학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개인에 불과한 자신을 성공적인 자연 관찰자이자 계절의 전령으로 만들어준 자연의 아름다움에 늘 탄복했습니다.

 

농장은 생태학 교과서이고, 거기에서 사는 사람은 교과서 번역 역할을 맡은 자이다.”

한 그루의 늙은 굴참나무를 가진 자는 역사도서관을, 그리고 진화라는 초대형 공연의 예약석을 가진 것이다.”

 

책에 담긴 위의 문구들은 그의 치열한 자연관찰과 자연과의 오랜 관계맺기의 생생한 결과물입니다.

 

그는 야생관찰과 생태복원 체험을 통해, 인간-비인간 간에 어떤 존재론적 구분도 없음을, 즉 자연과 사람이 하나이며 자연과의 상호연관을 통해 사람도 더 잘 존재하게 됨을 인식하는 과정인  자아실현’  개념과 만납니다.

 

그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고 자연과정 인식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자연관리기술을 무리없이 인간 서식처에도 적용할 수 있음을 역설하며, 한때 산림의 경제적 가치만 밝히던 공리주의적 산림공무원 신분에서 벗어나 삶의 끝까지 생태보전과 생태교육에 헌신한 생태철학자, 생태교육자로 활동했습니다.

 

자연 속에서 소녀 시절을 보낸 한 여성이 추후 공무원이 된 뒤, 소녀 때의 자연 체험을 반추하며 자신의 공직생활에서 생태적 지혜를 발휘한 아래의 사례도 자연 체험과 이를 통한 사람-자연 간 연계의 순기능을 잘 보여 주는 좋은 실례입니다.

 

Emily는 농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며 숲의 규칙들을 하나하나 배워나갔습니다. 때로는 거센 비바람 등 자연의 분노를 경청하며 자연이 주는 교훈을 몸소 습득했습니다.

 

그녀는 자연 안의 모든 사물이 서로 연계되고 통합되어 있음을 어려서부터 보고 배우면서, 자신도 다른 모든 사람, 모든 일과 연결되어 있고 또 그것들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자연세계와의 깊은 연계감을 훗날 공무원이 된 뒤에도  지속했습니다.  즉 모든 것이 서로 연계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자연 생태계에 대한 깊은 교감을 토대로, 그녀는 부하 직원들의 어려움을 자신의 문제처럼 여겨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었고, 아무런 인위적 간섭 없이 조직의 일들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도록 허용했습니다.

 

일을 둘러싼 업무상황이 복잡할 경우엔 무위(non-action)를 택했습니다. 특히 내면의 목소리(inner voice)에 귀 기울이며, 몸소 나가야 할 때와 자연에 굴복할 때를 구분하면서, 조직을 둘러싼 환경 전체의 보전을 항상 꾀했습니다 (Nancy Murray의 책 An Inner Voice for Public Administration에서 인용).

 

위에서 살펴본 소로, 레오폴드, 에밀리의 삶을 잘 음미해 보면 자연을 자주 찾아가며 자연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맛보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읽어내는 것이,  자연보전뿐 아니라 궁극적으론 인간사회와 사람을 위한 길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위 사례들에서 보듯이, 자신이 자연과 연결되어 있고 또 자연에 귀속되어 있다는 경험적,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을 우리는 자연과의 연결감(connections with nature)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 연결감을 가질 때 세상만물은 서로 연계되어 있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생태적 전일(全一)성 개념과,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태어나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다 죽는다는 생태적 배태(胚胎)성 개념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그런 자연체험을 직접 한 적이 있어 잠시 소개해 볼까 합니다. 저는 나이 50이 넘어가면서 인생 이모작 준비 차원에서 적절한 취미를 물색하던 중 카메라를 하나 사서 사진 찍기를 취미로 삼아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찍기를 막 시작한 어느 날 저녁, 우연히 아파트 테라스에 놓여 있는 한 화분 안에 꽃 한 송이가 피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접사 모드로 놓고 무작정 셔터를 눌러 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이미지 파일을 PC로 전송해 컴퓨터 화면으로 확대 재생해서 보니 그 꽃봉오리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매우 예쁘고 고혹적이었습니다.

 

예상 외의 아름다운 자연과 우연히 조우한 다음부턴,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메고 집 인근 산이나 시내 숲, 공원을 돌아다니며 무작정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제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아니면 기특해 보였는지 자연은 자신의 아름다운 자태를 가장 멋진 포즈로 선사하거나 자신의 존재를 본질적으로 드러내 보여줬고, 저는 그런 자연의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보자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또 찍었습니다.

 

자연은 봄여름가을겨울 등 계절을 가리지 않고 저에게 자신의 본래모습을 보여 주었고, 저는 그것들에서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찍기를 시작한 첫해 봄엔 아름다운 꽃들을 주로 찍다가 초여름이 되면서부터 꽃이나 나뭇잎 찍을 것이 조금씩 마땅치 않자, 잎들 위나 혹은 땅을 기어다니는 곤충과 벌레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저질러온 저의 경솔한 행동들을 하나둘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산길을 걸으며 아무 생각 없이 밟고 다녔던 나무뿌리들이 때로는 개미 떼가 줄지어 다니는 그들만의 고속도로이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무심코 꺾거나 간혹 손에 묻은 더러운 것을 씻어내려고 만지기도 했던 꽃잎과 연한 나뭇잎들이 벌레들의 단골 식당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배고프면 밥 먹으러 식당에 가고 먹고살기 위해 도로를 달리듯, 땅 위나 혹은 나뭇잎 위에선 세상의 일원인 수많은 벌레와 곤충들이 제각기 먹고 살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낮은 데로 임해 곤충과 벌레들을 지켜보며 우리가 미물이라 하찮게 보아온 것들도 다 존재이유를 갖고 부지런히 세상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이 세상이 사람만이 아니라 많은 생명체로 구성되어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자연을 자주 찾아가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잇달아 접하면서, 알게 모르게 자연과의 연결감이 생겼고 자연생태계에 대한 감수성도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생태윤리학자 D. Campos는 생태주의공부 및 생태친화적 삶의 실천경로로 개별체험--> 성찰-->행동의 3단계를 제시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또 그것에 내재된 생태적 가치를 자주 체험하면서, 그간 별생각 없이 저질러온 자신의 자연파괴를 깊이 성찰한 뒤, 자연을 보전하기 위한 책임있는 행동을 시도하며 자연과의 연결감, 생태적 감수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을 강조합니다.

 

자연과의 연결감이나 생태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는 의외로 많습니다. 굳이 생물계절학을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열면 그 기회는 우리 주변에 넘칩니다.

 

굳이 찾지 않더라도 자연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우리 곁으로 자꾸 다가오기도 합니다.

 

봄엔 길가의 꽃과 풀들이 자꾸 안부인사를 걸어옵니다. 꽃들의 안부인사를 많이 받는 봄엔 꽃 이름 하나 더 알려는 우리의 부지런한 몸짓과 따스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꽃 이름 하나 더 외워 그 이름 불러주면 꽃들이 인사해 올 때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미물일지라도 그 이름을 불러주며 그 존재감을 인정해 주면, 꽃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의 격()도 덩달아 올라갑니다.

 

때론 사람 이름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꽃이름 하나 더 알아가는 것이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삶의 재미를 솟구치게 합니다. 덕분에 삶이 더 풍성해집니다.

 

지금은 가을입니다. 바람을 타고 슬며시 날아와 창가나 대문 앞에 살포시 앉아 있는 낙엽들을 볼까요. 낙엽은 우리가 매일 오르고 내리는 계단 위에도 넉넉한 걸음으로 포진하며 사람들과의 소통을 기다립니다.

 

그런 자연을 한번 더 쳐다봐 주고 어루만지며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체험하는 시간을 자주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자연과 친해지려고 한 발자국 더 다가가고 스스로 그러한(自然, self-so) 자연의 순리를 닮아가려고 노력할수록, 그 어렵던 생태주의 공부의 실마리도 조금씩 풀리고, 뿌연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생태 친화적 삶의 길도 눈앞에 뚜렷이 보이기 시작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