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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I)

숲길지기 2025. 12. 11. 17:10

* 32년간 정들었던 강단을 떠나는 정년 퇴임 기념 고별강연(강연주제: "행정<불이>, 사람다움, 마지막 당부")에서 했던 강연내용을 글로 풀어서 2회에 걸쳐 블로그에 싣고자 합니다.   글의 제목은 이 블로그의 한 쪽지인 두 글자의 사유에 맞게, 갈등이라는  두 글자로 대체합니다

 

먼저 이번 글인 갈등(I)은 우리가 불이의 관점으로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해 생기는 갈등이 3차원으로 발생함을, 다음의 글인 갈등(II)는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 필히 취해야 할 3차원의 갈등 치유전략을 담고 있습니다. 강연에서 했던 마지막 당부 부분은 별도의  '당부'란 글로 싣고자 합니다.  그럼 이제 갈등(I)부터 글을 시작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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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불이(不一不二)! 이는 불교의 근본사상인 중도(中道)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세상 만사의 관계성과 상호 의존성을 고려해, 세상사를 너무 분별심으로 대하지 말라는 경구이지요.

 

그러나 위의 뜻풀이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냥 불일불이를 하나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둘도 아닌 것이!”란 말로 쉽게 풀어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불일불이는 분명 하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둘로 떼어서 볼 것도 아닌, 그렇게 떼어서 보기보다는 서로 연결시켜 볼 때 더 큰 의미를 갖는 그런 불가분의 관계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런 불일불이의 관계에 있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집에선 부부 관계가 이를 대표합니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지만 남편과 아내가 자기 주장만 하며 동상이몽의 상황에 빠지면 그집은 바로 콩가루 집안이 됩니다. 그러면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식들만 불쌍해집니다.

 

부부 일심동체란 말은 그래서 설득력을 갖습니다. 살다 보면 많은 걱정과 우환이 따르고 의견도 대립하기 쉽지만, 그래도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부부가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래서 현명한 아내는 자기 남편을 내편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내 안에 내 아내’라는  서호식의 시(“나를 행복 삼아 다시 내 잔에 채우는 내안에 내 아내”)도 있지요.

 

불일불이란 말에서 좀더 핵심이 되는 단어는 불일(不一)보다는 불이(不二) 입니. 세상만사가 어떤 장애도 없이 저절로 잘 굴러가는 태평성대와 달리, 난세에 처하면 우리는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는 속담에 더 공감합니다.

 

불이가 정답입니다. 불이의 마음이 있어야 똘똘 뭉쳐 지킬 것은 더 잘 지키고 떼어선 안될 것을 굳이 떼어 보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질긴 인연이 불이입니다. 아니  분별심을 갖고 따로 분리해 생각하면 그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게 불이의 관계입니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을 따로 떼어내 분리해서 보거나 대립시켜 보기보다는, 서로 연결해 접점을 찾고 통합해서 볼 때 문제해결이 더 빨리, 더 잘될 것 같습니다.

 

부부가 사는 가정을 벗어나도 우리 주변엔 불이의 관계가 참 많습니다.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대표적입니다.

 

생태주의는 관계성과 전체론적 관점을 강조합니다. 즉 생태주의는 사람과 자연이 별개의 것이 아니기에 양자를 통합해 봐야 한다는 불이의 관점을 전제로 논의를 전개합니다. 자연을 사람의 서식처, 즉 사람들 삶의 터전으로 보기 때문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자연 위에 군림하며 자신의 서식처인 자연을 개발이나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분리적 관점과 도구적 자연관을 가지다 보니, 기후파괴, 생태위기 등 인간 서식처를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숱한 잘못이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불교 경전 [유마경]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자연을 아프고 병들게 만드는 미친 개발, 막개발의 유혹에서 벗어나 사람을 자연생태계의 일원으로 보는 겸허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불이의 관점을 지녀야 난개발, 미친개발에 따른 많은 무리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또 우리네 삶의 터전도 좀더 생태친화적으로 지켜낼 수 있습니다.

 

나라의 주인인 시민과 나라살림꾼인 정부의 관계도 불이의 대표적 관계입니다. 시민들은 나라 주인의 뜻을 받들지 못하고 무능, 무책임한 나라살림꾼 정부에 대해 불신이 매우 큽니다. 시민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지 못한 채 시민을 봉으로 보고 세금만 강요한 정부에 잘못이 많습니다.

 

정부불신은 정부의 일부 종사자들이 자신의 태생적 뿌리인 시민을 우리-관계(we-relationship)가 아닌 그들-관계(they-relationship로 보고, 시민의 생활문제를 소 닭 보듯 한데서 기인합니다.

 

그렇게 된 데는 우리들의 생각의 함정이 있습니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업을 노동의 대가를 전제로 하는 경제적 의미의 직업(occupation)으로만 보니, 공무원의 대리인 행동이 나라의 주인인 시민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핀트가 안 맞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미국의 행정철학자 프레데릭슨은 공무원을 대표시민으로 정의합니다. 국가의 규모가 커지고 직접 민주주의가 불가능해지면서 나라의 주인인 시민들이 자신들의 일반이익을 가장 잘 구현할 역량과 의지를 갖춘 사람들을 시민들 중에서 선출, 임명해 정부에 포진시킨 나라살림 대행자가 공무원이란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부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은 자신도 공무원 이전에 시민임을 절대 잊지 말고 동료시민들의 생활문제가 곧 자신의 문제라는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적극 행동해야 합니다. 그럴 때 정부활동이 정당성을 얻고 시민의 지지를 더 얻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공무원과 시민이 그들-관계가 아닌 우리-관계여야 함을, 즉 양자가 불이(不二)의 관계임을 잘 보여줍니다.

 

그 외에도 중앙과 지방의 관계도 불이의 관계입니다. 지방이 다 소멸하고 사라지면 사람들이 죄다 서울로만 몰려들어 중앙에 과부하가 걸리게 되고 결국 서울과 수도권도 폭망합니다. 지방이 건재해야 중앙의 과밀 문제도 해결되고 중앙의 숨통도 트입니다.

 

결국 지방소멸 문제는 자신의 고유자원으로 자생적 지역발전을 강구하려는 지방의 자립역량과 더불어, 중앙의 지역인지 감수성 제고와 슬기로운 조력자 역할을 요구합니다. 이는 피붙이여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모-자식 간의 사랑과 응원이 중앙-지방 간에도 긴요하다는 점, 즉 중앙과 지방이 불이의 관계임을 잘 말해줍니다.

 

직장 내 상하위자 관계도 불이입니다. 얼마 전 국내 굴지의 프로축구 구단에서 감독과 선수들 간 마찰과 불화로 인해 최근 몇년간 연속으로 K1 리그 우승을 밥먹듯이 하던 그 구단이 하루아침에 K1 잔류를 걱정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반대로 우승을 밥 먹듯이 하다가 지난해에 일시적으로 잔류 위기에 몰렸던 다른 팀은 새 외국인 코칭 스태프가 들어와 선수들을 사람으로 존중하고 포지션별로 능력자를 선발 기용한 덕에, 올해는 다시 리그 우승과 코리아 컵 우승을 더블로 이루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선수들에게 미치는 감독의 영향도 크고, 선수들의 태도가 감독의 경질을 결정하거나 감독에 대한 존중심으로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주 요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감독과 선수 간 관계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질긴 인연인 것입니다. 이는 직장 내 상-하위자 관계에도 얼마든지 대입할 수 있는 얘기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삶이 고도로 정보화, 전자화되면서 어느덧 스마트폰은 움직이는 사무실이 되었습니다. 사람들 손엔 항상 스마트폰이 들려 있습니다. 모든 자료가 폰 안에 저장되어 있어 사람들의 기억을 대신합니다. 생활의 편리요소들이 폰 안에 어플로 다운되어 있어 폰 하나로 일상의 생활문제를 다 해결합니다. 스마트폰은 이제 물질문명의 결정판입니다.

 

자연히 기계인 스마트 폰과 그 사용자인 인간은 불이의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양자의 불이 관계는 앞에서 본 여러 다른 불이와는 결을 크게 달리합니다.

 

스마트 폰과 AI는 우리의 기억과 판단, 계산, 글 작성을 아무리 잘 도와줘도 기계일 뿐입니다. 기계는 기계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이 지나치게 기계와 불이의 관계를 형성하면, 우리 삶의 편의를 위해 보완재로 출발한 이놈들이 어느새 우리를 대체합니다.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의 뇌를 조종하고 우리의 행동을 자신의 뜻대로 제어하려 들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인간의 보완재로 출발한 기계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대체재가 되어갈 우려 때문에, 이놈들이 파놓은 불이의 함정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놈들과는 불이의 경계선을 보다 정교하게 설정해 놓을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위에서 살펴본 여러 불이의 관계에 큰 위기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응당 불이의 관계로 보아야 할 것들(자연-사람, 정부-시민)을 우리가 굳이 불이로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불이의 함정을 필히 경계해야 할 것(AI와 인간)엔 자꾸 불이 이상의 관계로 더 가깝게 보려 하는 사람들의 '사람답지 못함'이 그 위기감을 조성하는 주범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니 인간 사회에 위기감을 조성하는 빨간 신호등이 잇달아 켜집니다. 차제에 우리에게 절대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 그 불이의 관계성을 제대로 따져보아야 할 것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큰 갈등의 구렁텅이에 빠진 채 갈등에서 헤어날 길이 더욱 요원해지게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불이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빠지기 쉬운 갈등의 양상들을 차례대로 짚어보겠습니다. 

 

나라살림을 위해 정부가 어느 분야에 얼마나 돈(예산)을 쓸 계획인가를 보면, 우리는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예산이 많이 배정된 분야에선 우리네 삶이 더 나아질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예산배정이 불균등하면 예산이 덜 배정된 분야에 대한 정책수요가 큰 집단은 걱정이 태산 같아집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내년도 예산에서 한가지 우려되는 점은, AI 분야엔 10.1조 원의 예산이 쓰이는데, 통합돌봄 예산엔 이에 훨씬 못 미친 914억 원만 배정된다는 점입니다.

 

매우 높은 노인빈곤율과 급속화되는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지역의 커뮤니티 케어, 즉 통합돌봄 기능이 어느 때보다도 중차대한데,  정책사업비용의 불균등이  심해  큰 우려를 자아냅니다. AI로의 예산쏠림은  '돈이 말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는 뜻의 서양속담 Money talks를 실감나게 합니다.

 

초부자감세인 주식배당초과이득세 감면 조치도 매우 큰 문제입니다. 현재 52백만 인구 중 14백만 국민만 주식에 투자할 뿐입니다(이상민, “확장재정 속 부자감세2026년 예산안이 말하는 국정기조,” 소셜코리아, 2025-11-15 참고). 더욱이 주식시장을 실제로 좌우하는 것은 외국 투자자, 기관투자자, 돈 많은 큰 손들인데 왜 소수한테만 과한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것인지요?

 

한 가지 더 우려되는 점은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에서도 쏠림현상이 너무 심각한 점입니다. 기후솔루션의 권오성 미디어 팀장의 분석에 의하면, 인공지능은 시정연설에서 28번이나 언급됐는데 기후위기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AI로 산업구조 개편을 선점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정책엔 사람다운 얼굴을 한, 사람을 위한 정책이 부재합니다. 이런 정책 불균형과 특정분야에서의 정책 부재는 향후 우리 삶의 구조에서 많은 갈등을 야기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기후위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 부재는 향후 사람 대 자연의 갈등을 더욱 조장하고,  AI로의 예산 쏠림 현상은 인간 대 기계의 갈등을 자주 부추길 것입니다세금 감면의 불균등은  인간 대 인간의 갈등, 특히 부자와 빈자 간의 갈등을 더욱 부채질할 것입니다.

 

차제에 예산과 정책에 대대적인 교통정리가 필요합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사람답지 못해 생긴 3차원의 갈등에 대해 사람이 사람답게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사람이기에 꼭 해야 하고 또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해결해 낼 수도 있습니다. 다음 글에선 그 해법에 대해 상술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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