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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에세이

생태적 전환을 향한 생태여행 티켓은 어디서 살 수 있을까?

숲길지기 2026. 4. 3. 13:08

 

정년퇴직을 하니 좋은 점 중 하나는 학기 중엔 강의 때문에 발이 묶여 가기 어려웠던 곳을 주중에도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게 된 점입니다. 그래서 줄곧 마음속에 품고 있던 주중 봄꽃놀이를 3월 중순에 떠났습니다.

 

3월 중순이면 겨우내 추위가 한풀 꺾이니 남도의 꽃들이 한껏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고 길을 떠났습니다. 뉴스를 보니 올해 광양 매화축제나 구례 산수유축제는 313일부터 시작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남도행 발걸음에 힘을 실어 줍니다.

 

이번 남도여행은 한마디로 말하면 봄꽃맞이 여행인 셈입니다. 여수 동백, 광양 매화, 구례 산수유 삼총사를 바로 눈앞에서 지켜볼 마음에 새벽부터 차를 몰아 남도로 달려갔습니다.

 

아쉽게도 첫 방문지인 여수의 동백은 거의 끝물이었습니다. 그래도 게으름을 핀 몇몇 동백 송이가 남아 있어 여수의 장도와 오동도, 돌산섬에서 동백의 붉은 선율을 달게 맛볼 수 있었습니다.

 

여수에서 이틀에 걸쳐 동백을 보다가 여행 3일째 되는 날 아침 광양으로 출발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여수와 광양을 잇는 이순신대교를 건너 광양으로 들어가는 길로 차를 인도했습니다.

 

문제는 여수 시내를 빠져나와 얼마쯤 달리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여수 국가산업단지가 뿌연 대기 속에 끝없이 눈에 들어오는 점입니다.

 

세계 4대 미항으로 일컬어지는 여수항 인근 바다와 오동도, 돌산섬, 장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뇌리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괴물같은 외관과 탁한 대기의 여수 산단이 달리는 차창을 오래도록 따라왔습니다.

 

그날은 가뜩이나 초미세먼지까지 극심해, 더욱 탁하고 뿌연 산단도로를 한참 달려서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여수 국가산단을 빠져나오니 길은 이순신대교와 연결되는데, 다리 건너편의 광양제철소 역시 마치 누가 더 무섭게 보이는지 여수산단과 내기라도 하듯 어마무시한 모습으로 강 건너 저편에 딱 버티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제철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점이었습니다.

 

방금까지 여수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고 이젠 흐트러지게 피어올랐을 매화를 볼 요량에 광양으로 달려가는데, 다리 건너편 광양의 첫인상은 거대한 잿빛 외관에 연기를 마구 내뿜는 괴물 형상이었습니다.

 

갑자기 서글퍼지며 일말의 두려움과 절망감이 밀려옵니다. 그 절망감과 두려움은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의 주거공간 바로 옆에 반()자연적이고 인체에 유해한 공단들이 서슴없이 자리잡고 있는 데서 기인합니다.

 

왜 이런 광경이 존재하는지? 우리의 발전역량이 아직 이 정도밖엔 안되는지?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연과의 공존은 정녕 불가능한지? 인간 서식처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석유화학산업과 정유산업이 주류를 이루는 여수 국가산단이나 철강 생산의 거점인 광양제철소는 대표적인 굴뚝산업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유해물질의 과다 배출로 인해 지역 내의 대기오염과 유해물질 인체중독 사고도 종종 야기하고 있습니다.

 

석유화학산업은 최근 중국의 자급률이 높아지면서 구조적 과잉공급 문제에 직면해 있고, 제품의 고부가가치화 미흡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정합니다. 그래서 지금 여수산단은 심각한 구조조정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더욱이 그 주원료인 나프타의 수입이 중동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큰 차질을 빚어 생산에도 제동이 걸릴 우려가 큽니다.

 

환경부와 환경공단 자료에 의거해 지역환경단체(전남환경운동연합)가 문제 제기한 바에 따르면, 포스코 광양제철의 유해물질 배출량은 6년째 전국 1위를 기록 중이라 합니다그런데도 제철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니 이것 참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부존자원 하나 없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선 먹고살기 위해 뭔가를 끝없이 만들어 팔아야 합니다.그래서  공장을 풀가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자재를 사다가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해서 달러를 벌어들여야만 나라경제가 지탱되는 방앗간 경제시스템이 오랫동안 우리 경제의 주류를 이루어왔습니다.

 

하지만 원자재 수입과 제품 수출에 유리하도록 바다와 큰 강가에 대규모 공단(여수산단,광양제철 포함)을 조성해온 그간의 임해(臨海)공업단지 개발은 이젠 좀 지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 바로 옆에, 먹고산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공단을 설치하고 계속 가동해 왔지만, 대기오염 등 유해물질 배출과 인체 중독사고의 누적으로 인해 이젠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려운 시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임해공단이 유발한 반 환경적 문제를 속히 치유하며, 먹고 사는 방법의 다른 대안들을 진지하게 찾아야 할 시점입니다나아가 인간 서식처 개념을 중심으로 주변의 생활환경, 나아가 인간-자연의 관계 재설정을 위해 생태적 전환이란 단어와 좀더 친숙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산업화와 수출이 그간 국가경제의 주류를 이루고, 더욱이 압축성장을 위해 단기적 시각에서 지나친 자연자원 추출과 오염물질 배출이 묵인, 방치되어오면서 온실가스 증폭과 서식처 오염 등 기후-생태위기가 극심해집니다.

 

그렇다면 기후-생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지금까지 관행처럼 지속해온 기존의 생산방식과 생활양식, 또 주변환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땅과 바다에서 많은 것을 마구잡이로 추출해 자원으로 쓴 뒤, 큰 문제의식 없이 다시 땅과 바다에 많은 것을 갖다 버린 그간의 부끄러운 짓을 성찰해야 합니다. 먹고살기 위해 계속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면, 이젠 지킬 것은 철저히 지키며 만들어야 합니다. 가능하면 덜 쓰고 덜 버리면 더 좋겠습니다.

 

생태국가를 지향하는 나라들은 기후-생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소비-폐기 등 산업체계 전반과 일상생활의 전 영역에 걸친 구조전환과 인식전환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생태적 전환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생태적 전환은 자연에서의 과도한 추출과 폐기를 막기 위한 생산공정의 탈탄소화, 에너지 전환, 자원 재활용의 순환경제와 과도한 소비억제를 지향합니다. 또 생태계 수용범위 내에서의 신중한 개발을 계획해 개발-보전의 균형을 도모하면서, 이를 방해하는 기득권 권력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생태민주적 거버넌스도 추진합니다.

 

결국 생태적 전환은 장기적 시간관 아래 경제-사회-정치-일상생활에 걸쳐 근본적 변화를 도모하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우리는 생태적 전환이란 다소 추상적 명제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 전략을 가져야 할까요?

 

가장 먼저 할 일은 생태적 전환의 기본방향을 기후헌법이나 생태복지법으로 법제화하는 것입니다. 자연이 사람의 생명과 건강에 기본 복지임을 법으로 명시하고, 그렇기에 자연자원 보호나 소극적 환경보존 수준을 뛰어넘어 자연의 보전과 생태계 복원을 국가와 지자체의 기본책무로 규정하는 생태적 전환의 법적 토대를 명백히 마련해야 합니다.

 

특히 자연으로부터 덜 뺏고 덜 버리는 쪽으로 기업들의 생산공정 재공정화 책무를 명시하고, 그것을 위반할 시엔 법으로 강한 페널티를 부여해야 합니다.

 

다음으론 산업전환이 체계적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물론 광양제철 측은 환경개선 투자노력에 더해 야드 밀폐화, 오염방지시설 추가설치 등 환경오염물질 배출저감 설비투자를 계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하지만(이 투데이, 2025,7.2), 기-생태위기의 극복을 위해선 탄소저감기술 등 이런 환경개량용 기술전이만으론 곤란합니다.

 

생산공정 전반을 산업 쓰레기가 덜 나오도록 치밀하게 재설계하고제품을 만들 때도 처음부터 분해나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단오염의 부작용과 부수물이 근본적으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탄소중립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선 이런 저탄소 산업생태계의 신속한 조성과 더불어, 폐기물 제조자 책임제, 자원의 절감,재활용 등 자원순환경제의 정착, 탄소세와 환경인증제 강화, 난개발 규제가 긴요합니다.

 

더 나아가, 에너지 절약형 생태건축의 활성화, 기차,자전거 등 생태교통의 강화, 화학비료 근절과 휴경,윤작의 생태농업 정착 등 다양한 구조전환 정책도 요구됩니다(자세한 내용은 이도형, “기후-생태위기의 원인과 대응.” [정부학연구] 29:1 참고).

 

산업구조 전환과 아울러   에너지 전환도 차제에 병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장 공장을 가동하려면 석유 등 화석연료 수입은 불가피하지만 언제까지 화석연료에만 의존할 순 없습니다. 화석연료의 크나큰 유해성은 물론이고, 산유국인 중동국가들의 국제분쟁과 장기 전쟁을 고려하면 국제유가의 폭증이 우리 생활경제와 산업경제에 미칠 파장은 너무나 큽니다.

 

에너지 수급의 다른 대안을 속히 찾아내야 합니다. 물론 대안은 많습니다. 태양은 매일 어느 곳에서든 떠오릅니다. 우리나라는 산악국가이고 반도국가로서 바람과 물, 파도 등 풍력자원, 수자원도 비교적 풍부한 나라입니다.

 

Re 100 등 재생에너지 개발에 진력할 여건이 됩니다.  오일 독립선언을 하며 재생에너지 비중을 장기계획 하에 크게 늘려간 스웨덴 의 에너지전환 모델을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소형 발전소의 지역별 건립 등 분산형 에너지구조, 자연훼손을 덜 하는 대체에너지 개발, 에너지 절약과 효율을 제5의 에너지원()으로 중시하는 등 에너지 전환정책의 다각화도 필요합니다따지고 보면 자연에서 덜 추출하고 덜 쓰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 효율 증대야말로 가장 기본적 방책입니다.

 

산업전환을 하고 에너지 전환을 하다 보면 새로운 일자리도 생성되지만 기존의 일자리, 특히 화석연료 부문에서 일하던 많은 근로자의 일자리가 위협받게 됩니다. 지금 구조조정 위기에 처한 여수산단도 이의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산업전환의 파고 속에 새 일자리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취업기회를 박탈당한 노동자들을 위해 새 일자리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의 소득보장, 직업재훈련을 국가가 정책으로 구현하는 정의로운 전환이 뒤따라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입니다.

 

생태적 전환에선 시민들의 인식전환도 요구됩니다. '세금 내면 내 할 일 다 했다'고 뒷짐지며 전환과정에 무임승차할 수는 없지요. 시민들은 생태계 파괴의 실상을 피부로 느끼기에,  카 세워링, 공유 오피스 등 공유경제 확대, 물건 오래 쓰기 등 과도한 소비를 줄이는 인식전환과 생활양식 개선에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시민의 책임윤리와 인식전환을 도모하려면 시민 생태교육의 체계적 뒷받침이 필요함은 물론입니다. 환경안전실명제 등 책임윤리 확보장치도 강화되면 좋겠습니다.

 

생태적 전환을 위해선 이처럼 산업전환, 에너지전환, 정의로운 전환, 시민의 인식전환 등 전환 4총사가 긴요합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이 다 중요한 것들입니다.

 

허나 말이 쉽지 전환의 구체적 행동을 바로 실천에 옮기긴 어렵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오래도록 인간중심적 사고와 단기적 시간관, 생활편의주의에 빠져 살아왔습니다.

 

자연을 지켜내야 할 필요성은 머리로는 잘 아는데, 그 실천의 마음먹기는 자꾸 뒤로 미뤄지고 그러니 행동은 더욱 요원해지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가 자연을 하대하고 자연에 상처를 낼수록 그만큼 주거환경, 생활환경이 불안해지며 사람들의 서식처도 줄어드는 점 또한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 그래도 시작이 반입니다. 내가 변하면 남도 변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간직할수록 사람의 변화는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태적 전환을 위해 먼 생태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한마음으로 뭉치면 생각보다 빠르게 생태여행의 종착지인 생태적 전환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남도로의 이번 봄꽃 여행이 기나긴 생태여행의 길로 연결되고 있습니다아마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의 생각도 똑같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생태적 전환이란 종착역에 하루 빨리 도착하기 위해, 우리 모두 어서 생태여행 기차표를 끊었으면 합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기차에 올라타고 끝까지 동행하면 정말 좋겠습니다.